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당시 남한의 산업 발전이 박정희 대통령의 공로라는 걸 인정했어요. 더 시간이 지나면 한국의 공산화가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빨리 죽이려고 한 겁니다."
1968년 1월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던 북한 특수부대원 김신조(71)는 45년이 흐른 뒤 노(老) 목사가 돼 있었다. 그는 함께 내려온 북한 무력부 총정찰국 124군 부대원 31명 중 우리 군(軍)에 생포된 유일한 인물이다. 김 목사는 11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성경교육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매스컴에 나올 때마다 좌파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까불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는 협박 전화를 자주 받았다"며 "저 때문에 고통받았던 수많은 분께 사죄하고 도와준 분들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안보에 도움이 되도록 기도하고 살아남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