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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국인 "나의 조상은 조선의 마지막 국왕"
게시물ID : humordata_3461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이모냐
추천 : 3
조회수 : 64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8/18 11:17:43
70대 중국인 주장.."DNA 검사 통한 혈통확인이 마지막 소원" 전문가들 "결정적 입증 자료 없어 확인 불가능" (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 중국의 한 70대 노인이 자신의 조상은 '조선의 마지막 국왕'이라고 주장하면서 DNA 검사를 통한 혈통 확인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17일 전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중서부 산시(陝西)성의 성도 시안(西安)에 살고 있는 올해 71세의 돤즈민(段志民)씨. 지난 14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중인 돤씨는 시안 현지 신문인 화상보(華商報) 기자에게 "조부께서 알려준 바로는 내 조상이 조선의 마지막 국왕이고 나는 그 5대 후손입니다"라고 말했다. 병상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코에 꽂고 링거 주사를 맞고 있던 돤씨는 기자에게 자신이 들어 알고 있는 가족의 비사를 들려준 후, DNA 검사를 하면 자기 가족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만약 내가 죽어서 머리카락이라도 한 올 남기면 앞으로 그게 가능할지..."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호적상 본적이 허베이(河北)성 펑룬(豊潤)현 주좡쯔(朱莊子)촌인 돤씨는 어렸을 때부터 조부로부터 심상치 않은 과거사를 듣기 시작했다. 돤씨가 조부로부터 들었다면서 화상보에 밝힌 그의 가족사는 다음과 같다. "그의 조상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국왕이다. 청(淸)나라 말년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다. 조선 왕실은 가문이 전멸하는 화를 피하고 왕실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일부 대신들의 계획에 따라 직계 왕세자 부부와 그 아들인 왕손 부부를 상인으로 위장해 중국으로 몰래 빼돌렸다. 허베이성 펑룬현 주좡쯔촌에 정착한 이들은 이때부터 성명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이 왕세자 부부가 돤씨의 고조(高祖)다. 그의 가족은 이러한 가족사를 외부에 일체 발설하지 않은채 가족 내부에서만 은밀하게 전해 내렸다. 그의 본적지인 허베이에는 고조부와 고조모, 증조부와 증조모가 청나라 복장을 하고 그린 초상화가 아직 남아 있다. 고조와 증조가 세상을 떠난 후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조선 왕조의 대신들이 불원천리하고 허베이까지 찾아와 제사를 모셨다." 화상보에 따르면, 돤씨는 지난 1980년대 한국측에 이같은 가족사를 조사해 밝혀주기 바란다는 편지에 이어 한국측 요청에 의해 초상화 사진도 보냈다. 사진을 받아 검토한 한국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오주석 연구원은 "청나라 때의 초상화로 보인다"고 회답했다. 이에 대해 돤씨는 "고조와 증조가 청대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가족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것이고 그 복장은 청나라 조정에서 보내준 관복이었다"면서 그 후에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한국측에 연락했으나 아직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돤씨와 부인 구롄성(顧蓮生.66)씨는 슬하에 두 아들 둘을 두었고 손자도 1명 있다. ◇ 검증 = 베이징에 있는 중국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黃有福) 교수는 자신도 지난 1987년 여름 중국의 한 신문 기자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돤씨를 시안으로 방문해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화상보 보도 내용과 자신이 만났던 사람의 가족사에 대한 진술은 일치하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고 연대 등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청나라 복장의 전신 초상화 4점 외에는 아무런 입증 자료가 없고, 조선 왕실이 왕세자를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문헌상의 기록은 물론 구전 자료도 없어 현재로서는 돤씨의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1907년부터 일본이 한반도를 병탄한 1910년까지 재위한 마지막 왕 순종(1874-1926)은 자녀가 없었다는 점, 돤씨의 나이로 보아 그의 5대조면 병탄 전후의 일제 침략기보다 연대가 훨씬 올라간다는 점도 차이가 나는 대목이라고 황 교수는 지적했다. 베이징의 다른 전문가는 허베이성 펑룬현에는 돤씨의 본적지인 주좡쯔촌과 함께 병자.정축호란(1636.12-1637.1) 때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이 집단을 이뤄 살던 고려포보(高麗鋪堡)가 있었고,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본의든 아니든 조선 왕족들의 청나라 왕래가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이런 역사적 사실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한편 돤씨의 5대 조상이 정착해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는 허베이성 펑룬현은 현재 탕산(唐山)시 펑룬구로, 고려포보는 고려포촌으로 바뀌었다. 고려포촌에서는 지난 2003년 고려포보 옛 역참(驛站) 유적에서 명(明)나라 가정(嘉靖) 30년(1551년)에 세운 '고려포보'라는 석비 등 상당수의 유적이 발굴됐다. 중국 사서 등에 따르면, 고려포보에 역참이 처음 세워진 것은 당(唐)나라 때였으며, 이 역참의 주된 고객은 조선의 사신과 상인 등이어서 가정 30년에 이 역참을 고려포보로 명명하고 석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고려포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김창업의 '연행록' 등에도 언급돼 있다. 그러나 돤씨측이 보내준 사진을 받아 검토했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오주석 연구원은 지난해 2월 사망해 그의 의견은 들을 수 없었다. ------------------------------------------------------------------------------------------------- 쩝... 죽기 직전 노인네의 마지막 소원인데... 불쌍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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