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이던 학생시절도 끝을 달려 어느세 학교를 졸업했고 사이가 좋았던 반 친구들과 서로 연락을 하던것도 처음뿐이었어 내가 대학근처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된것도 있고 바쁘기도 해서 점점 소원해지게 됐어 그 녀석과도 어느 한 사건 이후로는 어떤 연락도 할 수 없게 됐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어 사이좋게 지내던 날들을 생각하면 역시 그리워 지기도 해 그렇지만 그 녀석이 했던 일이 올바른 일이었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었고 용서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어
지금부터 한 2년정도 전쯤의 일이야 난 대학교 졸업을 맞아 서류 준비를 하고 있었어 진학할 생각은 없었고 취직하기로 결정했었기 때문에 그에대한 방대한 양의 서류와 몇 장의 이력서, 취직을 위한 자료가 산처럼 쌓여있었어 그것들을 대충 훑어봐서 쓸것은 쓰고 제출할것은 따로 나누고..그러고 있자니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어 현실 도피였는지도 몰라 바로 짐을 챙기고 빠듯하게 마지막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어 흔틀리는 차창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익숙한 풍경이 반가워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
이윽고 거대한 묘원이 보였어 우리 마을에 있는 공동묘지였어 캄캄한 가운데 제등을 가진 행렬같은게 보였어 처음엔 도깨비불인가 생각했었는데 기차가 가까워지자 차츰 사람들이 제등을 들고 길게 늘어서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
「이런 시간에 성묘를 하나…?」 난 왠지 신경이 쓰여서 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든 채로 묘지로 향했어
묘지에 도착하자 제등 행렬은 이미 보이지 않았어 아무래도 한참 멀리 앞서 가버린것 같았어 그냥 내버려두면 좋을 것을 왜인지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나는 앞으로 나아갔어
그 녀석도 이런 호기심으로 묘지에 자주 왔었나 보구나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묘지 한가운데쯤으로 들어왔을때 아까 본 그 무리들을 찾아냈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제등을 들고 늘어서서 뭔가 즐거운듯이 이야기 하고 있었어
왜 그랬는지 나는 무덤에 숨에서 이야기를 훔쳐들었어 「여기가 내 무덤이야」 「이게 나야」 「내건 여기엔 없나봐」 「그럼 앞으로 가보자」 「그래 그러자」 대충 이러한 얘기가 들려왔어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귀신이던 사람이던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건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그 무리가 얘기하느라 정신없는 지금이라면 도망갈 수 있어 나는 막 달아나려 자세를 취하고 있었어
그때..
「오빠, 뭐해?」
뭔가 노이즈가 뒤섞인것 같은 목소리...
올려다 보니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이 내가 숨어있던 묘석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어 바로 거기서 난 이 무리들은 이 세상것이 아니라고 확신했어 왜냐면 그 여자아이는 보기에 겨우 3~4살 같았는데 그런 작은 여자아이가 어떻게 어른인 내가 숨을 수 있을만큼 커다란 묘석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겠어?
게다가 얼굴만...
몇년만에 느끼는 공포에 나는 쏜살같이 달려 도망치고 있었어 그 무리가 뒤쫓아 오는게 느껴졌어 노이즈가 섞인듯한 목소리도 들려왔어 그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어 무서웠어
예전엔 이렇게 무서운 순간에는 옆에 그녀석이 있었지만...지금은 없어.. 그런 지금 저 무리들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정말 죽도록 무서웠어
달리고 달려도 공동묘지가 끝이 안보였어 마구 울부짖으면서 도망치고 있었어 그때..
「악!!!」
뭔가에 걸려서 넘어졌어 아..더이상은 틀렸다고 생각했어
뒤에서 쫓아오는 제등의 빛이 보였어
「에잇!!」 주저앉은 채로 애꿎은 묘석을 발로 차 버렸어
「이런 천벌을 받을 놈이 있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어
시선을 올려보니.......
거...거짓말.......
그녀석이 있었어
「나...나나..시..?」
그 시절보다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나나시가 있었어 쓴 웃음을 짓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어
「지금이 넋 놓고 있을때야?? 달려!!」 정신차리라며 중얼거리면서 나나시는 내 손을 잡아 당기고.. 달렸어
아.... 이 등이야 언제나 곤란할때 도와주던...
해랑해랑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달아나는 이 등.. 아무리 무서워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등을 따라가면 그걸로 안심이란 생각이 들었어
정말로 혼자서 달릴때의 밑도 끝도 없던 극심한 공포가 어느세 안도감으로 변해있었어
달리고 달려서 묘원을 빠져나왔어 그 곳을 벗어나고 나니 더이상 제등이 뒤쫓아 오지 않았어 나 혼자였더라면 분명 붙잡혔겠지...
나나시가 정말 고마웠어.....고맙다고 고맙다고 몇번이나 중얼거리면서 울었어
「이제 괜찮아!!더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제 괜찮아...」 나나시가 말했어 나는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필요 이상으로 울었어
난 알고 있었어 괜찮아....무서워 하지 않아도 돼... 정말 이 말을 듣고 싶은건...아니..정말 ..이 말을 듣고 싶었던건.... 그 때의 나나시였다는 걸.. 해랑해랑 웃으면서도 속으론 무서워했을...그..어렸던 나나시였다는걸... 그런데 나는 그땐 알지 못하고 나나시를 의지하고만 있었어 만약에 내가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나시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됐었을텐데...
그래..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건 그때의 나나시가 아니라 그때의 나였어
난 눈앞에 있는 나나시에게 몇번이고 사과를 했어 나나시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해랑해랑 웃고있었어
「그럼 조심해」 나나시는 나를 역까지 바래다 주고는 해랑해랑 웃으며 돌아갔어 나도 손을 흔들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 다시 그 시절처럼 나나시와 친구로 돌아 갈 수 있을거란 기대를 안고 조금 설레이면서...
다음날.. 나는 엄마가 시켜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묘를 가게 됐어 장소는 바로 어제 그 묘원.. 솔직히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갈 수 밖에 없었어 밝은 낮에 와보니 깨끗하게 손질 되어 있어서 조금도 기분나쁘거나 무섭지 않았어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난 또 걸려 넘어질뻔했어 어제의 그 묘석이었어 「어제도 오늘도 자꾸 차서 미안...」 사과를 하면서 묘석을 봤어...
그리고..... 나는......... 울었어
그 초라한 묘석엔.....나나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
나나시는...일년전의 어제에...죽었어
나는 울었어 울고 울고 또 울며 울부짖었어
내 친구는..내 친구의 그 듬직했던 등은...이제 그 어디에도.. 없어 결국 나는 단 한번도 나나시를 구해주지 못했는데...
세상 모든것엔 반드시 끝이라는게 있고 그것은 갑작스레 방문한다는 것을 알게된것은 그 해 겨울이 끝날 무렵이었어 졸업을 목전에 두고 매일이 분주하게 지나가는 가운데 내 친구는 학교를 빠지기 일수였어 이전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학교를 빠지는 날이 거의 없었고 어쩌다 하루 쉰것만으로도 걱정이 되서 문병을 하러 갔을 정도였는데 그쯔음에는 오히려 교실에서 보는 것이 드물만큼 학교에 오질 않았어 가끔 학교에 오더라도 뭘 묻든지 간에 해랑해랑 웃기만 할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만날때마다 눈 아래 다크써클이 진해지고 몸은 점점 야위어만 갔고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어 그런걸 걱정해도 아무것도 아니라며 괜찮다고만 할뿐.... 그렇게 또 해랑해랑 웃으면서 돌아가놓고 또 다음날은 오지 않는거야 이게 계속 반복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어딘가 부족하다 느껴지는 소탈한 일상도 그저 행복했던 거라고 깨닫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날도 여전히 나나시는 학교에 오지 않았어 이젠 딱히 아무렇지도 않게 될 정도였지만 집에 가는 길에
「이것좀 전해줄래?」 담임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진로에 관한서류를 전해주러 나나시의 집으로 가게됐어 무서운 기억밖에 없는 나나시네 집에 가기가 망설여져서 전화를 해서 공원으로 불러내기로 했어
그리고 그날 저녁...
나나시는 왔어
상당히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팔랑팔랑 손을 흔들면서... 다크써클은 훨씬 더 심해져 있었어 걱정스런 마음에 나나시에게 물었어 「너 괜찮은거야?」 「응! 멀쩡해!!」 「멀쩡하긴!뭐 숨기는 게 있는거지?....말해줘...」 정말 진심을 담아서 간절히 말했어
그러자 나나시는 천천히..조용하게 말했어
「성공한줄 알았어....잘..해낸줄 알았는데...」 나나시는 절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어 눈물어린 웃음이랄까..억지로 웃고있는 듯한 표정.. 나나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괜찮아^^ 오늘...다 끝내버릴테니까」 나나시는 언제나처럼 해랑해랑 웃었어
끝내버리다니...뭘?
하지만 물을 수 가 없었어 왠지 그때의 나나시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였거든
그렇게 나나시와 헤어진 뒤로도 머릿속에선 나나시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그 생각으로 가득했어 이 불길한 예감이 틀렸으면 좋으련만.... 나나시라면 무슨짓을 저지를지 몰라 무덤을 파 헤치려는건지 흑마술이라도 펼치려는 건지...짐작이 가지 않았어 나나시가 말한 성공했다고 생각했다는게 무슨 의미인건지도 알 수 없었어
이런 생각으로 잠을 설치고 있었던 새벽 3시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아우성치기 시작했어 누군가 보니 아키야마였어
「여보세요」 「큰일난것같아! 불길한 예감이 들어..빨리와줘!!빨리!!!!!!」
아키야마는 이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어 어디로 오라는 건지도 말하지 않고 말야... 그런데도 어쩐지..난 알고 있었어 나나시네 집일 거란걸..
나는 파자마를 입은채로 집을 뛰쳐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필사적으로 나나시의 집으로 향했어 가는 도중에 아키야마와 만났어 아키야마도 나와 같은 복장이었는데 덜덜 떨고 있었고 안색은 창백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