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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분위기속에 올려도 되는 글인가? -ㅁ-;;
게시물ID : freeboard_355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쫑난인생
추천 : 0
조회수 : 11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04/01/27 18:52:37
 오늘 다음뉴스를 보다가 눈에 띈 기사가 있어서 한번 올려봅니다. 
모두들 읽으시고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경고 : 짧은 유머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다소 긴 기사가 될수도 있을겁니다.


일본은 아직도 그를 잊지 않았다 

2004년 1월 26일 오후 4시. 교민들이 많이 사는 신오쿠보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신주쿠 페아레 홀에서 '고 이수현을 기리는 모임'이란 이름으로 3년 전 같은 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고 이수현씨의 3주기 추모제가 개최되었다.

당시 고 이수현씨의 살신성인이 일본 사회에 미친 충격은 상당했다. 한일합동추모위원회 일본측 대표인 경제평론가 다께우치 히로시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고 이수현 의사자의 행동이 일본 사회에 준 충격, 그것이 왜 그렇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그것은 그의 행동이 바로 일본사회 그리고 일본인을 반성하게 했기 때문이다. 
동경은 거대한 세계다. 그리고 그 거대함만큼 공동화된 사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항상 열쇠는 잠그고 다니며 자기와 친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친교가 없는 곳이 바로 동경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치유할 수 없는 파편화된 사회에 그는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이타적인 희생을 몸으로 실천했다. 그래서 일본 열도가 그에 대한 추모의 물결로 넘실거린 것이다. 그 추모에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포함되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추모와 반성의 물결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30분 전부터 페아레 홀로 밀려들기 시작한 300~400명에 이르는 일본인들과 교민들. 그리고 양국 30여명이 넘는 보도진들. 정치적인 미묘한 문제들로 양국 간 감정이 나쁘지 않냐는 우려는 26일의 페아레 홀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추모제 1부 행사가 시작되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추도 메시지를 각각 조세형 주일대사, 외무성 아라이 상무관이 대독했다. 양 정상은 2001년 이후 한일 대중문화교류와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2005년부터 실행할 예정인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같이 양국이 일상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나간 데에는 고 이수현씨가 보여준 희생 정신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물론 고 이수현씨는 선로에 떨어진 당시의 취객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서양인인지에 관한 판단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그의 의로운 죽음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 다께우치 히로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드라마 겨울연가가 NHK 위성 시청률에서 빅히트(평균 17%로 16.5%를 기록한 미 드라마 ER의 기록을 깼다)를 치고 역구내에 한글로 된 출구표시를 볼 수 있고 보아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그리고 일본인이 한국을 마치 이웃처럼 찾고 있는 것 모두 지난 3년 간 이루어진 것들이다. 나는 이것이 이수현 의사자의 의로운 죽음으로 인해 일본인이 한국과 한국인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라 믿는다.'

이후 한국측 대표인 홍일식 고려대 전 총장과 고 이수현씨의 영문이니셜을 따 설립된 LSH 장학회의 타니노 회장 그리고 양국 국회의원을 대표하여 민주당의 가토 중의원, 열린우리당의 배기선 의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특히 가토 의원의 경우 민주당의 하토야마 부대표의 추모메시지를 낭독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 나는 중의원이 되었다. 즉 그가 3년 전 희생되었을 때 나는 그냥 일반 시민이었다. 그때 받은 충격과 감동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충격과 감동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영정에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외 행사장에는 모리 전 총리, 다나까 마키코 중의원의 화환도 놓여있었는데 이들은 당시 장례식장을 직접 찾아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계 인사들의 추모사가 끝난 후 이어진 2부 추모 공연은 가수 겸 소리꾼 장사익의 1집 앨범 주제곡인 '하늘로 가는 길'을 공연 제목으로 하고 진행됐다. 이 추모 공연은 다시 초혼(혼을 초대함), 진혼(혼을 달램), 천도(하늘로 이끔)라는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안숙선 선생을 비롯하여, 장사익, 한국무용의 김문숙, 이승아씨 등 한국쪽은 물론이고 재일코리안 2세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소프라노 전월선, 일본 대금의 대가 요네자와 히로시 등 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정열적으로 각자 무대를 선보이면서 고 이수현씨의 영령을 기렸다.

2부 추모 공연 뒤 헌화를 하고 나오는 젊은 일본인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나카자키라고 밝힌 올해 20살의 이 여성은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나는 고교 2학년이었다. 타카다노바바(신오쿠보 역의 그 다음 역)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수업 후 근처에 있는 학원을 마치고 역에서 전철를 기다리는데 신오쿠보에서 인명사고가 났다는 방송을 들었다.
처음에는 짜증 났다. 아무튼 한참을 기다려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그 인명사고에 대한 방송이 나왔다. 바로 이수현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짜증을 낸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 후 추모제를 하면 반드시 참가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인명사고가 났다는 방송을 들어도 절대로 짜증내지 않는다. 3년 전 나를 가르쳐 준 이수현 의사자는 내 삶의 선생님이다.'

또 헌화가 끝나갈 무렵 하치오지에서 왔다는 86세의 어떤 할머니는 불편한 거동에도 제일 앞 좌석까지 다가와 고 이수현씨의 어머니에게 조용히 무언가를 건넸다. 손사래를 치는 어머니에게 그녀는 자신이 직접 만든 반찬이라며 꼭 받아달라고 당부한 뒤 정말 훌륭한 아드님이라고 말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86세의 불편한 노구. 신주쿠에서 전철로만 50분거리에 위치한 하치오지에서 페아레 홀까지 정성들여 만든 반찬을 고이 포장하여 온 할머니의 심정이 바로 고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이 왜 의로운 죽음인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헌화가 끝난 후 고 이수현의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일합작영화를 만든다는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한국 키네마 모션이 참가하는 <아들이여! 생명의 가교로>(息子よ!命の懸け橋)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현재 기획단계로서 일본인 시나리오 작가, 일본인 감독이 선정되었고 올해 봄부터 본격적인 구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약 2시간 여에 걸친 추모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신오쿠보 역을 오랜만에 들러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아시아계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섞인 역 개찰구의 혼잡함에서 신오쿠보 역만이 가지는 매력을 맛본다. 

이곳에서 3년 전 1월 26일 저녁 7시 15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신오쿠보 역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신오쿠보 역에서 근무하는 역원은 지금도 간혹 역 구내를 순찰하다 보면 고 이수현씨의 기념비 밑에 꽃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본다고 한다. 그러면 치우지 않고 시들 때까지 놓아두었다가 시들면 그제서야 치운다고 한다. 

그렇다. 이렇게 고 이수현씨의 죽음은 여전히 신오쿠보 역에 모이는 아시아계 젊은이들 사이에 면면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문득 추모행사장에서 이수현 장학금을 받고 있다는 몽고 유학생 교원출신인 나란토야의 말이 떠오른다.

'고 이수현 선배는 한 일본인의 목숨을 구한 것뿐만이 아니다. 그의 희생으로 인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의 가난한 유학생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몽고로 돌아가 일본에서 만난 고 이수현 선배의 이야기를 몽고의 어린이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그의 정신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주 오래도록.'

/박철현 기자 ([email protected])




아직도 기억하시고 계신가요? .
우리들은 잊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일본인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3년전의 일을.
고 이수현씨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인들의 추모를 더 원하고 있지 않을까요?
독도문제로 일본에 대한 생각이 좋지는 않지만 . 이점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들 복수(?)를 생각하시겠지만 , 억지를 써서 복수를 하시는 것 보다는.
고 이수현씨처럼 저런식으로 일본인들을 감화시키는 것이 더 잘된 복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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