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수습 또는 견습이라는 '미완성'의 자격으로서도 출입처에 나가면 위로는 대통령,장관,국회위원,은행 총재로부터 아래로는 국장,
부장,과장들과 동격으로 행사하게 된다.그들이 취재 대상의 하부층과 접촉하는 기회는 오히려 드물다.장관이나 정치인이나 사장,총재들과
팔짱을 끼고 청운각이니 옥류장이니 조선호텔 무슨 라운지니 하면서 기생을 옆에 끼고 흥청댈 때,그 기자는 일금 1만 8000원 또는 고작해서 일금 3만
2000원이 적힌 사내 사령장을 그날 아침 사장에게서 받을 때의 울상을 잊고 만다.
점심은 대통령 초대의 주식,그것이 끝나면 은행 총재의 벤츠차에 같이 타고 무슨 각의 기생파티에서 최신 유행의 트로트춤을 자랑하고 이튿날 아침
은 총리니 국회의장의 '자네만오게'라는 전화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참석하는 꿈이 남아 있다.이런 기회는 많고 적고의 차이가 있지만 출입처에
나간다는 기자에게는 반드시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거나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기자도 얼마쯤 혼탁한 물에서 헤엄치다 보면 의식이 달라진다.
면역이 된다.(......)여러 해가 걸리는 것이 아니다.어제 수습기자로서 선배 기자들의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이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사치가 아냐.건전한 국민오락이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여기서부터 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지배계급의 그것으로의
동화 과정을 걷는다.
그러다가 논설위원이 되거나 평론의 한편이라도 쓸때면 '학생의본분은 공부만 하는것현실은 정부에게맡겨라따위가 아무 저항감 없이 나오게 된다
서울의 종합병원 환자가 레지던트파업으로 하루 이틀 치료를 못받는것에 격분하는 기자는 이나라에 1342개 면이 의사없는 무의촌이라는 사실에는 관
심이 없다.(......)모든 것이 '가진 자'의 취미와 입장에서 취재되고 기사화된다.'지배하는 자'의 이해와 취미에서 신문은 꾸며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진 자와 지배하는 자는 대연각 음밀한 방에서 나오면서 이 기자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린다.
'역시 이완용 기자가 최고야.홍경래 기자는 통 말을 알아듣지 못한단 말야'그러고는 득의만면해서 돌아서는 이완용 기자의 등 뒤에서 눈을 가늘게
하여 회심의 웃음을 짓는다'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379~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