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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말아라, 너와 결혼할 생각 없다.
게시물ID : love_357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니생
추천 : 16
조회수 : 3053회
댓글수 : 70개
등록시간 : 2017/09/14 17: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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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번의 연애와 몇번의 성폭행으로, 상대방의 바람으로 이미 마음이 너덜너덜했다.
이성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는 상태였고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이 되었다.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다.

차라리, 그래 나는 이쁜 여자를 정말로 좋아하니까, 이대로는 내가 레즈비언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게 차라리 나에게도 미래의 연인에게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곧 이어 이렇게 엉망인 나와 함께 부대끼며 지내기엔 어떤 예쁜 여자가 참으로 가엾다 생각하여 그냥 홀로 지내자 마음먹었다.
상처는 과거에 만난 남자들로부터 받았는데, 그 흉을 감당하는건 오로지 미래의 연인이 될거란 생각에 그냥 연애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러나 곧 네가 다가왔다. 전 남자친구에게 성노예나 다름없이 착취당하고 구속당해왔던 내가 드디어 제정신을 찾고 반항을 시작하면서 깔끔하게 버려진 내게 너는 다가왔다. 사실 전 남자친구는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내 약점을 쥐고 있는 못된 범죄자였고, 난 그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네가 좋았다. 그래서 너무 기뻤다. 하지만 홀로 지내자는 내 다짐에 네가 내게 왔을 때, 섣부르게 호감을 표현 할 수도 없었고 좋은 티를 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너는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여 결국 그 다짐을 부수었고 너와 나는 교제를 시작했다.


너는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폭행을 당해왔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게 성관계를 하자고 했다. 나는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으니 다음에 하자고 했다. 그러나 너는 콘돔까지 사놨다며 울먹이며 졸랐고 나는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와 교제하기 전에 나는 네게 물었다. 여자친구가 있던 것으로 보았는데, 아니었느냐고. 너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구체적인 상대방 이름까지 들어가며 사귀었던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저 친한 친구였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대로 믿었다. 의심하기엔 네 말에 따르면 너는 정말 한참 전부터 날 좋아했었으니까.
그러나 너와 교제한지 일년이 다 되어갈 즈음 마주한 진실은 참으로 처참했다. 하지만 그래도 너는 내가 좋다고 이야기했고 그 일을 그냥 묻어버리기로 했다.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완전히 용서했다면 거짓말이지만 더는 탓하지 않기로 했다.


너와 교제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 헤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내가 울며 붙잡지 않았다면 우린 헤어졌겠지.
그 후 얼마 있지 않아서 네가 내게 한 말은 '나랑 결혼해줄거지?'라는 말이었다.

착각하지 말아라, 나는 너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


네가 한부모 가정이라서 그것으로 눈치를 준 적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한 적도 가엾게 여긴 적도 없었다.
네가 어렸을 때 왕따를 당했다고 해서 그 트라우마를 건드린 적도 없었다.
네가 대학을 가지 않았다 해도 그것으로 널 무시한 적이 없으며 너의 선택을 존중했다.

네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면회를 금지했지만 그저 간식과 오락거리를 챙겨주고자 왕복 5시간을 왔다갔다 했다.
미세먼지가 그리도 심했다 떠들썩했던 3월에 나는 기관지염을 안은 채로 널 찾아갔고, 널 위해 뛰었으며, 이후로 목소리를 잃은 채 3주를 앓았다. 아픈 채로 왕복 5시간을 너를 찾아갔다.
너를 생각하고 걱정하여 좀더 좋은 병원으로 옮기는게 어떨까 너희 어머니께 이야기했지만 이후 네게서 돌아온 말은 너는 너네 엄마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면 좋겠냐며 윽박지르는 말 뿐이었다. 너의 동생 앞에서 나에게 소리치며 나를 비난했다.

잠을 못 잔다 하여 그것이 걱정돼 드림캐쳐를 선물했다.
정작 너는 나와 전화통화를 하다 통화를 하면서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는 채 혀까지 꼬여가며 어눌한 소릴 하다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잠을 잤다는 핑계로 연락이 안 되었다.
화를 낼까 하면 아팠다고 하여 화를 내지 못했다. 아프지 말라고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러나 항상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내가 우울증으로 몸무게가 46kg에서 37kg이 되는 동안 너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면서 8kg이 늘었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몸무게가 줄었을 때, 너는 내 가슴을 만지면서 전체적으로 다 줄어버렸잖아! 라고 말했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살이 빠지기 전에도 몸매에 관한 것은 내 컴플렉스라 말했는데도.


네가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나도 마찬가지로 학업으로 인하여 경제력이 없지만 데이트 비용의 모든 부분을 내가 감당했고
너희 집은 가족끼리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기에 내가 케이크와 선물을 사서 너희 가족의 기념일까지도 챙겼다.
왕복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최소 매 주마다 한번씩 거의 항상 내가 갔고, 너는 너희 집에서 기다렸다.
네게 돈을 내라는 압박도 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먹은것, 논것, 마신것 모두를 내 돈으로 계산을 했고 네가 하자는 대로 했다.

나는 일주일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단 9번밖에 하지 않으면서도.



왕따당했던 것이 트라우마라며, 그 때문에 군대에서도 문제가 되어 귀가조치했던 네가
정작 나와 있을 때는 나를 따돌리고 다른 사람들과 하하호호 지내 날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생리중이라고 성관계를 하고싶지 않다 할 때도 너는 결국 해냈고
피임약 복용을 잠깐 쉬고있으니 콘돔을 꼭 써야 한다고 했을 때 콘돔이 없다며 그냥 하려 했고
이에 타협하여 그럼 질내사정을 하지 말아라 얘기했지만 결국 '사고쳤다'로 포장하며 질내사정을 했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너를 항상 끊임없이 배려했는데, 너는 내 이야기를 기억하지도 않았다.


내 생일마저 기억하지 못한 채, 하루종일 잠만 자며 내 생일을 넘겨버렸고 몇백일 기념일마다 나 혼자 축하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거라는 말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처럼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너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작고 사소한 것 하나마저도, 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던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일 지언정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이리라.


네가 아프다 하여 널 자극하지 않게 노력했다. 나는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음에도.
네가 기분 나쁘다 하여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던 그 시점에서도.
내가 우울하고 슬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건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마저 너는 성관계를 요구하고 이루어냈다.

네게 있어서 내가 화내는 것은 이제 질리는 일이고 짜증나는 일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서운하다고 신경써달라고 이야기 한 것인데, 너는 그저 짜증나게 화를 내는구나 라고 생각했나보다.
같은걸로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 말하는데, 신경써줄 생각은 없고 그저 자기 기분 상한게 우선이었나보다.

하루 종일 자는거, 생활패턴 이상하게 꼬여있는거 안좋다고 걱정 반 화남 반으로 너에게 낮에는 깨어있으라 이야기했지만
네게는 그저 잔소리였을 뿐이었나보다.



네게 있어서 나는 그저 항상 웃으며 긍정적으로 활동하는 미연시의 주인공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나보다.
나로부터 부정적인 이야기는 전혀 듣고싶어하지 않더라.


내가 화를 내면 너는 이제 내게 "그럴거면 왜 잡았어?"라며 반박할 수 있다. 아, 내가 이 관계에서 약자가 되었구나. 상하관계가 생겼구나.
너는 여전히 내 탓을 하면서 나를 용서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이 관계는 이미 망가진 관계인 것이다. 성(性)만이 남은 관계가 아닐까.



자해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했다. 듣기 싫다고 화를 냈다.
내게 정말 조금의 관심조차 주기 싫어하는구나. 깨달았다.


돌아와서 도루코 면도날로 팔목을 그어보는데, 너무 아파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칼은 왜 이렇게 날카롭고 잘 드는지. 정신 차리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해야하는걸까?

중증 우울증이었던 나를 이제 거의 회복기로 접어들게 도와주신 선생님께 감사해야 하는걸까?
내가 계속 중증이었다면 이대로 죽었을까?


문득 왜 내가 죽어야 하는건가 왜 내가 스스로 상처를 입혀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게 너무 아까운데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가.
부모님은 날 키우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하셨고 많은 투자를 하셨다. 당신들 먹고싶은거 입고싶은거 아껴가며 날 키웠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이 분들은 무엇이 되는가.

그래서 부모님께 얼마를 갚고, 돈을 모아서 외국에 안락사를 하러 갈까 하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뭔가 억울했다.

그래서 결심을 세웠다.


너는 대학조차 나오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백수인 채 어떤 커리어도 쌓지 않고 있다.
나는 곧 있으면 4년제를 졸업할 것이며 굉장히 많은 포트폴리오가 준비되어있고 심지어 공대생이라 취업도 거의 확정상태이다.

너는 알바자리 구하는 것도 힘겨워하고 있으며 아직 군대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가만히 이력서만 올려두어도 업계에서 먼저 면접 제안을 하며 연락이 오는 사람이다.

너는 나를 만날 때 항상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가꾸고 외모에 큰 자신은 없어도 예전에 비해 나 스스로 가꾼 탓에 예뻐졌다는 자신감이 있다.


네가 나 없이는 살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겠다.

나는 이제 네 앞에서 가식적으로 인형처럼 항상 웃어줄게.



그리고 정말로 네가 나 없이는 안 될거라고 확신하게 되는 그 순간 니 곁을 떠날거야.

이런 결심을 하게 해준 네게 정말 고마워.


내가 얼마나 널 좋아하고 아꼈는지 알아주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을게.
내가 얼마가 절망적이었는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만 깨달았으면 좋겠어.


그때까지 내 감정이 다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뇌 속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장난질이란 것도 알고있어, 그리고 온갖 경험으로 학습된 기억들의 장난질이란 것도 알고있어. 그래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니까. 그때까지 내가 잘 정리할 수 있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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