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며칠 전에 청각장애인을 위해 롤드컵 준결승 SKT 대 RNG 경기의 해설 내용을 속기로 제공하겠다고 글을 올렸던 속기사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가 느끼기에는) 아주 성공적으로 청각장애인분들에게 해설 내용이 문자로 전달되었습니다.
1세트부터 5세트까지 약 15~20여 명의 청각장애인이 아프리카 방에서 경기 영상과 자막을 받아보았고
해설 내용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엄청 크다며,
너무 잘 보았다고 연신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말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
저는 청각장애인 목적 사업을 하는 비영리 회사에서 일하는 속기사입니다.
현장에서 청각장애인분들에게 소리를 문자로 보여주는 일을 하면서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했는데요.
경복궁 야간 해설 때 같이 따라다니면서 문화해설사의 말을 속기로 제공해 준 적도 있었고
기획사의 협조를 얻어 콘서트 때 같이 들어가서 가수의 노래 가사와 멘트를 문자통역 해 준 적도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분들을 만나던 중에 알게된 것은 청각장애인분들도 게임을 좋아하고
어떤 분은 개인 방송까지 챙겨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BJ의 말은 안 들리지만 채팅으로 말을 유추할 수 있다면서...
얼마 전에 만난 한 청각장애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나도 해설이 듣고 싶다. 특히 해설들이 페이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듣고 싶다."
이번 롤드컵 준결승전 문자통역은 이렇게 롤을 좋아하는 청각장애인분들에게 속기사로서,
그리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좋아하고 자주 즐겨하는 플레이어로서
해설 내용을 "눈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많은 분이 추천을 해 주시고 또 다른 사이트에도 글을 옮겨주셔서 덕분에
예상한 것보다 많은 청각장애인분들에게 본 문자통역이 홍보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제가 올린 글을 번역해서 레딧에까지 올리셨더군요... ㅠㅠ)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속기사로서 속기를 시작한 후 지난 4년 동안, 또 수백 군데 수백 시간의 문자통역을 하는 동안
금번 롤드컵 준결승전 문자통역이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속기사는 취업도 어렵고 처우도 그리 좋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문자통역은 제게 제가 가진 기술이 가치가 있다는 확신과 함께 속기사로서의 자존감이 높아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승전도 또 하고 싶지만 이번처럼 전클동의 말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속기사를 또 구하기 어렵고
그 날에는 회사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또다른 중요한 행사가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할 수가 없네요.
혹 다른 속기사분들께서 이어가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와 같은 문자통역을 우리 김동준 해설을 맡았던 속기사와 함께 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렵다면 저 혼자서라도 나중에 유명 BJ의 롤 방송, 혹은 경기 해설을 문자통역으로 제공하겠습니다. (BJ는 혼자서 말하니까요.)
많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 지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주말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교육과 취업, 인간관계에서 힘듦을 겪고 있는 청각장애인분들을 기억해 주세요.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롤드컵 결승전 ㅅ... 파이팅 피들 유저들 파이팅 ㅋㅋ
*본 글을 속기 협회,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걸 절대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