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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
게시물ID : baby_3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수없다,
추천 : 13
조회수 : 805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9/17 21:49:43
 
 
 
 
 
  지난 주 목요일, 지방출장 중인 서방이 집에 오고 장모님께 대접한다며 한정식집을 가서 맛나게 먹고 나올 때였다.
  신랑이 차를 빼오는 동안 인도에서 기다리다 차쪽으로 가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약간 비탈이 있는 곳이었는데 아이를 가진 뒤부터 무릎이 아파서 항상 조심했는데 그만 무릎이 꺾인 것이다.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넘어지는 그 짧은 순간, 내 몸이 다칠 생각보다 아이 머리와 몸을 안느라 팔꿈치와 무릎으로 땅을 찍어버렸다[보도블록아 미안해].
 
  찰나지만 조금만 늦게 아이의 머리를 받쳤다면 그대로 응급실로 가야 할 상황이었다. 아기는 당연히 놀라서 울고, 아이에게 놀랄 일이 아니라고 달래주기 위해 일부러 몇 번 슉슉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우왕~ 이런 것도 재밌지? 재밌지?'하며 웃었더니 아기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이게 뭐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픈 것도 몰랐다. 아기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안 다쳤니? 괜찮아?"
 
  어머니께서 물어보셨고, 당연히 나는 아기를 물어보시는 것이라 생각해서 괜찮다고 말씀드리곤 계속 아기를 얼러주다 차를 탔다.
  아기를 안고 내가 그 순간 그렇게 내 몸을 사리지 않고 아기를 보호한 일을 생각하니 참 내가 생각해도 나도 엄마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다섯 살 때, 집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던 일이 생각났다.
 
  군인이 몰던 짚차에 치여 병원으로 갔다는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맨발로 병원까지 뛰어오셨고, 두 살 터울의 언니는 울면서 엄마 신발을 들고 뒤따라 뛰어왔다고 했다.
 
  "엄마가 나 사고 났을 때 맨발로 뛰어왔다고 할 때, 그땐 신발 좀 신고 오지 신발 신는 시간 몇 초나 걸린다고 맨발로 뛰어왔나 싶었는데 이젠 그 마음 조금 이해하겠어. ㅎㅎㅎㅎ"
 
  "그때만 그랬겠니? 지금도 애기도 걱정되지만 너 그렇게 넘어져서 얼마나 걱정되는 줄은 아니?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냐? 병원 문 닫았으면 약국에 가서 파스라도 사서 붙이자."
 
  서방도 계속 괜찮냐고, 응급실 가자는 것도 귀찮은데, 아기 얼른 집에 가서 쉬게 해줘야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다음 날 가셨고, 그 다음 날 전화를 하셨다.
 
  "내가 요즘 맛을 잘 몰라서 맛이 없겠지만 몇 가지 반찬 했으니까 가져 가."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냉장고를 열어보셨을 테고 오래된 반찬, 그것도 마른반찬만 있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서방이 다녀오고 나니 냉장고가 그득그득하고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는 저녁이었다.
 
  엄마는 지금 일흔이 넘으셨고 딸과는 달리 소말리아 난민보다 더 마르고 약한 몸으로 과년한 딸 밥 좀 먹이시겠다고 무겁게 장을 보고 나르고 반찬하시고 했을 수고를 생각하니 참 마음이 심란했다.
 
  내가 그리 효성스러운 딸도 아닐 뿐더러 가끔이 아닌 자주 버릇 없는 딸이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뭐가 예쁘고 걱정된다고 지금까지도 당신보다 자식들 신경을 더 쓰시고 당신께서는 대충 드셔도 자식들 입에 더 좋은 것, 맛난 것 먹여주시려 이리 힘들게 애를 쓰실까.
 
  28살 때, 오토바이를 타다 뺑소니로 7개월 동안 입원했을 때도,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다 깨어났을 때, 중환자실에서 2인실로 옮겼을 때 잠시 나갔다 왔더니 딸이 머리를 박박 밀고 있어서 얼마나 놀라셨는지 손에 들고 있던 과일쟁반을 떨어트리시기도 하고, 입이 까다로워 병원밥을 먹으면 체하던 딸 때문에 반찬들을 해다 나르시느라 더 힘드셨던 어머니께서 지금은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 둘째 딸이 안쓰럽고 제대로 못 먹는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음식을 해서 싸주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좋지 않았다.
 
  나는 과연 우리 똥똥이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평소 어쩌다 전화를 하면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니?"라고 하실 정도로 전화를 잘 하지 않던 내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내가 꼭 무슨 일 있어야만 전화하나. 엄마가 해준 반찬들 덕분에 오랜만에 밥다운 밥 먹고 기분도 좋고 든든해서 전화했어."
  "에휴, 엄마가 이젠 맛도 잘 모르고 그래서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엄마가 워낙 음식 잘 하니까 맛 안 보더라도 전처럼만 하면 되지. 맛있어. 밥도 이따시만큼 먹었는 걸."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반찬 떨어질 때 쯤에 전화해. 엄마가 또 반찬해서 갖다줄게."
  "에고, 됐네요. 차라리 우리 집에 놀러와서 애기도 보고 집에서 만들어주던가. 나 시장 갖다올 동안 엄마가 잠깐만 봐주면 내가 맛있는 것도 다 해주고 그럴게. 지금은 잠깐이라도 봐줄 사람이 없어서 못해먹는 거지, 나도 음식은 좀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애기만 챙기지 말고 너도 잘 챙기고. 지난 번에 넘어진 데는 괜찮니?"
  "엉, 괜찮아. 내가 워낙 튼튼하잖아."
  "튼튼하긴. 어릴 때부터 아프기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나서 얼마나 걱정되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내가 걱정이시다.
 
  "엄마, 다른 건 아니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맙다고, 그 말 하려고 전화했어."
  "기지배, 하여튼 뜬금없어."
  "아니야, 얼마나 고마운데. 나이는 많이 먹었지, 말은 죽어라 안 듣지. 그런데도 이렇게 챙겨주고 위해주고 그러는 게 쉬워. 세상에 안 그런 엄마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거야 엄마니까 당연한 거지. 나이 많은 딸자식이 애기 낳고 고생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니? 하여튼 반찬 다 떨어지고 나서 말하지 말고 떨어질 때쯤에 말해."
 
  어머니와 전화를 끊고 나서 잠든 아기를 돌아보니 가끔 낑낑대면서도 잘 자고 있다. 그저 얼굴이, 하는 짓이, 성격이 이뻐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쁘고 고마워서 웃을 수 있게 될 때가 내게도 존재하게 됐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어머니가 내 어머니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나 역시 우리 아가에게 고마운 엄마는 될 수 없을지언정 '엄마 같은 엄마는 필요 없어'만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사랑해주고 아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물론 그 역시 마음이 그렇지 실제적으로는 가끔 아기가 얄미울 때도 있고, 놔둬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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