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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西海交戰]
게시물ID : sisa_303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7418523
추천 : 13/20
조회수 : 45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07/06/29 09:55:51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으로 시작된 남북 함정 사이의 교전. 언제 2002년 6월 29일 오전 어디서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 누가 한국과 북한 함정 무엇을 교전 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한국 경비정에 기습 포격 1999년 6월 15일 오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연평도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남북한 함정 사이의 교전이다.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일어났다. 교전에 앞서 북방한계선 북한측 해상에서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계속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남한 해군의 고속정 2척이 즉각 대응에 나서 초계와 동시에 퇴거 경고 방송을 하는 한편, 교전 대비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징후도 없이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선제 기습포격을 가해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이 때부터 양측 함정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고, 곧바로 인근 해역에 있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정들이 교전에 합류하였다. 이어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하자 나머지 1척과 함께 퇴각하기 시작해, 10시 50분경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상함으로써 교전은 25분 만에 끝이 났다. 이 교전으로 한국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하였다. 또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하였는데, 북한 측 피해상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교전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행위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하게 요구하였으나, 북한 쪽의 답변은 듣지 못하였다. 한국 정부는 이 교전이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지만,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등 북한 최고 지도부의 의도가 개입되지는 않았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 또 서해교전을 통해 부정확한 현장보고, 계획된 도발에 대한 초기 대응 미흡 등이 해군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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