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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 이장집 큰아들이 서울로 유학간 날 누이는 목을 맸다. 정자 옆 느티나무 굵은 가지 끝,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동구 밖 정류장을 향해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누이의 상여가 집 마당에서 나가던 날, 어매는 상여채를 잡아당기며 못간다고 울었다. 그예 어매가 실신하고 나서야 꽃상여는 길을 나섰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디야,북망산이 멀다 하되 대문 밖이 북망이네 어이야 디야. 만가와 종소리에 둘러싸여 누이는 꽃가마타고 산으로 갔다. 어매는 누이가 불쌍해 화장은 차마 못하겠다 했다.
그 해 겨울, 여수골에서 나오는 시내가 얼었고 빙판 위로 모가지가 굴러내려왔다. 흉흉하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파출소 순사도 왔지만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모가지는 이장집 아들내미 것이 아니었다.
다음 해 봄, 벼인지 보리인지 파란 이삭으로 가득찬 논 사잇길에 서 있는 누이를 보았다. 품에 포대기를 안고 아지랑이처럼 하얗게 날 불렀다. 반가워 잰걸음으로 달려가 포대 안을 보니 낡은 배냇저고리만 보였다.
왜 이리 낡았수? 하고 묻는 차 덥썩 어깨 잡혀 눈떠보니 동네 어르신이다. 다짜고짜 너 여기 어딘지 아니 하시길래 고개 저었더니 상여집이라신다. 퍼뜩 둘러보니 정말 무논 가운데 덩그런 상여집이었다. 잠긴 문틈으로 보이는 검정 나무와 누런 깃발과 홍백 지화들. 니 이런 데서 자면 혼 빠진데이- 끌끌 하는 어르신께 꾸벅 절로 대답 대신하고 집으로 왔다.
여름방학 때에 이장집 아들이 내려왔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났을 때 누이 소식 첨 들은 것 마냥 안됐다며 날 위로했다. 예 하고 웅얼거리며 대답한 후 집으로 도망쳐 스스로 뺨을 치며 울었다.
어느 날 이장 아들이 상여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문틈에 머리가 꼈고 손에 낡고 작은 옷고름을 쥐고 있었다.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못했다. 미치광이가 되어 밤낮으로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모두들 겁먹고 피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형님, 하고 부를때면 그가 언제나 그래 처남, 하고 활짝 웃으며 대답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