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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의 씀씀이 문제
게시물ID : love_35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리조각
추천 : 18
조회수 : 2127회
댓글수 : 56개
등록시간 : 2017/09/07 17:15:11

가방선물 얘기를 보고 오래전 일이 생각나서 씁니다.


전 시골에서 자란 그냥저냥 좀 못사는 집 자식이구요.

여자친구는 서울토박이고 음악도 했을만큼 어느정도는 잘사는집 딸이었습니다.



사실 연애 초기부터 씀씀이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인건 맞는데, 미묘하게 일부분에서 저랑 완전 다른 삶이 보이는거예요.

여자친구는 미용실에서 30만원을 긁기도 하고, 딱히 갈만한데가 없다면서 들어간 아웃백 같은데서 밥값을 6~7만원씩 쓸때도 있구요.

근데 또 어떤날은 저랑같이 순대국밥집에도 잘가고, 제 낡은 코란도를 타고 다니면서도 차에 대해서 불평한번 한적이 없어요.

돈을 쓰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생활수준이 달랐던 거였고, 사실 그 때문에 연애하면서 다툰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기전 신혼여행 얘기를 하다가 아프리카 크루즈 얘기가 나왔습니다.

견적이 얼마정도인지 물어본 저는 천만원이라는 소리에 어이가 달아나더라구요.

나는 전세집 구하는데 500만원이 모자라서 쩔쩔매고 있는데....



그때 좀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 수입은 얼마고 니 수입은 얼마인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를 쓸수있는지 등등을요.

그리고 와이프도 상당히 충격을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삶들이 모조리 너프당하게 생긴 것보다

남자친구가 자기의 씀씀이를 헤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먹었죠.



그날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내가 나름 좋은 직장에서 평범한 수준의 수입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신이 초라해지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이 결혼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의심하게 되더라구요.



근데요. 여기까지 얘기하면 제가 엄청 검소한 사람인것 같지만, 사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초년생때 술값 펑펑쓰다 카드값 못값아서 아버지에게 손벌린적도 있구요. 게임 아이템 산다고 수십만원 쓴적도 있구요.

보드탄다고 장비사다가 적금 깬적도 있구요... 자주가던 쇼핑몰에 세일하면 쓰지도 않을 물건을 마구 지르기도 하구요...

고백하자면 지금도 스팀 라이브러리에 해보지도 않은 게임이 수두룩하죠...



자신을 잘 돌아보니 이해가 갔어요. 

우리는 사실 누구도 그렇게 합리적으로 살고있진 않아요.

합리적이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의 작은 사치를 비난하면서 나는 정말 그렇게 합리적으로 살지 않거든요.



다음날 여자친구에게 사과했습니다. 

결혼후 서로 의논하면서 가정을 꾸리면 될것을 내가 네 씀씀이를 뜯어고치려는 시도 자체가 너무 어리석었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훨씬더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리더라구요.



신혼여행은 제가 열심히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해서 저렴하게 동유럽으로 다녀왔고, 너무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살던 집의 딸은 지금 마트에서 파 한단에 3천원이라는 소리에 개비싸다고 고민하는 주부가 됐습니다. 닥치면 다 하더라구요. 

비난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배우자도 훨씬 더 해결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결국 결혼생활의 모든 트러블은 이해심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배우자는 내가 가르치는 제자가 아니니까요.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비난하고 교정하려고 하기보다, 왜 그랬는지 상황을 이해하면 훨씬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거예요.





그냥 씀씀이 문제로 고민하는 연인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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