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러한 방법론 외에도 홍진호 특유의 해법은 꽤나 많은 부분에서 빛을 발했다. 여러차례의 수정으로 저그가 불리해진 전장 레퀴엠에서 드론 비비기를 이용해 가스 멀티하나를 공짜로 가져가며 저그에게 해법을 제시한것 역시 홍진호 였고 레어테크에서 테란과의 힘싸움이 버거워 지자 센터에서 병력을 돌리며 교전회피를 통해 시간을 끌어가며 멀티를 확보하거나 3cm 드랍 등을 응용해가며 테란을 상대로 타이밍을 창출해낸 것 역시 홍진호였다. 말 그대로 홍진호 이전에 홍진호 같은 선수가 없었고 홍진호 이후에 홍진호 같은 선수 역시 없었다. 최상위 무대에서 꽤 긴시간 동안 거의 혼자 싸우다 시피했던 홍진호는 말 그대로 저그가 타 종족을 상대로 타이밍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방법을 시도했고 그런 홍진호의 유산은 저그의 토대와도 같은 것이 되었다.
3. 기나긴 암흑기, 회광반조
이윤열을 패자조로 몰아 넣으며 결승까지 거칠것이 없이 질주한 홍진호였으나 그의 앞에 나타난 최연성은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형태의 테란이었다. 보병들끼리 싸우던 전장에 탱크를 몰고 나타났다고 하면 적당한 비유일까. 이윤열이 내놓은 더블 커맨드 최적화에 이어 트리플 최적화까지 행보를 뻗은 최연성의 등장에 더이상 물량은 저그나 토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최연성 특유의 두터운 수비력은 홍진호의 폭풍이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 자원상 우위를 점한 최연성은 말 그대로 홍진호를 짓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호는 최연성이라는 불세출의 테란을 상대로 유보트에서 혈전을 벌이며 마지막까지 분투했다.
그러나 그 이후 홍진호의 폭풍은 예전같지 않았다. 에버 스타리그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3연속 벙커링으로 인한 3:0 패배 그리고 이어진 3.4위전에선 저그가 토스 상대로 극도로 유리한 전장 머큐리에서 박정석에게 패하는 등(노킬 올다이) 기량이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이후 2005년 서지수에게 WCG예선에서 2:0으로 패했을때 그러한 평가는 거의 정점에 올랐다. 더욱이 육회를 먹고 배탈이 나서 그랬다는 KTF 프론트의 삽질은 홍진호를 말 그대로 웃음거리로 만들기 충분했고 So1 스타리그에서 오영종의 묻지마 다크에 썰리고 최연성에게 '탱크 관광'을 당하는 시점에서 이제 홍진호는 끝났다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호는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에서 그런 세인들의 평가를 비웃듯 신예 테란 강자로 꼽히는 전상욱, 이병민등을 차례로 물리치며 4강까지 올라갔다. 짧은 본진간의 거리와 다양한 러쉬루트를 제공하는 개척시대, 백두대간 등 독특한 컨셉맵이 많이 사용된 리그에서 다른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할때 과거 레어테크에서의 2해처리 몰아치기 등 초중반 전투에 이골이 난 홍진호는 오히려 그런 전장에서 더 힘을 발휘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4강에서 그 대회 우승자 한동욱을 만난 홍진호는 아쉽게도 3:2로 패배하고 만다.(3.4위전에선 변은종에게 3:0 승)
그리고 이것이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낸 마지막 빛이었다.
4.장강후랑추전랑(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다)
2007년들어 시대는 급변하였다. 이전의 도제식에 가까운 환경에서 홀로 성장했던 프로게이머들과 달리 이때를 즈음하여 프로게이머들은 감독-코치등의 코칭스텝들의 관리, 게이머들간의 전략연구 등으로 체계화되어 길러지기 시작했고 이때를 즈음하여 임요환, 홍진호를 비롯 질레트 세대라고 할 수 있는 프로게이머들 역시 점차 예전같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들이 예전같지 않았다기 보단 새로이 등장한 신예들의 기량이 부쩍 성장했다고 하는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시점에 홍진호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해처리에서 3해처리로 저그의 패러다임이 변화했고 홍진호가 가장 강점을 보이던 레어테크단계의 싸움보다 하이브 테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는가가 핵심이 되었다. 거기에 수읽기나 마이크로,매크로 컨트롤 부분에서 신예들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개인리그에서 그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졌고 프로리그에서도 경기에 출전하는 날보다 그냥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국 2008년 홍진호는 공군입대를 결정한다.
공군입대 이후 사실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 센스가 죽지 않았다는 경기를 수차례 보여주었는데 그 중 당대 최강 프로토스 김택용을 상대로 승리한 속칭 6.20 대첩과 이제동을 잡은 경기 등은 참으로 인상깊은 것이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하면 적당할까.
5. 은퇴, 그리고...
전역이후 게이머 보다는 예능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 홍진호는 2011년 6월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LOL 게임단 감독 등을 하던 홍진호는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허당에 가까운 홍진호였지만 김구라와의 데스매치 이후 말 그대로 각성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오픈, 패스와 5:5 게임에서 '나는 홍진호와 손등을 맞댔다'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프로게이머 홍진호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도 그가 보여준 두뇌플레이에 매료되면서 콩빠로 합류하였다.
이런 시청자들의 반응과 다소 딕션이 좋지 않지만 괜찮은 예능감 등이 더해지면서 홍진호는 TVN의 여타 예능프로에도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로게이머 홍진호에서 방송인 홍진호로, 인생의 제2막이 열린 것이다.
이기려고 참여한 게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져도 괜찮다는 억지를 부려보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프로게이머 홍진호 씨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홍진호 씨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남고 자신의 실력으로 승부를 한다. 아무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계속 배신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그가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배신에는 한계가 있고 사람들을 속이면서는 절대 최후의 일인이 될 수 없다는 걸 다른 출연진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 차유람(빌리어즈 7월호 인터뷰 中)
실제 자연인 홍진호의 인생이 어땠는지는 나로써는 잘 모를일이지만 프로게이머 홍진호와 방송인 홍진호가 보여준 모습은 아 저사람 참 쿨하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 1경기, 서지훈쪽 오류로 인해 게임이 멈추고 재경기가 선언되자 홍진호는 두말않고 재경기에 임헀다. 5판의 경기를 위해 짜온 전략이 꼬여버렸고 오류가 나기 전 상황이 홍진호에게 제법 괜찮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항의를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는 별다른 불만없이 재경기에 임했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이후 열린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도 홍진호는 쿨했다. 저그에게 극악인 맵 패러독스에서 홍진호는 저그로 출전했다. 박정석과 상대한 경기에서 경기는 역시나 홍진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점차 패색이 짙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경기를 하기 어려워 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은데 박정석이 디스커넥트가 되었던가... 하여간 경기 진행에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홍진호는 굳이 판정까지 가지 않고 gg를 치며 자신의 패배를 선언하였다. (패러독스에서 저그 게이머인 박경락은 테란으로 출전하기 까지 한바있다)
더 지니어스에 출연한 홍진호 역시 쿨했다. 그는 배신을 당해도 특별히 상대방을 책망하지 않았고 설사 데스매치로 가더라도 담담했다. 시즌2에서 이두희가 자신을 데스매치 상대로 지목했을때도 그는 담담하게 잘해보자고만 했다.
혹자는 이런 홍진호에게 '독기'가 부족하다고도 하고'한량기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승을 못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홍진호가 존재하지 않나 싶다. 지금 홍진호는 방송이라는 또다른 분야로 보폭을 넓히고 있고 그 과정에서 홍진호 특유의 쿨함 덕분에 많은 이들이 즐거울 수 있었고 또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다. 비록 어마어마한 우승경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호감을 받는 인생을 살아온 홍진호는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 아닌다 싶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