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한화-SK전이 열린 지난 5일 대전구장.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위치한 우승기념탑에 몇몇 한화팬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고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지나가는 팬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절을 올린 뒤 고수레까지 했다. 최하위로 떨어진 한화의 선전을 기원하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야구장에서 고사를 지내는 건 1년에 한 번 있는 연례행사다. 1월 초 구단 시무식에서 구단 전직원이 참석해 한 해 동안 팀의 안전과 선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합동 고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팬들이 직접 고사를 여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그것도 시즌 중에는 더 그렇다. 하지만 한화이글스 팬클럽 '잇츠한화'는 일주일간 머리를 맞댄 끝에 행동으로 옮겼다. 시름에 빠진 선수단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한 의미였다. 고사를 위해 필요한 돼지 머리를 비롯해 시루떡·과일·막걸리 등도 팬클럽 회원들이 사비로 십시일반 모아 준비했다. 고사 자리에 함께 한 홍창화 응원단장도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며 팬들의 정성에 놀라워했다. 고사문도 경건했다. '이글스 선수단의 사기진작을 기원하기 위해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탑에 모여 술과 음식을 정성껏 마련했으니 이글스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과 젊은 패기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나갈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어 '선수들의 고개숙인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팬들을 위해 선수들이 그들의 일을 더 사랑하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팬들은 단순히 성적을 원한 게 아니었다. '잇츠한화' 이영준 운영위원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원하는 건 1등을 하는 것,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 경기를 미리 포기하지 않고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다. 지금 이 어려운 상황이 선수들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만으로도 성적과는 관계없이, 승패와 상관없이 끝까지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팬들은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아직 당신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떡과 음료도 선수단에 전달하며 선전을 기원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팬들의 정성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고마워했다. 최근 구단에 대한 비난 수위가 높아지는 시점에서 팬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주는 고사를 지낸 것만으로 사기가 가라앉은 선수단에는 큰 힘이다. 갖은 고난과 악재 속에 지쳐있는 한화. 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팬들이 있어 절대 포기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한 팬들이 고개숙일 일은 없다. 그들의 등뒤에는 팬들이 있다.
[email protected] <사진> 한화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