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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왜 오픈소스인가
게시물ID : iphone_129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hooseyou
추천 : 22
조회수 : 91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09/18 15:10:20

지난글에 많은분들이 좋은 평가를 내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꽤 많은 분들이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결법이다라고 평가들을 많이 하시는것을 보고

아. 이분들이 역사를 잘 모르는구나 싶어서 당시를 살아봤던 기억을 더듬어 그때 그시절을 적어봅니다.

저는 분석가이지 애플빠도 안드로이드빠 어느것도 아니며.

지금의 상황을 삼국지보다 더 즐겁게 주시하고 있는 한사람일뿐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06년으로 되돌아갑니다. 휘이이잉.


1. 우선 당시의 상황

당시의 최고의 마켓리더는 뭐니뭐니해도 림의 블랙베리였습니다.

블렉베리는 당시 푸쉬 이메일기능을 통해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고

스마트폰의 시작을 알려주는 제품이었습니다. 

이게 웃긴게, 당시 블렉베리를 많이 쓰던 이유가 마소의 아웃룩 이메일을 잘 받아보기 위해서였었는데,

블렉베리는 잘되었는데, 막상 마소의 윈모바일 기종에서는 푸쉬이메일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안해서

매번 싱크를 시켜줘야 했었던 악몽이 있습니다. 또 윈모바일들이 버그가 많아서 

자주 서버리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많았습니다.

당시 삼성은 피쳐폰 대세를 유지하며 미주지역 탑셀러로 등극하고

스마트폰은 블랙젝을 주력으로 또 팜은 트레오를 스마트폰 주력으로 삼고있었습니다.

당시 제 폰은 블렉젝이었습니다 ㅋㅋㅋ

친구가 마소 모바일개발팀이어서 톡톡히 덕을 봤었습니다 아힝 -ㅂ-;;

여러분들이 최근 재판을 보면서 들으신것 처럼 삼성이 F700 먼저 내고 모고 그런건 없었습니다.

미국에 살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블랙젝을 쓰던지, 아님 팜 트레오로 버티던지 

아님 좋은 회사 만나서 블랙베리 공짜로 받던지

셋중 하나였으며 미국민의 대부분은 스마트폰 쓰는 인간들을 미친놈 보듯이 바라보던 시절입니다.


[나의 사랑스러웠던 블랙젝]


[당시에 보던 웹브라우저입니다]


[블랙젝 이전에 쓰던 트레오 다 좋은데 블랙젝보다 투박해서 꽝 ㅠㅠ]




2. 에릭 슈미트의 애플 생활

잡스는 마소를 그리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였었습니다.

당시 에릭슈미트도 그러한 사람의 한 부류였었습니다. 

둘은 자주 만났었고 이런 저런 사업구상을 함께 공유했었습니다.

잡스는 그런 슈미트를 어느날 초대해서 애플의 비밀회의에 참여 시킵니다.

이자리에서 슈미트는 2년정도 개발이 진행된 아이폰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3개월후 슈미트는 애플의 이사로 취임합니다.

그러나 에릭 슈미트는 이미 2001년 부터 구글을 위해 일해오고 있던 시점입니다.

그만큼 잡스가 슈미트를 믿었었죠.

당시 구글도 폰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왔던 초기 스샷들을 보면(와. 싹다 지워버렸어여 -_-; 요즘 못찾음)

구글이 지향하던 폰은 블렉베리였습니다.

[블렉베리 스타일의 구글 폰]


슈미트가 아이폰프로젝트를 보고 구글에 와서

폰팀들에게 야 너희들 하는거 다 쒸레기야. 다 때려쳐. 애플이 하는거 보니 이 세상이 바뀔거같다. 라고 하며

애플에게는 비밀로하며 구글 자체내에 새로운 솔루션을 찾을 특수팀을 구성하게 됩니다.

2004년 당시 삼성에게 괄시당하고 갈데없이 해매던 앤디 루빈은 원래 애플의 엔지니어였습니다.

나중에 애플을 나와 전전하다가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던 사람인데,

슈미트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에서 애플의 비밀회의에서 봤던 아이폰의 모습을 보고

즉각 파격적인 대우로 앤디루빈과 그 팀들을 모두 인수합니다.

이때부터 구글폰 팀들은 모두 앤리루빈 팀으로 대체되고 안드로이드가 개발 됩니다.

여기 까지 읽으신 분들은 왜 스티브잡스가 슈미트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었는지 이해가 되실겁니다.



3. 두둥 아이폰의 등장

2007년 1월. 맥월드 컨퍼런스 샌프란시스코.

스티브잡스가 비장한 모습으로 단상에 등장하며 우리가 이번에 3가지 새로운 기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합니다.

대형화면의 터치스크린 아이팟, 그리고 모바일전화 마지막으로 혁신적인 인터넷 접속도구를 개발했다고 말합니다.


관중들은 오 3가지나 그러면서 환호를 했는데, 스티브잡스는, 아이팟, 모바일전화, 인터넷 을 반복하면서

먼말인지 아시겠냐 되물으며 이들 3가지는 서로 다른 기기가 아니라고 하며 새로운 혁명적인 전화를 발표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이 사진입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당시 모두 한참 웃었던걸 기억합니다.
스티브잡스는 계속해서 현재 스마트폰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하나하나 해결법들을 제안하며 아이폰을 발표합니다.
이 프레젠테이션은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여러분들이 영어를 아시던 모르시던 
반드시 보셔야하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저는 그날을 솔직히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이날은 실제로 혁명적인 날이며 진정한 스마트폰의 시작이였습니다.
그전의 스마트폰들은 그야말로 스마트 하지 않았으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데스크탑 클래스 스마트 폰이 었습니다.
애플은 당시 데스크탑에 사용하던 오에스를 그대로 아이폰에 적용을 시키면서
사실상 데스크탑 피씨와 같은 수준의 모바일 기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태블릿 피씨와 같은 개념으로
실제로 애플은 아이폰 보다 태블릿을 먼저 개발했었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더이상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회사임을 강조하며 유명한 말을 전합니다.
"People who are really serious about software should make their own hardware"
지난글에서 지적한것 처럼, 제조업위주의 제품개발이 주를 이루었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깨며
소프트웨어 중심의 새로운 제조업 시스템의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였습니다.
이날 애플은 Apple Computer 라는 회 사 이름을 버리고
Apple로 바꾸며 새로운 기업모델의 시작을 알립니다.
비디오를 보시면,
지금은 당연히 안드로이드에도 있는 기능들이 많이 나오는데,
신기능을 설명할때 마다 사람들이 환호를 합니다.,
그당시에 어떠한 디바이스도 아이폰과 같은 기능을 보여주던 제품은 
"한개"도 없었고, 그만큼 신선하며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감탄과 환호를 이어갑니다.
모 이번 재판때 이미 그런 기능들은 아이폰 이전에 널렸었다고 삼성변호단들이 이야기들을 하는데,
솔직히 그때 그 기술들은 개괄적 기능으로 존재하거나 프로토타입상태로
알던 사람들도 적었고
있어도 애플의 아이폰과는 다른 기능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손가락으로 화면을 줌하던 기능도 애초에 그사람들이 처음버젼에 넣은거이 아니라
2008년 업데이트 때 새롭게 집어 넣은 기능을 마치 자신들의 최초버젼부터 있었던 기능처럼 말들을 하더군요
어쨌건, 첫 아이폰의 기능들은
당시를 살던 누구도 본적이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4. 마켓의 반응
아이폰의 발표와 즉시 월가는 비관적인 평가를 내어놓으며 애플의 주식은 한때 떨어졌었으나 이후 바로 반등합니다.
대부분 Geek 사이트들은 아이폰의 하드웨어에 메모리 확장기능이 없으며
바테리를 교환할수없으며 쿼티키보드가 터치스크린안에 내장된 점을 들며 구매 매력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특히 쿼티키보드 이슈는 논란이 되어 여러 사이트에서 쿼티외장형 기기와 아이폰의 터치키보드를 비교하며
찬반론이 불똥을 튀겼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디어의 반응과 달리 소비자들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첫날 아이폰을 사기위해 밤을 새는 진관경이 벌어지기 시작했고(첨보는 광경임)

아이폰에 환호하는 수많은 팬들의 연일 쏟아지는 블로깅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며

아이폰사용기를 읽곤했었습니다.(저도 그중 하나 ㅠㅠ)

이날 이후 마켓은 완전히 아이폰의 세상이었습니다.

피처폰을 쓰며 스마트폰을 쓰던 사람들을 비웃던 고객들도 아이폰을 찾고

이전에 스마트폰을 쓰던 사람들도 아이폰으로 바꾸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애플은 AT&T를 통해서만 아이폰을 공개했었는데,

AT&T는 911 이후 많은 사람들이  버라이즌으로 옮긴 상태라 사용자수가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었습니다.

아이폰 판매이후 AT&T로 바꾼 사람들이 많긴 많았지만,

미국 휴대폰 약정의 특징상 2년 계약으로 전화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의 세일은 천정부지였습니다.



5. F700과 프라다

삼성은 바로 얼마후 F700을 시장에 내어놓으며 아이폰에 반격을 합니다.

독일 세빗쇼에 등장한 F700에 관한 기사는 여기를 통해 보실수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아이폰맛을 본 뒤였고, F700 이미 그전에 발표되었던 

다른 피쳐폰과 별반 차이없는 대접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즉시 삼성이 애플을 배꼈다라고 비판하는 기사도 떴었습니다.

File:LG KE850 Prada Hauptmenu.jpg

이것은 외형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장의 반응으로 

아이폰에 감동했던 진정한 이유는 껍데기 하드웨어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데스크탑 클래스 모바일 폰이라는 소프트웨어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6. 업계의 대응

아이폰 발표이후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팜의 트레오는 고전을 면치 못했고, 레이저로 잘나가던 모토롤라도 파리를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의 스마트폰을 찾는 사람들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노키아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단지 림의 블렉베리만 계속적으로 인기를 유지했는데,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데로

외장쿼디키보드와 터치키보드와의 논란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Geek 사이트들은 외장키보드가 애플의 터치키보드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이폰 이외에 다른 전화를 찾는 고객들은 거의 없었으며

시장은 완전히 아이폰으로 통합되어 갑니다.

그해 말에 들어 삼성, 엘지,팜,모토롤라,노키아등 실적들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결과를 발표하며

아이폰을 제외한 다른 폰 회사들이 말라죽어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모토롤라, 삼성, 엘지, HTC, 스프린트 넥스텔(통신사), T-모바일(통신사)등과 구글이 모여

이러한 아이폰 만의 시장을 만회할 연합전선을 열기로 합의하며

오픈핸드셋얼라이언스를 만듭니다.

OHA 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만들어 연합의 모든 회사들이 무료로 공유하게 해줄것을 요구하고 

구글은 그 요구를 2008년 수용합니다.

당시 대세라고 불렸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오에스는 라이센스비용이 높았고 개발자들에게 조차

매년 회비를 걷어 갔었기 때문에 신속한 아이폰에 대항을 위해선 무료OS의 필요가 절실했었기 때문에

연합은 안드로이드의 영원한 무료공개를 제일 먼저 요구 한것입니다.

자.

이 시점에서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충격을 먹습니다.

왜냐하면 잡스는 구글의 슈미트가 설마 뒤에서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고 있었을줄 꿈에도 몰랐고

슈미트는 자신의 우군으로 생각했는데, 단 몇개월만에 아이폰 대응군의 선봉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첫 아이폰 발표장에서의 스티브잡스와 슈미트. 이사님이기 때문에 첫 아이폰을 드린다고 자랑까지함]


첫 아이폰을 발표하던 단상에서 슈미트를 초대하여 구글의 지원을 받고있음을 자랑까지 했었던 잡스가

이런일을 당하니 그 가 받은 멘붕레벨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겁니다.

나는 너를 믿고 아이폰 비밀회의에 까지 초대하고 아이폰에 구글의 다양한 기능을 적극 수용하고

서로 도울수있는 관계일거라 믿었는데,

알고보니 그날. 그때부터 슈미트는 안드로이드를 잡스몰래 뒤에서 개발하고

결국 아이폰 타도의 선봉이 되어버렸으니

우리들중 누구든 이런일을 당하면 멘붕단계에 안갈수가 없을겁니다.



7. 그 날 이후.

그래서였을까요. 잡스는 그때부터 시름 시름해집니다.

그러나 슈미트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 그리고 배신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잡스가 살아있는 동안 안드로이드의 성장은 눈에 띄게 늘었고

언제나 아이폰의 뒤를 잡게 됩니다.

슈미트는 이후 애플 이사직을 사임하고 구글에 전념합니다.

잡스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슈미트를 불러 상황을 돌려주길 원하며 개인면담을 합니다.


"앉아!" 소리를 지르며 잡스는 슈미트를 붙잡았고 이 장면은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슈미트는 별말 하지도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이거나 오케이...메이비...하며

대부분 시간 잡스의 이야기만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잡스는 상당히 뚜껑이 열려있는 모습이였고

슈미트는 그냥 신경쓰지 않으려던 모습이였다고 합니다.

그 둘은 몇분 대화 하지도 못하고 헤어졌으며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입니다.

이날 이후 스티브잡스는 구글 타도를 외쳤으며

구글 전체를 망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안드로이드만은 반드시 보복을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자. 저는 이 긴글을 통해 애플을 옹호하려는것도 아니고

구글을 깔려는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때 그 시절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틀릴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사실전달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를 살았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른 판단의 근거로 위의 자료를 이용했음 하는 바램입니다.

기나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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