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제 스물 두번째 제 생일입니다.
사실 생일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냥 그려려니 했던 사람입니다만..
그래도 예전같으면 말안해도 친구들이 알아서 챙겨줄때도 있었고
가족들한테도 생일축하한다는말도 듣고 했었는데.......
저는 어렸을적부터 굉장히 풍족하게 산 편이고
아버지의 재력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특혜까지
누렸던.. 아주 행운아였죠.
어렸을적에는 모르고 지냈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남들이 못가지는것 못해보는건 다 가지고 해보고 그 어린나이에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고 했지만
전혀 '감사함'이라는걸 모르고지냈습니다.
저는 오히려 더 더 더 많은것을 원하기만했죠.
끝끝내 제 고집에 못이겨 어렸을적부터 가고싶어했던 유학을
17살이란 나이에 미국이라는 타지로 떠났고 (도피유학은 아니였습니다. 어렸을적부터 유학을 동경했던..)
모든것이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는 4년제인곳이 많고 (9학년~12학년)
제가 딱 10학년이 끝나갈쯔음 집에 일이 터졌죠.
아버지 사업이 어떤 사람에 의해서 안좋게 휘말리셨고
법정까지 서게되면서 직장까지 잃으시고 법정에 들어가는 엄청난 액수에
타당치 못한 벌금까지 물리게 되면서 우리가족은 한순간에 나락에 빠졌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저는 정신을 못차렸죠.
저는 아버지께서 보내주시는 용돈이 점점 줄고 제때제때 못붙여주시는것에대해
불만이 커져갔고... 이해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11학년이 되고서야 얼마나 심각한상황인지 깨달았고
저는 어떻게든 대학에서 장학금을 타기위해 공부를 열심히했죠.
제가 가장 가고싶어했던 대학.. 제가 전공으로 할 전공과목 미국 전체 학부순위가 2위나되는곳에
합격통지서를 받은날... 남들은 파티를 열고 잔치를 벌여도 모를 판에
저는 학교 밖에 나가 어느 골목길 사이에서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장학금을 주겠단 소리는 한마디도 없었거든요.
마침 세계경제침제시기와 우리나라 환율이 급등하는 불경기가 겹쳐 달러는 급격히 올랐고
미국에서도 국제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제도가 여러곳에서 폐지가 됐습니다.
집상황은 더 악화가 되었고, 입학신청을 한 10군데 학교중 9개를 다 붙었지만
모든학교 학비를 댈 상황이 안된다는걸 깨달았죠.
학교가 도시근처라 아이들은 주말마다 나가 놀았지만
저는 기숙사에 쳐박혀서 혼자있는 시간이 늘었고.. 아이들과 점점 멀어질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성격이 워낙 활발하고 운동도 좋아하고 정말 인기도 많았는데..
제가 아이들을 멀리하니 처음엔 걱정해주던 애들도 하나둘씩 떠나더라구요.
제가 멀리한 이유는......
차마 그 아이들과 어울릴수가 없었기때문이에요..
아이들은 다 대학가는데 나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야했고....
자존심때문에 학교를 못간단 말도 못하겠고...
무엇보다도 정말 힘들었던이유는....
그 누구에게도 이런 처지며 내 심정을 털어놓고 들어줄사람이 없었다는겁니다..
부모님께는 차마 안그래도 힘드신데 더 걱정드리기가 싫었고
저는 장남에다가 동생이 둘인데 나이차가 큽니다...
동생들은 집안사정을 제대로 모를뿐더러... 친척들도 다 힘들기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고 기댈수가 없었습니다.
4년이란 긴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졸업식때도 저희 가족만 참여를 못했습니다.
모든 학교아이들은 다 부모님또는 친척분들이오셔서 축하를 했지만
저는 혼자서 쓸쓸히 앉아서 졸업장을 받아야했죠.
부모님께는 제가 전화해서 안와도 된다고. 다른 한국학생부모님들도 안온애들 많다고 거짓말을 하구요..
저는 합격한 대학교에 모두 연락을 취해 입학을 1년 늦춰달라
집안문제로 그럴 사정이있다고 하여 1년을 연기시켰습니다.
한국에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요.
친한친구들에게는 한국에 있을거라는 말을 할수가없어서
모두 연락을 끊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저는
집에서 나와 서울에 조그마한 방을 하나 잡고
서빙일이며 과외며 학원TA며 돈을 벌었습니다.
집에서 나온 이유는 적어도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드리고자
제 생활비만큼은 제가 벌면서 살고싶었거든요..
적금까지 들고 어떻게든 학비를 벌여보려했지만
미국 대학교의 학비는 상상을 초월했죠.
그래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을 보며 힘을 내면서 살고있었는데..
집안에 빛은 점점 불어났고
아버지가 카드론까지 쓰게 되는 상황이 온거죠. 카드빛 돌려막다가 상황이안되고...
저는 그사실을 알고 다음날... 은행에가서 적금을 깨고 은행 통장에 있던 모든돈을
아버지계좌로 붙이고 전화드렸습니다.... 그때 한 800만원이였는데...
아버지가... 우시더라구요.
태어나서 아버지 우시는것 처음들었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아무말도 못하시고
정말 서럽게 우시더라구요.
아들아 미안하다면서... 좋은대학 붙었는데 보내주질 못할망정 너가 힘들게 땀흘려 벌은 돈을
이렇게밖에 쓸수 없다는게 너무 죄짓는것같다면서 서럽게 우시더라구요....
저또한 전화를 끊고 정말 방안에서 소처럼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힘들게 공부하셔서 땅바닥에서부터 자수성가하신분이고
어머니는 매우 공부를 잘하셨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때문에 대학을 못가셨습니다.
그런 과거때문인지 부모님이 정말 너무 힘들어하세요.
아버지는 하루하루 자기 힘들었던 옛날 시절을 그대로 겪게 하는것 같다고 하시고
어머니는 자신도 가지못한 대학을 자식마저 못가게 한다는것이 힘드신가봐요.
아버지는 한숨만 늘어가시고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셔서 하루종일 멍하니
한곳만 바라볼때가 많습니다... 저랑 통화만 하고 나시면 우시구요...
그렇게 한국에서 대학을 안가고 생활한지 어연 9개월이 다되갑니다.
집안 상황은 악화될대로 악화되었고.. 미국은 도저히 돌아갈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대학 입시생 사유로 연기했던 군대의 연기사유를 취소를 하고 빨리 군대를 가려합니다.
그방법밖에 없거든요...
대학교 입학도 최대 2년만 연기가 되서
이미 1년을 쉰데다 군대 2년이면 도합 3년이라 모두 다 무산됩니다..
한마디로 군대다녀오면 다시 입시준비를 해야한다는거죠....
군대갔다나오면 24살인데...
막막합니다 정말....
어제생일은 문자도 전화도 가족에게도 한통도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너무 정신이 없으시다보니... 잊으신것같고
그렇게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던 저도 다 연락을 끊은지라...
남들은 22살이면 재밌게 놀러다니고 즐거운 생일파티를 할 터인데
저는 방금 일마치고 들어와서 겨우 좀 씻고 누웠네요...
12시가 지나 2시가 좀 넘어가니... 생일도 어떻게 지나가버렸습니다.
무슨말을 하려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주저리 주저리 글만 쓰네요..
이렇게 우울한 생일은 처음이였습니다....
Happy Birthday to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