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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원나잇 후기
게시물ID : bestofbest_355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icsa
추천 : 212
조회수 : 37583회
댓글수 : 78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08/06 21:10:55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8/06 15: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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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원나잇 후기]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약간의 온기가 감도는 텅 빈 공간

창문도 없는 5평 규모의 원룸에는 작은 전구 하나만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을 일으켜 눈을 세번 감았다 떴다
 

 

방안에는 침대도 티비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허겁지겁 던져놓았던 지갑과 휴대폰

 

속옷과 셔츠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x됐네…’

 

꽃뱀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이상하리 만치 쉬웠던 어제 밤이 기억이 이제서야 이상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잘 구슬려서 자취방 까지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팔짱을 끼고 안기는 바람에 닿았던 가슴의 감촉에 그만 넘어가

눈 앞에 보이는 허름한 모텔로 허겁지겁 들어갔던 행동이 후회가 되었다

 

중간에 그녀 몰래 빼내어 바닥에 던져버린 콘돔이 보였다

빼면 안 된다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어짜피 다시는 안 볼 사이인데 임신을 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람

 

 

그래도 돈만 잃었지 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어찌됐든 이 공간에서 나가야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는 빙글빙글 잘도 움직였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문 바깥을 단단한 나무 판자로 못질해 놓은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x, 어떤 새끼가 이딴 짓을 해놓은거야

 

조금 전까지 여유 있던 마음 속이 뜨거운 분노로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 끝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문을 조금 더 세게 밀었다

발로 차고 어깨로 밀고

방 끝에서 달려와 몸을 부딪혔다

 

아무 일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문이 아니었던 것 처럼

움직이지 않는 저 물체는 마치 문의 형상을 한 벽과 같이도 느껴졌다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날 가둔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이 곳에서 날 굶겨 죽이지는 않겠지

 

작은 방 안에서 지치게 만든 다음

어느샌가 몰래 들어와 협박을 하고 나선 무언가를 더 요구할 것이다

 

물론 절대 순순히 줄 생각은 없었다

놈이 문을 열고 오면 기습을 해 이곳을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힘 빼지 말고 힘을 모으기로 했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머리 속으로 괴한을 습격해 제압하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했다

뜨거운 분노를 삭이며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방 안이 흔들리고 있었다

 

불쾌한 진동은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아까보다 방 안이 더 따뜻해 진 것 같았다

 

눈을 떴다

천장에서 빛을 발하던 더러운 전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보였다

 
방 안이 줄어들고 있었다

벽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이 곳에서 나가야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x!! 뭐하자는 거야 x새끼야!’

돈이든 뭐든 줄 테니까 여기서 꺼내 미친새끼야!!’

 

문을 있는 힘껏 걷어차고 주먹질을 했다

손에서 피가 나고 무릎이 얼얼했다

 

나는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문을 할퀴며 이빨로 물어뜯었다

손톱이 부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혀가 마비가 된 것 처럼  인간의 말이라고는 나오지 않았다

 

벽은 점점 더 빨리 줄어들고 있었다

누워서 팔을 길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짐작컨대 10초 뒤면 나는 버려진 음료수 캔 처럼 몸이 눌려

뼈가 부러지고 눈알이 터질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엄청난 공포감이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어제 밤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헌팅하러 나가자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새끼 말만 안 들었어도 지금쯤 내 방에 누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터였다

 

 

벽은 이제 눈 앞에 있었다

눈물이 입술을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방이 줄어든다는 빌어먹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손 끝에 만져지는 천장과 벽은 지금 이 상황이 절대로 꿈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

이제 끝날 것이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덜컥 하고 문이 열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발바닥은 이미 땅에서 떨어져 문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꿈일 것이다

아주 어이없는 꿈

 

벌을 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지만

만일 있다면 그리고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잠시 나를 지옥의 공포로 몰아넣어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방에서 나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뭐가 됐든 상관 없었다
 
 
이제 온 몸이 문을 넘어섰다

너무나 눈이 부셔 더 이상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잠시 뒤면 바깥 세상에 눈이 익숙해 질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했다

 

 

 

눈을 뜨자 너무나 어이없는 광경이 그려졌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팔과 다리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차고 몸이 떨렸다

엄청난 한기가 뱃속을 휘저었다

 

눈 앞에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매우 지쳐보이고 눈물에 화장이 지워져 못생겨 보였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어젯밤 내가 옷을 벗긴 그 여자애였다

 

욕지거리가 혀끝 까지 올라왔다

한바탕 퍼부을 기세로 입을 열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갓난 아기였다

 

여자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는 피와 알 수 없는 액체가 그득했다

 

 

나는 저 여자의 몸 속에서 방금 나온 것 같았다

 

여자는 서너번 숨을 몰아쉬더니 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나를 내려다 보는 차가운 눈빛이 오싹했다

자신의 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따뜻한 눈빛이 아니었다

 

괴물을 보는 듯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보는 겉 같은 시선

나는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닌 것이다

 

 

여자가 한 손으로 내 몸을 들었다

몸이 거꾸로 돌며 세상이 빙글 돌았다

머리가 흔들리고 구토가 나왔다

 

여자는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는 손을 놓았다

 

 

 

나는 차가운 물 속에 떨어졌다

바닥에 구멍이 있는 매끈한 흰색 그릇

화장실 변기였다

 

 

 

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이건 재수없는 악몽이 아니다

 

 

 

변기 뚜껑이 닫히고 이내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콘돔을 빼지 말 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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