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스템은 좀 갈아엎었으면;;;
‘시민 A는 자신을 덮친 살인 강도에게서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격투를 벌였다. 그런데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아 폭행죄로 처벌을 받았다’
뉴스를 보다 보면 이따금 접할 수 있는 소식입니다. 자신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려는 가해자에게 저항하는 행위, ‘정당방위’를 대한민국 법이 잘 인정해주지 않아 생기는 일이죠.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법이 피해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현실의 씁쓸함을 비꼬곤 합니다.
헌데 이 사실을 아시나요? 이 현실의 씁쓸함을 맛볼 수 있는 게임이 존재합니다. 다름아닌 <검은사막>입니다. 다른 유저를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유저, 소위 ‘막피 유저’에게 선제 공격을 받았을 때 섣불리 반격했다가는 되려 피해자가 PK 패널티를 받을 수 있거든요.
어쩌면 현실보다 더 지독할지도 모르겠네요. <검은사막>에서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길드원까지 피해를 받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억울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런 억울한 일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는 어떤 손해를 받게 되는지 정리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필진 아퀼
가해자를 처치했는데 길드 전체가 PK 패널티를 받는다?
먼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필자가 직접 들은 사실이며, 다른 길드가 똑같은 상황을 겪는 걸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 레벨 50을 달성한 유저 A, 그는 15~30분에 경험치 1%씩 오르는 극악한 상황을 버텨가며 꿋꿋이 사냥을 계속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약을 사고 사냥터로 가는 도중에 PK를 일삼는 유저를 만났다.
A는 상대에게 선제 공격을 맞은 뒤 반격에 나섰다. 허나 가해자를 죽이고 난 뒤 살펴보니, 자기 길드명이 옅은 붉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 순간, 길드 마스터에게서 ‘갑자기 길드 성향치가 20만 포인트나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막피 유저에게 정당한 반격을 가했을 뿐인데 길드가 불량 단체로 낙인 찍힌 것이다.
길드명이 옅은 붉은빛으로 변하자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 모든 길드원들이 PK 유저들에게 적용되는 패널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망할 때마다 100% 패널티를 받아 무기 강화 차수가 쭉쭉 떨어지거나 인벤토리 안에 보관하고 있던 악세사리를 떨어뜨리는 등 피해가 극심하기 짝이 없었다.
A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드를 탈퇴하려 했으나 당장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검은사막>의 길드 시스템 상, 길드원은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길드 탈퇴를 하면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허나 사망 패널티 때문에 극심한 경제적 손실을 겪은 A는 위약금을 당장 지불하지 못했다.
이에 길드 마스터는 어쩔 수 없겠다고 판단해 A를 길드에서 추방하였다. 이 경우에는 길드 마스터가 계약을 파기한 것인지라 길드 마스터가 A에게 위약금을 전달해야만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A의 불행뿐만 아니라 A가 속한 길드의 자산 손실이라는 결과까지 가져온 셈이다.
그러나 A를 추방한 뒤에도 길드의 성향치는 전혀 회복이 되지 않았고 남아있는 길드 유저는 계속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A의 길드 마스터는 길드 성향치를 도로 채울 방법을 모색했지만 답이 없었다. 깎여나간 길드 성향치를 도로 채우려면 길드 의뢰를 수백 번 이상 반복 완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길드 레벨이 최대치까지 올라가서 100명의 유저를 동원할 수 있다면 모를까, 길드를 이제 막 만들어 인원이 수십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A의 길드 마스터는 애써 창설한 길드를 해체하고 새로 길드를 만들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로 인해 길드를 창설하는 데에 드는 은화 30만 냥, 그리고 길드원을 모으는 데에 투자한 시간이 물거품이 돼버리고 말았다.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치했을 때 도리어 PK 유저로 낙인찍힐 수 있다.
둘째, 피해자가 길드에 속해 있다면, 길드 성향치가 떨어지고 길드 유저들이 PK 유저와 같은 사망 패널티를 받게 된다.
셋째, 길드 성향치를 떨어뜨린 유저가 탈퇴해도, 그 길드의 성향치는 회복되지 않는다.
30초 넘어서 가해자를 잡으면 피해자가 PK범이 된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검은사막>의 정당방위 성립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정당방위 성립 요건을 충족하려면 (1) 상대에게 먼저 공격을 당해서 PvP 모드가 강제 활성화됐을 때 반격해야 하며 (2) 정당방위 판정이 유지되는 시간 동안 반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당 방위 판정이 유지되는 시간이 고작
‘30초’밖에 안 됩니다. 가해자의 최대 HP와 방어력이 높아서 잡을 수가 없다면? 혹은 가해자가 원거리 공격을 날리고 도망가길 반복한다면? 그때는 포기해야 합니다. 제한 시간 30초를 넘긴 뒤 가해자를 잡으면 도리어 피해자가 PK 유저로 판정받습니다.
☞ 검은사막 공식 가이드 보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게임에는 정당방위 판정이 몇 초 남았는지 표시해주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제 공격을 당한 뒤 자신이 상대를 공격해도 되는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영상을 보고 직접 찾아보시죠. 어제 필자가 PK를 당했을 무렵 장면입니다.
상대에게 표시되는 칼 모양 말고는 정당방위 상태나 시간에 대한 안내가 없습니다.
일반 유저와 길드 마스터에게는 어떤 영향이 갈까?
그렇다면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PK 유저로 몰리며, 그로 인해 길드가 와해되는 이 현상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유저 성향 별로 정리해서 말씀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길드에 들지 않은 유저: PK 유저를 만났을 때 30초 내로 상대를 죽일만한 캐릭터 능력치, 컨트롤을 가지지 않은 유저라면 복수조차 못 합니다. 설령 어렵게 복수를 한다 치더라도 선제공격을 당한 다음 30초가 지난 뒤에 잡으면 피해자가 PK 유저로 인식돼 버립니다. 컨트롤이 약한 유저, 혹은 캐릭터 능력치가 떨어지는 유저는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죠.
(2) 길드에 가입해 활동하는 유저: 자기는 PK 유저를 만난 적도 없는데 다른 길드원이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 상황에 PK 유저를 잡는다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사건 현장에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길드 성향이 떨어져 길드 이름이 옅은 붉은색으로 변하는 순간 사망 패널티가 급증합니다. 죽지만 않으면 피해는 없지만, 죽는 순간 아끼는 무기의 강화 단계, 인벤토리에 보관한 반지와 무역품이 줄줄이 떨어질 겁니다.
길드 성향 때문에 피해를 받은 유저가 손해를 막으려면 길드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검은사막>은 길드 마스터와 길드원이 계약관계를 맺어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길드원이 계약 기간이 다 지나기 전에 탈퇴를 하면 길드 마스터에게 위약금을 물어주는 시스템을 채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탈퇴를 하려면 길드에게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가야 합니다. 가뜩이나 길드 성향치가 떨어져 불이익을 받는 것도 서러운데, 탈퇴 비용까지 내야 한다니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죠.
그러니 모쪼록 다른 길드원이 PK 유저를 만나지 않길 기도하고, 행여라도 만난다면 30초 내로 확실하게 잡길 빕시다. 아니면 PK 유저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길드원을 처치하길 기도하세요.
(3) 이제 갓 길드를 차린 길드 마스터: 가장 큰 손해를 봅니다. 단 한 명의 길드 유저라도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 PK 유저를 죽일 경우, 길드 성향치가 20만 포인트나 깎이고 바로 PK 유저와 같은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문제는 설령 성향치를 떨어뜨린 유저를 내보내도 길드 성향치가 전혀 회복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길드 의뢰를 처리하며 성향치를 올릴 수는 있는데, 길드를 막 차린 상태에서는 수십 명의 인원만 동원해 길드 의뢰를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은 인원수로 의뢰를 해결해야 하는 만큼 길드 의뢰를 많이 완수할 수 없으니, 20만 포인트를 벌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피해를 받은 신입 길드 마스터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길드를 해체하는 처지에 몰리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되면 길드 창설 비용 은화 30만 냥과, 길드원을 끌어 모으느라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리고 맙니다.
(4) 이미 길드 크기를 충분히 키운 중견 길드 마스터: 큰 피해를 입긴 하지만 그래도 신생 길드만큼 치명타를 받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일단 길드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보유하고 있는 성향치도 높아지기 마련이거든요. 성향치가 일정 이상을 넘기면 한 명이 다른 유저를 PK했다 해서 모든 길드 유저가 바로 PK 유저와 같은 패널티를 받지는 않게 됩니다.
복구 속도도 빠른 편입니다. 특히 길드인원이 100명이나 된다면, 머릿수를 앞세워 길드 의뢰를 고속으로 완수하며 성향치를 재빠르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당하면 길드를 해체해야 할 수 있는 소규모 길드 마스터보다는 나은 편이죠.
단,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관리가 힘들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화난다고 가해자를 무조건 죽여버리는 유저가 길드에 여럿 있다면 단숨에 길드 성향치가 대폭 깎일 수도 있겠죠.
한편 이 문제를 두고 새로운 우려를 보이는 유저들도 있습니다. 길드끼리 성을 두고 격돌하는 콘텐츠 ‘점령전’에 관심을 보이는 유저들이죠. 경쟁 길드가 정당방위가 안 되는 상황을 노려 PK를 한다면 싸우기도 전에 길드의 전투력을 허비하고 말 테니까요.
특히 이들은 ‘한 사람이라도 고의나 실수로 사람을 죽이면 길드 성향치가 크게 깎이는 것을 이용해 특정 길드가 다른 길드의 점령전 준비 작업을 방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지나친 도발로 PK를 유발하거나, 아예 첩자를 경쟁 길드에 보내 무차별 PK를 자행하는 상황도 걱정하고 있고요.
그 경향이 심해진다면 <검은사막>이 내세우는 굵직한 길드 콘텐츠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유저들은 다음게임과 펄어비스의 발 빠른 대응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