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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구성물
게시물ID : readers_358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끼요오오옷
추천 : 4
조회수 : 3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12 22: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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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직도 부모님 생각 나시느냐고 할아버지께 여쭸다

알만하면서 어리광으로 봐주십사 멋쩍은 질문이었다


한동네 산 삼춘 행방도 듣지 못한 채 어려서 피난 오느라 힘들었는데

옴마이 손 잡고 의지할 데 있으니까 그때가 행복했더라고 웃으셨다


증조할머니는 소원이던 새집에 홀로 화단을 가꾸시고 좀 살만해지자 돌아가셨으나

그래도 슬프게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후회도 하고 울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면 소중한 사람은 슬프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지금은 안 계신 할아버지한테서 이야길 들어 다행으로 여겼다


부친 환갑을 맞이해 이제 사십밖에 못 사시겠네 깐죽댔더니 차라리 욕을 해라 하셨다

부모님을 나이로 넘어서는 날이 오면 부모님보다 지혜로워져 있을까


외할머니와의 추억담 들려주실 때면 엄마는 할머니라 말하시다가도 무심코 익숙하게 엄마라 하셨다

엄만 외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셨고 그 당연한 거에도 난 어쩐지 조금 울적했다


집 앞 골목 길고양이들 똥 치우다가 발에 걸려 부러진 쓰레받기

다음 날 보니 손잡이에 구멍 몇 개 뚫어서 통과시킨 철사로 어찌나 잘 동여졌던지


유품으로 보일 지경에 이르러 부모님보다 지혜로워진 내가 상상되질 않을 것 같았다

머리가 다 희어져도 기억 속 엄마 아빠한테 시대가 너무 바뀐다고 한탄이나 할 듯싶었다


시간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깊어진 부모님의 주름을 책처럼 읽어 본 서른

책임감이야말로 지혜의 구성물이란 것을 배우기 시작한 걸음마 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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