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서 저녁 겸 술 한잔을 했다. 그 친구는 아직 취업이 안돼서 그런지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대학 때는 졸업만 하면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사회는 그 친구를 받아 드리려 하지 않았다.
딱히 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 지지리도 되지 않는 취업과 각박한 세상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나면 졸렬한 껍데기만 남아 버린 우리들의 모습에 한 동한 침묵만이 감돌뿐이었다. 술집의 음악소리만 크게 울릴 뿐. 이야기 꺼리가 없다는 게 참으로 불행해 보였다. 옆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격양되게, 신나게 떠들고 있는 남녀들을 보며 우리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 하고 회상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교적 빨리 헤어졌다.
친구와 만났던 곳은 1번가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시끄러운. 하지만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나 그렇겠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길들이었다. 내가 사는 자취방은 1번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기에 친구를 택시 태워 보내고서는 그 한적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뒤에서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매우 기분이 나쁜 그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 100미터 절도 뒤 떨어진 거리에 한 아줌마가 기괴한 움직임으로 휘청거리며 웃고 있었다. 눈이 썩 좋지 않아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단순히 기분 나쁘다고 할 소리가 아니었다, 그 높고 깔깔대는 불안정한 소음은 심장을 파고드는 끔찍함과 공포스러움이 묻어있었다. 몇 번을 뒤돌아보았고 그 때마다 그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상한 건 그 다음부터 쳐다 볼 때면, 처음에 보았던 그 괴기한 움직임과 웃음소리를 감추려는 듯 조용히 걸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쳐다보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그 웃음소리는 들려왔다. 나는 세상에 참 미친 사람도 많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모습에 묘한 궁금증이 계속해서 나를 자극했다. 저 사람은 과연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사람이 아예 없는 길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저 아줌마는 왜 내가 쳐다 볼 때만 그 웃음을 멈추는 것일까.
나는 걸음을 천천히 걷다 꽤 튼 할인마트에서 주츰거리며 주위를 둘려 보았다. 뭔가를 살 사람처럼.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을 때, 그 아줌마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의외로 그 아줌마의 생김새는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행동에서는 뭔가 꺼림칙한 기분 나쁨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는 그 아줌마의 모습은 애초에 자신이 어디를 가고자하는 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두리번거리는 아줌마와 시선을 마주쳤을 때의 미묘한 울렁임은 꼭 공포게임을 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밀려오는 그 아줌마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길을 정한 듯 움직인 길은 내 자취방으로 가는 길과 같았기에 길이 같은 곳 까지만 이상한 아줌마의 뒤를 따라가기로 생각했다. 분명 그 이상한 움직임과 웃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란 호기심에.
아까까지만 해도 차들과 사람들이 꽤나 있어 잘은 몰랐지만 그 아줌마의 구두소리는 꽤나 크게 울려 펴졌다.
또깍. 또깍. 또깍. 또깍.
자취방을 가는 길은 인적이 드는 길이었기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행이 내가 오늘 신고 간 신발은 밑창이 스펀지로 두껍게 되어있어서 조심히 걷는다면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내가 미행하기 시작한 후 부터는 아줌마는 웃지도 이상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보폭을 맞추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걷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그저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또깍. 또깍. 또깍. 또딱.
15분이면 도착했을 자취방이었지만 15분이 지날 동안 내가 걸어간 거리는 자취방까지 가는 거리의 1/3 밖에 오지 못했다. 물론 그 아줌마가 가는 방향이 이상하리만치 내 자취방으로 가는 길과 같았기에 계속 숨죽이며 그 아줌마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그 아줌마와 나만 있었다면 내 미행이 들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집으로 가는 두 남매가 있었고 그 남매는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 아줌마의 보폭과 비슷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 남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미행은 성공적이었다.
자취방에 거의 도착할 때쯤, 나는 그만 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 소리가 꽤나 컸기에 나도 모르게 움찔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 아줌마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인마트에서 쳐다 볼 때와 똑같은 전율이 온몸에 흘렸다. 등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아줌마의 모습은 섬뜩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 아줌만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또깍. 또깍. 또깍. 또딱.
이제 미행의 의미는 없어졌다. 그저 모두 갈 길이 있는 행인들일 뿐. 조금 뒤 삼거리가 나왔고 나는 자취방 가는 길로 걸어갔다. 끊임없이 얘기 하던 남매는 다른 길로 주저 없이 가버리고 이상한 아줌마만이 삼거리에서 무엇을 찾는 듯이 두리번거리다 다른 한 길로 걸어갔다. 내가 흘낏 쳐다봤을 때, 아줌마는 나를 보며 걷고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자취방을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아줌마의 모습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생각하기 싫은 그 눈빛. 표정.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줌마의 눈, 코, 입의 배치는 아주 미묘하게 조합되어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 아줌마의 가는 길이 나와 완전히 같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 너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취방에 다 도착했을 때었다. 긴 복도에 있는 등은 센서가 고장 났는지 꺼지지 않아 어두웠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 자취방 문 앞에 누군가 서있는 듯 한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고 자취방 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 소리가 났다.
또깍.
그리고 복도등이 켜졌다. 거기에는 아까 내가 미행했던 아줌마가 서있었다. 마치 관절이 꺽인 듯 움직이는 모습이 나를 더욱 더 두렵게 했다. 서서히 뒷걸음질을 칠 때, 그 아줌마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내가 기절할 때 엄청난 비명을 질렸나 보다. 옆집에 사는 이웃이 깜짝 놀려 나왔고 거기에 나는 쓰려져 있었다고 했었다. 이웃 나를 보았을 때 칼로 복부가 몇 차례 찔려 있어 피가 복도에 흥건했다고 한다. 하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가 도망간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심신이 안정되고 있지만 가끔씩 복도에서 보았던 그 아줌마의 모습은 나를 끝없이 괴롭혔다. 그건 차마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도 나는 그때의 모습이 떠오를 것만 같아 두렵다. 그래도 이렇게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 할 뿐이다.
또깍. 또깍. 또깍. 또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