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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짐승' 연쇄살인마 루이스 가라비토
게시물ID : panic_367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MPunk
추천 : 14
조회수 : 586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9/27 10:04:53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 쿠비요스 Luis Alfredo Garavito Cubillos

 세계 10대 '왕성하게 활동한 살인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루이스 가라비토는 '연쇄살인의 제국'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연쇄살인이 자행되었던 콜롬비아에서 활동했다. La Bestia(짐승)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라비토는 당시 콜롬비아의 붕괴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가난하고 집도 없는 방치된 거리의 아이들을 주로 희생자로 삼았다. 당연히 아이들이 실종된 후 그 사실을 알아채는 사람도 거의 없었으며 그랬기에 그는 139명이라는 '확인된' 희생자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많은 살인마들이 증거의 불충분이나 기타 법적 이유로 실제 그들이 자행한 살인보다 훨씬 적은 피해자들에 대한 죄값만을 치르는 것을 볼 때 가라비토의 추산되는 피해자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가라비토는 감옥 안에 수감되어 지도 위에 유해들의 위치를 표시했는데 그 수는 300이 넘었다. 범행 숫자가 연쇄살인마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라비토는 이미 충분히 최악의 연쇄 살인마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유년기
 다른 많은 살인마들과 같이 그의 어린 시절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서부 콜롬비아의 커피 재배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7형제의 장남이었고 그의 아버지 마뉴엘 가라비토는 그를 상습적으로 폭행했으며 2명의 이웃에게 강간을 당했다. 5년여동안 학교를 다닌 후 16세의 나이에 집을 떠나 상점 직원이나 종교 물품을 파는 노점상을 운영하며 근근히 생활을 꾸렸다. 성인이 되어 그는 직업들을 전전하며, 술독에 빠져 살고, 난폭하게 굴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연쇄살인
 1998년 2월 두 구의 헐벗은 아이 시신이 콜롬비아의 마을 제뉴아의 교외에서 발견되었다. 그 다음날, 단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 번째 시신이 발견되었고 이번 것은 상당한 부패가 진행되어 있었다. 모든 시신은 손이 묶여 있었고 목과 성기 부분이 깊게 베이거나 절단되어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빨 자국이나 항문 성교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사망시간은 추정할 수 없었고 핏자국들의 DNA 감정도 금전상의 이유로 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여러 명의 연쇄살인마들이 콜롬비아를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그들이 페드로 알론소 로페즈Pedro Alonso Lopez(안데스의 괴물)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고 추정했지만, 로페즈는 오직 소녀만 죽였다.
 곧 그 두 구의 시신은 근처 마을에 사는 각각 11세와 13세의 친한 친구들이라는 것과, 가난한 가정 때문에 길거리에서 과일이나 껌을 파는 소년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수사가 진행되며 경찰들은 다음의 사실을 알아냈다.

 처음에 가라비토는 단순히 돈을 주며 아이들에게 접근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의심스러워 했기에 곧 방법을 바꿨다. 가라비토는 쥬스나 케익을 사 주며 그들의 외모를 살폈다. 가라비토는 너무 어두운 피부 색깔의 아이는 싫어했으며, 부드러운 살갗을 가진 쪽을 선호했다. 그리고서는 그는 자신이 행상인, 수도사, 거지, 장애인, 노인/어린이 교육을 위한 단체의 대표라는 둥 신분을 속이며(이때 그는 복장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으며 자신의 신분을 속였다)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 일들이란 보통 오렌지 상자를 나르는 것, 소를 옮기는 것, 사탕수수를 추수하는 것 등이었으며 약물이나 도박에 중독된 아이들에게는 각각 마약과 상금을 준다고 하며 꾀기도 했다. 그렇게 교외로 아이들을 데려와 오래 걸어 지친 아이들을 덮쳐 강간하고 고문한 후 죽였다. 그는 드물게 큰 자루에 돌과 시신을 함께 넣어 물에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시신을 처리하기도 했다.
 수사의 올가미가 죄어 오는 상황에서도 그는 살인을 계속했다. 1996년 6월 8일 콜롬비아의 한 마을 보야카에서 소년이 실종되었다. 그는 5일 후 목이 절단되고, 성기가 잘려 스스로의 입에 물린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곧바로 수색을 시작했고 소년이 실종되기 전 마을의 한 가게에서 과자를 사주는 남자와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그 때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던 가라비토를 지목하고 그를 탐문수사했지만 가라비토는 그들에게 그저 과자를 사주었다고 하고 곧 풀려났다. 그는 4일도 채 지나지 않아 페레이라에서 또 소년을 살해했다.
 1997년 12월 경찰은 페레이라 근처의 한 무덤에서 25구의 가라비토의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견했으나 처음엔 사탄숭배주의자들의 만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라비토는 1992년부터 1999년 4월 22일, 12세 소년을 강간한 혐의로 그가 감옥에 갇힐 때까지 총 140명의 8세부터 16세 사이의 소년들을 죽였음을 고백했다. 그는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등지의 54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질렀고, 가장 많은 살인이 일어난 곳은 그의 고향이었던 페레이라였다. 그의 피해자들 중 27명은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엑스레이를 통한 치열 대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엑스레이 등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에는 너무 가난했고 그나마 이미 촬영된 사진들도1998년에 있었던 콜롬비아의 지진으로 파묻힌 경우가 많았다.

처벌
 법정에서 그는 자신이 취해 있었거나 '신적 존재'에게 자신의 몸이 지배당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138건의 살인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고 나머지는 아직도 재판이 진행중이다. 가라비토에게 이 모든 건의 살인에 대해 1853년 하고도 9일의 징역(콜롬비아는 사형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이 양형되었으나 콜롬비아는 법으로 인해 30년 이상 범죄자를 수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경찰의 수사를 도운 가라비토는 고작 22년 형을 받았다. 이는 당시 활동하던 다른 살인마들의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과 함께 콜롬비아 현지의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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