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동안 쓰던 한국레노버의 울트라나브 키보드가 고장이 났다. 고장이라고 하기엔 백삼십여개의 키중에 물음표 하나만 타이핑이 안되는 사소한 증상이었다. 헌데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문서상 물음표를 사용할 일이 많아진다.
평소 빨콩으로 지칭되는 빨간트랙볼마우스와 가감없는 디자인이 맘에 들어 오래쓰고싶었던 제품이었고, 키보드치고는 비싼 금액을 지불했던터라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A/S가 될 줄로만 알았다. 씽크패드 키보드의 가격은 15만원정도다.
헌데 한국레노버측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무척이나 어이없었다. "키보드가 제품보증기간이 지났고, 키보드는 소모품이 때문에 수리해 드릴수 없습니다 고객님"
솔직히 순간 잘못 들은줄 알았다. 한두푼짜리 제품도 아니고 15만원짜리 키보드라면 어떻게든 수리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키보드는 물음표하나 빼고는 새것처럼 멀쩡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제품을 내다 버리란 말인가요?"
"내다버리란 소리는 아니지만, 수리해드릴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객님"
"그말이 그말이죠. 아니 한두푼짜리도 아니고 고치면 얼마든지 쓸수 있을것 같은데 새로하나 사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게다가 공짜로 고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수리비를 내겠다는 거 아닙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잘못도 아니고 키보드가 그냥 스스로 고장이 나버렸는데 날더러 이젠 사야한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났음은 물론이다. 세상이 정말 정상인가?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물건을 만들고 팔아치우고 사고 버리는 사람은 많아져도 고치고 수리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가. 아무리 구하기 쉽고 싼 제품이 많아 졌다고 하더라도 누가봐도 멀쩡한 물건을 세월이 조금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이 세상은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장도 나지 않았는데 구식이 되어버렸다는 이유로 바꿔야한다는 발상은 대체 언제부터 우리 삶에 바위의 홍합처럼 달라붙은 것일까. 갑자기 모든것이 혼란스러웠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분하다기 보다 너무 허탈했다. 2005년 인도를 여행할때 일이다. 그곳은 어디나 옷이나 구두, 전자제품을 능수능란하게 고쳐주는 사람이 있다. 작은 점포를 연 경우도 있지만 그냥 길바닥에 자리 하나 깔고 영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도 여행 중 두달정도가 되어갈 무렵 자이푸르 라는 곳에서 배낭이 찢어졌다. 나는 자이푸르 어느거리에서 터를 잡은 수선공에게 배낭을 가지고 갔다. 그는 하루 종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사람들의 옷이며 가방, 핸드백 등속을 고쳐주는 사람이었다. 몇시간 후 가방을 찾으러 간 나는 깜짝 놀랐다. 단순히 가방을 기워놓은 것이 아니라 찢어진 부분을 아예 가죽을 덧대어 직조해서 붙여 놓았던 것이다.
인도에는 어디나 물건을 고치고 다시쓰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버려지는 물건이 별로 없다.실제로 1인당 생활폐기물은 인구수를 감안하더라도 미국이나 호주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