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서 먹고 삽니까" 지난 20년 동안 내 가슴 속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메아리치고 있는 이 한 마디... 이제껏 그 누구한테도 해본 적이 없는, 내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 나는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는 부끄러운 기억을 먼저 끄집어내는 것으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숨기는 한, 내 삶의 어떤 고백도 결국 거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 개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남편이 사기혐의로 구속되었다며 내게 변호를 의뢰해 왔다. 나는 그 사건을 60만원에 수임했는데, 사실 당사자간에 합의만 되면 변론도 필요 없는 사건이었다. 당연히 변호사로선 사건을 맡기 전에 먼저 합의를 해보라고 권유했어야만 옳았다. 그러나 마침 변호사 사무실에 돈이 딱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었던 때라 그 아주머니가 나타나자 사건을 덜렁 맡아 버렸던 것이다. 사건을 맡자마자 사무장은 나더러 얼른 피의자인 그 아주머니의 남편을 접견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그건 사무장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피의자가 접견도 하기 전에 합의를 봐 버리면, 그 아주머니가 변호사 선임을 취소하고 해약을 요구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접견을 하면 계약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서둘러 접견을 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접견한 다음 날 그 아주머니가 찾아와 합의를 봤다며 해약을 요구했다. 난 일단 사건에 착수하면 수임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변호사 수임 약정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못 돌려준다고 버텼다. 속으로는 미안하고 얼굴도 화끈거렸지만, 당시 사정이 급해 받은 돈을 이미 써 버린 후였다. 그 아주머니는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서 먹고삽니까?" 하는 그 말 한 마디를 내 가슴 속에 던져 놓고는. 한 동안 나는 그 일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훨씬 뒤 내가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면서 언제부터인지 그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이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법정에 서서 주먹을 흔들며 양심을 거론할 때는 어김없이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나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고 이른바 청문회 스타가 되고 나서부터는, 그 아주머니가 던진 말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힌 화살처럼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돈에 탐 안 내고 인권변호사로서 오로지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이라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가 나갈 때마다, 어디선가 그 아주머니가 그 글을 읽고 있지나 않을까, 나는 가슴을 조이곤 했다.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려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지금쯤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그 아주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의 영욕과 진실을 담보로 하여 따뜻한 용서를 받고 싶다. - 여보, 나좀 도와줘(노무현 저, 1994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