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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story_1378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머씨발★
추천 : 0
조회수 : 2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6/09 23:27:50
아주 예전에 학교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인데..반응이 좋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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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향에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의 일이다.
내 자리가 창가쪽이었는데 누군가 앉아있었다. 보아하니 내 또래쯤 되어보이는 괜찮은 여햏이었다.
일단 옆자리가 여햏이라는 데에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당면한 현실문제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내자리에 앉고 난리삼?"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쳐다보자 그 여햏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제가 창가쪽에 앉으면 안될까요?"
솔로부대 22년차의 굳건한 정신을 가진 본인은 이쁜 여햏이 짓는 미소에 일순 정신이 혼란스러웠으나
애써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세요! 하하하"...마지막에 얼빠진 웃음은 왜나왔는지 모르겠다. 냉정이란건 내 생각뿐일지도.
아무튼 옆에 이쁜 여햏이 있건 아줌마가 있건 별로 신경쓰기 싫어 귀에 엠피를 꽂고 음악에 집중했다.
그렇게 가던중 어느순간부터인가 어깨에 무게감이 실린다. 옆을 보니 이 여햏 아까부터 혼자 꾸벅꾸벅
졸더니 점점 머리로 내 어깨를 수 차례 가격하고, 무딘 본인 아무 반응도 보이질 않자 대놓고 머리를
기대고 잘도 자는 것이었다. 솔로부대 22년이란 경력은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육체의 여햏에 대한 면역력 또한 제로베이스로 만들어 버렸는지 이쁜 여햏이 머리를 어깨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은 4중주로 울려대고 아랫동네사는 동생놈은 점점 깨어나는 것이었다.
당황한 본인은 냉정심을 되찾고자 공인된 동생놈제압곡인 애국가를 마음속으로 열창하기 시작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어깨위의 여햏 얼굴을 쳐다본 순간 새로운 심득을 얻었다.
"그래, 피할수 없으면 즐기자꾸나. 인생 뭐 있어?"
아예 어깨위의 무게감을 즐기자고 결심한 본인은 좀더 여햏쪽으로 붙어 어깨를 베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고, 간혹 기차가 덜컹거려 머리가 어깨를 떠날시엔 매우 안타까워하며 머리야 돌아오라고,내가
잘못했다고 애절하게 속으로 외쳤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 여햏도 아예 날 편한 베게로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덜컹거릴때마다 깨는것 같더니만 곧바로 다시 베고 자더라. 그리고 그렇게 10초 간격으로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쌩판 첨보는 남햏의 어깨를 베고 1시간 넘게 잘도 자는걸보면 어지간히 무딘
여햏이던지, 본인을 보고 첫눈에 사로잡혀 흠모하는 마음에 어깨 한쪽이라도 붙잡고 늘어진건지 모르겠
으나-본인은 후자로 굳건히 믿고 있다. 본인의 믿음을 깨지 마라. 이것은 신앙심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튼 종착지까지 본인은, 이쁜 여햏은 머리 무게도 이쁘구나(?) 하는 새로운 심득을 되뇌이며
베게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종착지에 거의 도달하자 여햏 고개를 들고 눈을 뜬다. 심히 뻘쭘하다. 뭐라 해야 하는가, 평소 작업관련
이론습득에 충실해온 본인 지식에 따르면 이럴때 멋진 멘트하나 날려줘서 여햏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연락처를 얻으면 상황종료일 것이다. 허나 이론과 실제는 다른법. 좀 많이 다르더라. 말한마디 못하고
서로 힐끔힐끔 본척 못본척 가끔 눈도 마주치며 쳐다보다가 어느새 도착했다. 머릿속은 맹렬히 돌아가고
반면에 몸은 느릿느릿 외투를 걸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여햏도 아쉬운지-본인의 시점에서 쓴
것이기에 아무래도 주관적 판단과 사심이 많이 들어갔음을 고백한다- 느릿느릿 옷을 걸치고, 짐을
챙겼다. 나란히 기차에서 내리고, 나란히 출구로 걸어나갔다. 물론 말한마디 못붙여본 상태이다.
그냥 걷는 속도가 비슷해서 나란히일 뿐이었다. 그래도 본인 혼자 좋아라하며 나란히 가다보니 문득
생각나건대 지갑을 기차안에 두고왔다. 간담이 서늘해져 여햏 돌아볼것도 없이 기차로 뛰었다. 다행히
지갑은 회수했으나 여햏과의 인연은 끝이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씁쓸히 걸어나오는데, 저 앞에 그녀가
보인다.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거리차가 별로 되지 않는다. 거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한다.
그래, 이건 그녀도 날 기다렸다는거야. 좋아 인간 *** 오늘 드디어 솔로부대 전역하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그녀쪽으로 다가갔다. 마침 그녀가 뒤를 돌아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불타고 한 단어만이 둥둥 떠올랐다. "이쁘다"
굳어버린 뇌는 사고활동을 멈추고, 육체만이 기계적으로 관성에 따라 돌아갔다.
즉, 그녀쪽으로 걷던 그대로 걸어가 그녀를 휙 지나쳐버리고, 그순간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머릿속에
떠오른 부끄러움,안타까움,쪽팔림,민망함,자괴심 등등 온갖 감정의 격류에 휩싸여 냅다 지하철 역 안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물론 단순히 어깨를 베고 잠든것일 수도 있고-본인도 이게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집에와서 거울보니
거울이 그렇다고 하더라.-본인과 서로 삘이 통해서 불순한 의도로 어깨를 빌리고 빌려줬는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아쉬운점은 나름대로 스토리가 얽힌 이쁜 여햏에게 결국 말을 붙여보지 못했다는것이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왔구나. 혼자 머릿속에선 쌩 쑈를 다 했으니. 이래서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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