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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바다
게시물ID : readers_358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끼요오오옷
추천 : 1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05 02: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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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달빛이 곱게 부서진 백사장을 야금하듯 적셔 오는 파도 소리에 매료된 채 걸었다

어렴풋이 물갈퀴를 기억하는 발가락이 텀벙텀벙 챈 바닷물의 시원함을 예민하게 전달하고

하얀 포말에서 몇 차례나 건져 올린 발목은 조개가 뭍에 처음 내디딘 혀만큼 때 묻지 않아진다

이다지 정갈할 때만 인어공주 마주치겠단 심경으로

용궁의 국경선 따라 걷는 보보마다 어쩐지 예언이 재현되리란 확신에 차니

허공 속 꽃가루 같은 잔무늬로 아른거렸던 모래성에 다가가진다

만조로 백지화된 발자국 뒤부터 이미 눈에 안 보이는 어떤 경계를 건너왔음을,

체모를 쓸고 간 세포 호흡이 두뇌론 모를 일을 먼저 느끼고 있었다

꼬리 긴 유성이 나타나 머리 위에서 한 바퀴 돌며 나와 외계가 교감한 그때

석화된 불가사리 하나를 주워 하늘에 갖다 대 잃어버린 곳에 끼워 맞추자, 운명적으로 인어공주를 만났다

오랜 꿈에서 연거푸 본 그이라며 기다려왔다고 했다

바다가 생길 때 헤어진 전생의 기억이 동시에 복구된 우린 갯바위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뭇별을 헤아렸다

그렇게 별자리를 이어보다가 몸의 점을 잇는 놀이로 바뀌어

살포시 건넨 손길로 그녀 아가미를 신기해하고, 어여뻐하고, 고향을 묻고,

같은 차원 다른 방법의 숨결이 닿는 곁에서

미모를 여겨보자니 달빛보다 어울린다 할 화장품이 달리 없었다

펼쳐진 달빛 아래 은은하게 이어지는 물결은 마주친 서로의 눈동자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정지 상태로 있지 아니한 빛줄기와 자꾸 속삭이는 미풍에

자갈 풀 주변 모든 게 여러 각도로 명암을 내비쳐가며 동요했지만 그런 떨림이 있는

우주를 항해하는 행성이란 배에서 우리에겐 돛대처럼 단단하게 중심을 잡은 사랑이 싹텄을 뿐이다

많은 게 단단해졌다. 열띤 입술도, 머뭇거렸던 손깍지도, 두 그림자가 한 섬의 윤곽을 갖춘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몽중에 꼬집듯 뼛속 깊이 시리게 스민 새벽이슬

예감된 시름에 싸여 눈을 질끈 감았다가 차마 뜨질 못하고 낙루하는 현실감

초췌한 시야가 미친 하늘과 땅 변두리까지 뿌연 연무 뒤덮여 둘러봐도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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