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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일 수도
게시물ID : sisa_3510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명예로운아들
추천 : 0
조회수 : 1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1/23 18:20:13

   용산 참사가 일어난지도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 정권교체가 되어 그분들의 억울함을 풀것으로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기약을 할 수가 없게 되었네요. 아래 글은 용산참사 변론을 하셨던 김형태 변호사가 2009년 9월 28일 한겨레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입니다. 몇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칼럼이 가슴깊이 와 닿네요.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김형태칼럼] 바로 나일 수도

 

수십년 만에 다시 찾은 봉정암은 낯설었다. 고즈넉하고, 퇴락하는 기미마저 보이던 자그마한 암자는 간 곳이 없고 으리으리한 법당이며 요사채들. 헬기까지 동원해 계속 집을 지어 가니 ‘봉정암’이 아니라 ‘봉정사’였다. 주말이면 백담사에서 해발 1600m의 봉정암 오르는 기나긴 산길에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줄을 잇는다.

전국에서 기도발이 제일 좋다는 봉정암이 그렇고, 저 남쪽 바다 향일암은 지붕이며 벽, 기둥에 온통 금물을 들여 놓았다. 서울 변두리 우리 동네에도 수백억짜리 교회가 들어섰고, 멀쩡했던 성당이 헐리고 백억짜리 성당을 새로 짓는다. 가난한 동네 신자들 호주머니에서 이런 거액이 나와야 하니 대학병원에서 청소해 주고 버는 100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아주머니도 매달 십만원, 이십만원씩 거들어야 한다.

고타마나 예수는 자기 중심의 태도를 버리라고 가르치셨건만, 그 제자들은 스승들 이름 팔아 나와 우리 가족의 ‘소원 성취’라는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죽어서도 영원히 천국이며 극락에서 잘 먹고 잘 지내길 열심히 빌고 또 빈다. 예수는 40일을 단식하면서 돌로 빵을 만들라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나 하느님의 아들이 되라는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셨다. 고타마 역시 악마들의 왕인 마라가 보낸 아름다운 딸들과 군대들을 돌려세우셨다. 말이 악마고 마라지 어디 그런 ‘존재’가 별도로 있을 리 없다. 바로 고타마와 예수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기 중심적 태도를 그렇게 신화로 그린 거다. 평범한 필부필부들이 스승들처럼 이기(利己)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로되 그렇다고 스승들의 이름으로 ‘이기’를 부추길 일은 아닐 터다.

엊그제 용산 법정에서 진압경찰들을 증인신문하다 갑자기 목이 메었다. 남의 땅에 무단으로 집을 짓고 살아도 명도재판 없이는 힘으로 내쫓을 수 없고 경찰도 간여할 수는 없는 법. 상가에 세들어 장사를 하던 평범한 이웃들이 재개발에 걸려, 권리금이며 시설비도 못 건지고 내몰릴 판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냥 물러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인들이 ‘건물 짓는 동안 임시로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 제대로 보상을 해달라’며 옥상에 망루를 지으려 하자 일반 경찰도 아닌 특공경찰이 투입되었다. 이들은 농성자들의 안전도 고려해야 하는 경찰이라기보다는 테러범이나 적을 섬멸하는 군인에 가까웠다. 망루가 채 완성되기도 전인 당일 아침 8시 반께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이들이 출동했다.

망루 안에는 시너 통이 수십 개, 밥해 먹는 데 쓰는 엘피지(LPG) 통이 여러 개 있었고 시너 냄새가 가득 차서 일부 경찰들은 도로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1차 진입 뒤 시너 통들이라도 빼냈더라면 돼지갈비집 할아버지며 복집 아저씨 등 5명의 상인과 1명의 경찰관이 불에 타 죽는 일은 없었을 게다.

무조건 빨리 진압하라는 명령에 시너 냄새 진동하는 망루의 어둠속으로 들어서야 했던 한 경관은 법정에서도 무서웠던 그날의 기억들을 아직 털어내지 못한 듯했다. 농성하던 상인들이나 진압하던 당신들이나 모두 피해자라는 말을 꺼내다가 더이상 뒤를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럼 가해자는 누구? 절이며 성당이며 상가들을 부수고 으리으리하게 다시 짓는 재개발일 수도, 이를 통해 수백억 수천억의 이득을 얻는 조합이며 삼성 같은 시공사일 수도, 그 심부름꾼 노릇 하는 이명박 정부일 수도,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출세하려는 경찰 수뇌부일 수도…. 아니, 재개발 투기해서 나와 내 가족 잘 먹고 잘 살고, 내 소원 성취해 달라 열심히 빌고, 죽어서도 천국 가려는 우리 모두일 수도, 바로 나일 수도.


김형태 변호사

   출처 2009년 9월 28일 한겨레 신문 인터넷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79151.html

죄송합니다. 제가 링크는 거는 방법을 잘 몰라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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