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늦은 시간인 밤 10시
우리들에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나면 텅빈 내부가 조금 으스스 하기도 하지만
익숙해진 터라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선생은 여럿이건만 오늘도 여전히 끝까지 남아있는건 우리 세명뿐
다같이 술한잔 하면서 학생 얘기도 하고 밀린 작업 걱정도 하고
수업 방식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12시가 훌쩍 넘는다.
그럼 우리셋은 이제 집에 가는가?
뭐.. 집이라면 집일수도 있지뭐, 이제 학원은 거의 우리들 집이나 다름없다.
현관문을 열고 불꺼진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우리 학생들에 강의실이자 우리들 작업실로 올라간다.
다시 큰 문을 열면 희미한 자판기 불빛과 싸늘한 공기만이 우릴 기다린다.
[ 야 얼른 불켜라 ]
우리들의 윗선생님이시자 우리들을 가르쳤던 정 선생님은 바로 화장실로 향하셨고
우린 불을 키고 히터를 틀고 작업할 준비를 한다.
작업이란게 뭐.. 별다른건 없고 술한잔 했으니
그림 그리는 척이라도 하면서 적당히 졸리면 아무 판넬이나 깔고 그위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대충 연필 소묘작들만 꺼내놓고 담배 한대를 태운다.
채색 작업을 한답시고 이래 저래 붓질을 하다보면 자고일어나면
이만년 뒤에나 인정받을 법한 그림이 나오기 때문에 절대 절대 절대 채색은 하면 안된다.
똑같은 하루 똑같은 반복이지만 우리 셋은 늘 같이 있었기에 서로 편하기도 하고
매일매일 같이 있는대도 매일매일 하는얘기가 달라 지루하진 않다.
[ 건하야 넌 귀신 믿냐?]
[야 시끄러 그런말 하지마...]
[ 난 귀신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왠지 학원엔 있는거 같아. 왠지 있을거 같은데 없었으면 좋겠으면서도
있었으면 하면서도 내옆엔 없었으면 좋겠어]
[ 학원? 학원에 귀신 있어, 임마 ]
그제서야 나온 정선생님은 속이 안좋으신지 담배를 태우면서도 연신 헛 구역질을 하시며 우리 옆으로 오셨다
[ 그쵸? 있는거 같죠? 저도 예전에 학생때 분명히 본거같아요 .
제가 고3때 저 그때 막나갔잔아요 그냥.. 그때 우리학원에 재수하던 형이랑 술한잔 하고
집으로 걸어오는중이었어요.]
[ 미친놈 그러니까 니가 지금도 이지랄하고 있는거야]
[ 아무튼요 그리고 이지랄이 뭐어때서요..
선생님도 이지랄 하시면서...]
[ 난 니들보다 돈 많이받어 ]
[아무튼 제가 집에오는길이 이 쪽 길이잔아요.
걸어오면서 학원쪽으로 오는데 학원 우리 3층 카운터 있는층이요
거기 불이 파란불이 파팍 켜지더니 갑자기 뒤에서부터 앞으로 탁탁탁탁 꺼지는거에요]
[ 우리 학원은 파란불 없는데?]
[아진짜요? 아무튼 저 그래서 완전 놀랐잔아요 . 귀신 같은걸 본건아닌데 ..
분명 뭔가가 있긴 하구나 싶었어요..]
건하는 무서운 얘길 더럽게 싫어하지만서도 듣는건 또 더럽게 좋아해서 내심 우리말에 집중하는 듯 했다.
[그래 아무튼 나도 여기서 많이 잤잔냐 니들보다 먼저 일했고 나랑 부원장님이랑 같이 남아서 그림 그리면
우린 아얘 따로따로 그리잖아 부원장님은 4층 난 5층 이렇게 따로따로 그리고
우리 들도 강의실만 같이 쓰고 다 서로 따로따로 자리잡고 편하게 그리면서 대화만 하잖냐
아무튼
잠도 따로따로 자는데 부원장님은 매일 밤마다 가위눌린단다 .
부원장님은 바닥에서 안자고 애들 책상깔고 자는데 항상 뭔가가 자길 누른다고 하더라]
[ 아 그래요? 전 여기서 가위눌려본 적은 없어요 ..]
[ 아 참 그리고 내가 문쪽에서 그림을 그릴때 였어.
그땐 니들 다 학생이었고 니들 다 보내고 그때도 술 한잔 하고 문쪽에서 이젤 깔고 소묘중이었거든?
근데 뭔가 계단으로 파파파팍 올라가는거야 .
그래서 누가 왔나 싶었지 뭐 놓고왔나 싶었는데..
여긴 5층 위론 없잔냐
강의실도 5층이 끝이고.. 누가 올라왔겠어..
아무튼 그냥 내가 술을 많이 먹었나보다 했지
요즘 밥도 제대로 못먹고 집에도 일주일에 한두번 갈까말까라 그냥 그러려니 했지 .
사실 뭔가에 더 신경쓸 여력도 없었고 마감 시간도 얼마 안남아서 그냥 바쁘게 그렸지..
한참을 그리던 도중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더니 어떤 여학생이 내 옆에서 앉아서 가만히 내그림을 쳐다보더라고...
근데 그거있잖아 .. 그여학생은 내 그림을 쳐다보는 상태고
난 그 여학생을 옆에서 쳐다보는 상태고 말야 이해가 ?
가지? 근데 왠지 고개를 못돌리겠는거야 ..
내가 고개를 돌려야지 이 귀신같은 여학생이랑 눈이 마주치지 않을텐데 자꾸 내 시선은 그 여학생을 쳐다보게 되더라고..]
[ 그래서 마주치셧어요?]
[ 아니 . 내 실력이 좀 좋은 실력이냐?
귀신도 뻑가는 내 소묘실력에 다행히 눈은 안마주치고 난 다시 고개를 돌렸다가 보니까 사라졌더라..
그날은 그냥 문닫고 택시타고 집으로갔어.]
[에이..뭔가 좀 싱거운데요? 무서운 얘기 있으면 우리 좀더 해볼래요? 아 ! 건하 우는거 아닌가?]
[ 아 제발.. 나진짜 꿈에 나온다고.. 하지마 ..]
[ 넌 뭐 무서운거 있었어? 아는 얘기나 무서운 경험이나 뭐 아무거나 ]
[ 나?.. 나 하나있지..]
[뭔데?]
[나.. 간만에 저번에 집갔을때 ..
아 진짜 편하게 자야지 하고 잤다?]
[가위 눌렸냐?]
[ 아뇨 가위눌린건 아니구요.. 그냥 꿈에서 학원에서 일하는 꿈꿧어요...]
[아오 옘병 존나 무섭긴한데 재미는 없다 ]
[ 귀신얘기하면 귀신이 들으러 온다잔아요..]
[ 그럼 제가 하나 해드릴까요? 이건 귀신 얘기는 아니구요.. 그냥 뭔가에 관한 얘기에요]
[ 한번 해봐 ]
[ 제 여자친구가 동아리 모임에 갔었어요 .
거기서 나이 많은 오빠가 한분 있었대요 . 그 오빠는 공익 출신이라던데 그 뭐라나
소방 공익? 아무튼 그런거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아무튼 자기 경험담들을 막 말해주더래요.
하루는 무슨 훈련같은걸 했나봐요 . 낡은 폐가에 다같이 들어가서 그 119 아저씨들 화재현장에 들어가실때 입는 옷있죠?
그 옷입고 그 폐가에 불을 지르고 나서 탈출? 하는 그런 훈련이었나봐요.
다같이 들어가서 벽 구석에 있는 책장에 불을 붙이고 나무로된 문쪽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 서로 이것저것 얘기를 했나봐요.
근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불이 안번지더라는거에요.
그래서 왜일까 해서 계속 기다렸대요
그래서 다같이 그 책장을 확인하러 갔는데 그 순간에 바로 뒤로 뭔가가 떨어지더래요
알고보니까 불이 벽으로 붙어서 천장을 가로질러서 자기들 머리위 그 문 위에 나무 같은 틀 있죠?
거기로 불이 붙었더래요 . 계속 그자리에 있었으면 ... 그래도 안전장비를 다착용했지만 혹시 모를일이죠.
그 모습을 본 그 오빠란 사람이 '불이 자기네들을 잡아 먹으러 오는거 같았다' 라고 표현하더라구요]
[ 오 .. 폐가에 뭔가가 있는건가 아니면 불에 뭔가가 있는건가.. 귀신인거 같네 ]
[ 그쵸. 아 ! 하나 더있어요
어느날은 강에 시체를 찾으러 다니는 작업을 했대요
근데 물에 불은 시체는 건들기만 해도 파손이 된대요 .
그래서 찾으러 가는 도중에 걸어다니면서 팔을 물안에 넣고 양 옆으로 팔을 저으면서 다닌데요.
물귀신이 아닌이상 다 물에 가라앉을거 아니에요
아무튼 그렇게 저으면서 다니면 갑자기 손에 뭔가가 탁 걸리는 느낌이 있고 그게 부셔지는 느낌이 난대요
그 작업을 처음한 사람은 자기 손에 집힌걸 보면 깜짝 놀란다잔아요.
[왜?]
[ 그게 사람 살점이 떨어진거라나..]
[ .. 기분 영 아니겠네..]
[ 그쵸 ? 제 얘긴 끝이에요 건하야 라이타 있니? 담배한대 피자]
[건하야?]
[선생님?]
다들 자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