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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참변 사료 - 독립군한테 깨지고 민간인 학살한 쪽발이
게시물ID : humorbest_3525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주접천사
추천 : 27
조회수 : 8292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5/05 19:22:34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5/05 01:24:05
청산리 대첩 승전기념 (앞에 분이 김좌진 장군)

간도 참변 (1920.10월부터 3개월간)

독립군 활동 저지위해 간도 참변 자행.
( 1만 명의 조선인 학살, 2500호의 민가 전소, 30여 개 학교 전소)
* 일명 '간도학살사건', '경신 참변'
[사료]
"..... 세계 민족이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자가 얼마일까마는 어찌 우리 겨레의 남녀노소가 참혹하게 도륙을 당한 것과 같으랴?.... 이른바 일본 장교가 많은 병졸을 거느리고 각처에 있는 촌락의 사람 사는 집, 교회당, 학교 및 양곡 수만석을 불질러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남녀노소를 총으로 죽이고 칼로 죽이고 몽둥이로 죽이고 묶어 죽이고 쳐서 죽이고 밟아 죽이고 깔아 죽였으며 생으로 매장하기도 하고 불에 태우기도 하고 솥에 삶기도 하고 찢어 발기기도 하고 코를 꿰기도 하고 갈비뼈를 발라 내기도 하고 배를 따기도 하고 머리를 자르기도 하고 눈알을 뽑기도 하고, 혀를 자르기도 하고 허리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사지에 못을 박기도 하고 수족을 자르기도 하여 인류로서는 차마 할 수가 없는 짓을 저네들은 오락의 일로 삼았다. 우리 동포들은 할아비와 손자가 함께 죽기도 하고 아비와 아들이 함께 도륙당했으며 그 지아비를 죽여서 그 지어미에게 보였고 그 아우를 죽여서 그 형에게 보였으며 혹 상인(喪人)이 혼백상자를 끌어안고 도망하다가  형제가 함께 죽임을 당하기도 했고, 산모가 포대기에 아기를 싸안고 달아나다가 모자가 함께 목숨을 잃기도 하였도다....
                                   (조지훈,[한국민족운동사] 중)

독립군이 사전에 일본군이 공격해 오기 힘든 산 속 또는 중·소 국경지대로 이동해 버림으로써 일본군의 독립군 섬멸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특히 독립군을 추격하던 일본군이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 서 오히려 독립군에게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은 한국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작전을 전개하였다. 3~4개월에 걸쳐 수많은 한국인 마을들을 불태우고 재산과 식량을 약탈하였으며, 한국인들을 보는 대로 학살하였다. 옌지현[延吉縣] 이란거우[依蘭溝]에서는 30여 호의 전 주민이 몰살을 당하고 마을 전체가 폐허로 변하였다. 10월 9일에서 11월 5일까지 27일 간 간도일대에서 학살된 사람들은 현재 확인된 수만 해도 3,469명에 이른다. 그 외 확인되지 않은 숫자와 3~4개월에 걸쳐 학살된 수를 합하면 피해자는 적어도 수만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일본은 노령 연해주에 살고 있던 동포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만행을 자행하였다.


출처 - 
http://blog.naver.com/bshhtt/44126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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