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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라 비 앙 로즈 1화
게시물ID : freeboard_3450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희성
추천 : 5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09/06/14 22:45:10
* 연애소설입니다. 로맨스 소설이라고도 하죠?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네요. 연애소설과 로맨스소설은 자칫, 가볍기 뿐만 아니라 별 의미도 없는 휴지조각과 같은 소설로 치부되기 십상이니까요. 그렇지만, 용기를 주신 분이 있어 용기를 내 올려봅니다 :D 유머가 아닌점 사과드리구요 자유게시판이기 때문에 꼭 유머가 아니라도 괜찮겠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고, 취향에 맞지 않으신 분들은 구지 악플 다시지 마시고, 그냥 뭐 이런 글이 다있나 하는 마음으로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글은 제 꿈이고 희망이기 때문에 비판을 넘어선 비방에는 마음이 조금 다칠 것 같아서요ㅠㅅ ㅜ





LA VIE EN ROSE[라 비 앙 로즈]
Written by. 김희성



1화.

 그날은 유독 바람이 매서운 날이었다.

 윤희는 가방에 아무렇게나 두었던 베이지 빛깔의 실크 머플러를 꺼내어 입술 아래까지 칭칭 동여맸다. 두 손은 쥐색 반코트 주머니에 구겨 넣고 종종 걸음으로 육교를 올랐다. 윤희가 강사로써 몸담고 있는 학원은 주로 논술과 전문대 문예창작과를 겨냥하고 있는 아이들의 입시를 책임지고 있었다. 윤희는 약 칠년 만에 자기에게 꼭 맞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기분에 들떠 요즘 하루하루가 의욕적이었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 육교를 오르내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필이면 학원이 이런 번거로운 곳에 있는걸까 하는 소소한 불만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곧, 학원이 번거로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집이 학원에서 가기에는 번거로운 곳에 있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윤희는 요즘과 같은 일상에 몹시 만족하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그녀임에도, 아침 일곱시면 칼같이 일어나 집 앞 호수공원에서 조금은 밍숭맹숭한 클래식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 조깅과 클래식이라니 영 언밸런스 하기도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었다. 조깅을 마치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아침은 언제나와 같이 토스터 기에 구운 건조한 식빵 두 개와, 이틀에 한 번 꼴로 냉장고에 채워두는 우유. 아침을 먹고 나면 출근준비를 한다. 그녀의 출근 시간은 오후 두 시. 그녀는 열 시가 조금 넘으면 집을 나선다.
윤희는 집근처 역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 출근 한 시간 전까지 서점에 틀어 박힌다. 신간을 읽기도 하고, 이 달의 베스트 셀러 란에서 한참을 기웃거리기도 하며, 잡지를 들추기도 한다. 그러다 한 시 오분 쯤 서점에서 어슬렁 나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출근을 하면 약 두 시간씩, 사이에 십 분에서 길게는 이십분의 간격을 두고 세 타임 정도를 강의한다. 퇴근 시간은 약 아홉시에서 아홉시 십 분. 수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곧장 집으로 향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그녀의 오래된 연인, 해준과 시간을 보낸다. 나머지 요일은 반신욕을 즐기거나, 요가를 하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글을 쓰기도 한다.
그녀는 요즘 만큼 활력있고 즐거운 나날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일만으로 꽉 채워진 그녀의 하루 생활 계획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에게 백프로의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틀림없이, 더할나위 없는 만족을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뭐?”
 “해준이 말야, 다른여자 생긴거 아니냐구.”

 모처럼의 조금은 특별한 휴일이었다. 주말만큼은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윤희의 생활 철학이기에 그녀가 휴일에 집 밖으로 외출을 하는 일은 거의 드물뿐더러 특별하기까지 하다. 그 특별한 날, 그녀는 미진의 한 마디에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무슨 말인지를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쌓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윤희는 자꾸만 튀어오르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조금은 침착하게 되물었다. 그렇지만 낯빛은 점점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무엇하나 짚이는게 없다는 게 더 잔인할 수도 있음을 그녀는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내다보고 있던 일에는 공포를 느끼지 않게 마련이다. 언제나와 같은 일상은 지루하다는 망언을 어느 누가 뱉었을까. 갑작스레 닥치는 센세이션은 생활에 조금도 유익하지 않다.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애써 틀을 맞추어 놓은 그 만족스러운 생활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그녀는 물론,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

 파랗게 질린 그녀의 낯빛 때문이었는지, 미진은 말머리를 내어 놓고도 선뜻 이어가지 못했다. 윤희는 좀 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더욱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저께, 그러니까 목요일에… 오랜만에 동생이랑 명동까지 쇼핑을 나갔었거든. 한참 정신없이 쇼핑을 하다가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길래 근처 테이크 아웃 전문점에 들어가서 아이스 커피를 주문해놓고 동생이랑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창 밖으로 해준이가 지나가더라고…….”

 미진은 말 끝을 살짝 얼버무리며 윤희의 눈치를 봤다. 윤희는 어서 말 해보라는 눈빛으로 미진을 바라봤고, 미진은 살짝 망설이는 듯 하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곁에 누군가가 있더라구우, 자세히 보니까 여자였어… 그래서 나는 당연히 너이겠거니 하면서도 뭔가 이상해서 계속 그쪽을 쳐다봤어… 근데 해준이 옆에 있는 여자가 니가 아니라 다른 여자인거야…….”

 탁자위의 깍지를 낀 윤희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미진은 윤희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며 그녀의 안색을 살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윤희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했다. 하나, 둘. 하나, 둘. 허나 마음은 좀 체 가라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쿵쾅쿵쾅 날뛰기 시작했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탁자 아래로 감추며 윤희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혼잣말을 되뇌었다. 누님이었을까. 아냐, 누님이었다면 미진이가 몰라 볼리가 없지. 그렇다면 나나 미진이가 모르는 사촌? 아냐. 나와 미진과 해준이 함께 해온 시간만 해도 어느 새 스무 해가 더 된다. 더더군다나 나와 해준이 연애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십 년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 내가 모르는 사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맞추고 만들어내 봐도 별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되자 윤희는 조금씩 이성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희는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미진을 보채지 않고 그저 입을 꾹 다문채 심호흡을 할 뿐이었고 미진은 그런 윤희의 모습에 덩달아 초조해져 손톱을 씹었다.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미진아.”

 그렇게 약 이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윤희의 첫 마디는 의외로 담담하면서도 소소한 것이었다. 손톱만 물어 뜯으며 윤희의 낯빛을 살피던 미진은 점짓 놀라 윤희를 바라보았고, 윤희는 그런 미진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미진은 더 이상 어떤 행동도 윤희에게 득이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고, 윤희가 바라는대로 카페에서 나오자 마자 행선지를 갈라 헤어졌다.
그리고 윤희는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로 부숴지고 있는 그 여느날과 다름없는 겨울의 태양볕이 오늘따라 강렬하고 따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현기증을 느꼈다. 윤희는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몸뚱이를 정류장에 놓여진 짤막한 직사각형의 벤치에 앉히고서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한다고 수도 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그 이성적인 판단이 무언지는 정작 조금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희는 밀려드는 무기력감에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정류장에 앉은 채로 다섯 대쯤 보냈을 무렵, 결국 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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