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주라'의 태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혹자에 의하면 모두가 가난하던 80년대, 공 하나 때문에 치고받고 싸우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는데,
누군가의 "그럴 거면 차라리 아 주라!!"에서 시작되어 "아 주라!!"를 모두 외쳤단다.
"애들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나잇살이나 먹어서 말이야! 차라리 그냥 애나 줘라!!"가 태생의 이유인 셈이다.
참고로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년 전, 그러니까 90년대 초에도 친구들과 입에 달고 살았으니 꽤 오래된 문화임엔 틀림없다.
나도 '아 주라'는 대찬성이다. 어른들은 섭섭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수혜를 보는 건 어린이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이유든, 꼬맹이들 가슴에 사직야구장, 자이언츠 팬이란 이미지가 새겨지는 걸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자이언츠 팬들은 그래서 웃으며 건넨다.
단지 공 잡았다는 재미에 만족하면서 그렇게 건넨다.
하지만 그런 '아 주라'엔 순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아직 인터넷에 논란거리가 되고, 갑론을박하며 돌고 도는 역기능도 있다.
"내가 갖지 못할 바엔 너도 갖지 마라!"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의 이기심을 만들어냈단다.
"남 잘되는 꼴은 못 본다."란 거지 근성을 보이고 있단다.
물론 화가 나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아 주라'가 울려 퍼지면 공 잡은 사람은 죄인이 된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래서 들고 있기 부담스러워 지면서 그 누구에게 넘겨야만 하는 시류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넘겨 주진 않지만) 좋게 넘겨 주려는 순수한 의도를
억지로 등떠밀려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왜곡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하고 싶은 얘긴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아기를 안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문제라는 거다.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싸구려 글러브를 끼면서 아빠와 함께 치킨을 뜯는 어린이가 아닌,
가끔 장시간의 야구에 흥미를 잃어 통로를 뛰어다니거나, 어설픈 실력으로 캐치볼을 하는 그런 어린이들이 아닌,
걸음마도 채 배우지 못한 갓난 애를 안고 공 하나 얻으(라고 쓰고 '뺏으'라고 읽는다.)려고 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게 과연 '아 주라'일까? 그건 '아빠 주라'일 뿐이다.
같이 응원하는 팀 팬에게도 꼴불견일 뿐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아 주라'의 순기능을 희석하지 말자.
항상 관중 많아서 다른 구단의 부러움을 사는 꼴데 자이언츠의 예비 골수팬을 확보하는 '아 주라'를 변질시키지 말자.
꼬맹이들의 벅찬 가슴 이끌어 내는 '아 주라'를 다른 팀 팬들이 '이기심'으로 생각하게 하지 말자.
나눠준 봉다리 쓰레기 담아서 입구에 놓듯,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자이언츠 팬이 되자.
수년 전까지 '꼴데'라고 놀림 받았는데, 이건 또 언제까지 없어져야 할 문화라고 비난받을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