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는 물리학과 박사과정 졸업반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제가 하는 이야기는 이공계에만 국한될수 있다는 것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먼저 표절과 인용에 대해서
인용은 모든 연구분야에서 널리 이용되는 방법입니다. 굳이 세상에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해놓은 연구를 다시 해볼 필요는 없겠지요. 오히려 "내가 직접 해봤다" 라는 것보다도 "우리 뿐만 아니라 어느 연구단에서나 공통적으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 라고 하면 더 설득력이 있을 거구요. 모든 연구는 이런 인용을 밑바닥으로 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치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제대로된 인용이 필수불가결하지요. 학문이라는게 쌓여가기 때문에 인류가 발전해온거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새삼 인용의 위력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반면 표절이란 놈은 인용과 정반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이 한 것을 마치 자기가 한것처럼, 인용이 새로운 한발짝을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표절은 과거에 있었던걸 새로운것인양 포장하는 것입니다. 결국 거짓말하는 것일 뿐이고 과학자에게 거짓말이란 가장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논문 조작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질적으로는 하등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자기표절과 논문 시스템
그럼 자기 표절은 뭐냐. 당연히 자기가 과거에 했던 일을 새로운 일인양 또 새로운 논문에 넣는 일입니다. 자기표절에 대해서 더 깊이 논하기 앞서 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자기표절을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야든 사람들이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크게 딱 세가지로만 나누어 보겠습니다. (연구 분야에 따라서 이후 세분화는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1) 학술 저널로 발표
(3) 학위논문으로 발표
그럼 당연한 질문이 들어오겠죠?
"어라? 똑같은 내용을 학술 저널로 발표하고, 학회에서 발표하고, 학위논문으로 발표해도 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정확한 대답은 "네, 그렇지만 아닐수도 있습니다." 입니다.
여기서도 먼저 현대 과학의 발전이 어떤식으로 동작하는지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입니다. 그리고 그 발견을 세상과 나누는 것이지요. 과학자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징검다리가 바로 학술 저널입니다. 여기서, 학술 저널이라는 것은 특정 과학적 주제를 가진 잡지하고 보시면 됩니다. 과학자들은 자기가 관심이 있는 잡지를 항상 구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과학자는 새로운 발견을 그 잡지에 투고하는 것이 일차 목표가 됩니다. 이때 과학자가 투고한 결과물의 저작권은 그 잡지에 넘어가게 되구요. 따라서 학술 저널 두곳에 똑같은 내용을 투고하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됩니다. 첫번째 저널에 논문을 투고한 이상 그 논문은 더이상 과학자의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는 저작권을 나누는 대신에 그 잡지에 투고했다는 커리어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 커리어를 기준으로 과학자는 정부나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계속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과학자에게는 많은 사람이 구독하는 좋은 학술 저널에 많이 투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지요.
지금이야 구독권만 사면 인터넷을 통해서 어디서든 학술 저널을 읽어볼 수 있겠지만 과거에는 학술 저널을 보기 위해서는 학교나 국립 도서관을 통해 그야말로 직접 저널을 받아 봐야 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역할이 바로 학회였습니다. 학회란 과학자들이 직접 한자리에서 만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 학회와 학술 저널은 현대에 와서는 독립적으로 봐야 합니다. 즉, 학회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은 학술 저널에 이미 실린 내용일 수도 있고 실리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는거죠. 그렇지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회마다 다르지만 어떤 학회들은 학회에서 자체적으로 그 학회에서 있었던 발표들을 모아 잡지를 발행하곤 합니다. 이런 학회의 경우 참가할때부터 마치 학술 저널처럼 논문을 투고 받습니다. 즉, 새로운 발견의 저작권이 학회의 잡지에 속하게 되는 거죠. 이 경우 그 내용을 다른 학술 저널에 내면 될까요? 당연히 안되겠죠!
과학자로서 자격을 처음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학위입니다. 학위의 조건이야 학교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면 역시 학위논문입니다. 학위논문이란 학위 과정에서 자신이 수행한 연구를 종합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학술 저널에 발표하는 것과는 무관한 행동입니다. 즉, 학위 논문에 들어가는 내용은 자신이 이미 다른 학술 저널에 발표한 내용일수도 있고, 자신이 발견은 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있어서 학술 저널에는 발표하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미발표 자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학술 저널에 투고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전혀 아니죠. 왜냐면 그 자료는 어떤 누구와도 저작권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기껄 잡지에 발표하는 아주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이제 자기표절이라는 것의 정의를 정확히 해야합니다. 자기표절이란 새로운 연구를 하지 않았으면서 "의도적으로" 새로운 것인척 연구성과를 부풀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아주아주 나쁜 행동이죠. (거짓말쟁이!)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거짓말을 해서 자신이 연구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여 국가나 기업의 돈을 유치받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일차적으로 더 뛰어난 다른 과학자들에게 돌아갈 지원이 오용될 것이고, 나아가 그 돈이 다 국민의 세금이나 기업의 이윤에서 나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기표절은 이 사회, 국가, 인류를 좀먹는 행위일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것과 같이 자기표절이 적용될수 없는 경우에도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연구를 하다보면 가끔 외부에서 볼때 자칫 자기표절로 오해받을수 있는 일들이 꽤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한 과학자가 A라는 현상을 B로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 후 몇년 뒤 계속되는 후속연구로 A라는 현상이 알고보니 B가 아니라 C로 설명해야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죠. 물론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는 처음 논문과 같습니다. 이때 이 논문이 자기표절이냐? 아니죠! 왜냐면 이야기하려는 스토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만 더 봅시다. 연구를 하다보면 하나의 실험결과로부터 두가지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독립적이어서 두가지를 모두 담아서 한 논문으로 간추리기에는 논문이 너무 장황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한가지 데이터로 두 논문이 나올수 있지만 역시 각각이 다른 스토리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표절이라고 볼수 없죠. (상식적으로 그렇잖아요?)
자기 표절이라는걸 실질적으로 문제시한게 몇년 안되었다고 기억합니다. 제가 07년도에 대학원에 왔는데 처음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던 자기표절을 09년도 이후 논문부터 계속 트집잡더라고요. 분명 저는 논문을 학술 저널에 투고하고 그것을 학회지가 나오지 않는 학회에서 발표한 것임에도 내용이 같다는 이유로 몇번 사유서를 썼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학술 저널과 학회의 발표에 쓰이는 제목과 초록이라도 바꾸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귀찮아 했지만 취지는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술 저널과 학회가 각각 저작권을 가질 경우 생기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정책적으로 더 많은 보완이 필요하겠지요.
이번 이슈도 이런 자기표절에 대해서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술 저널에 낸 그림과 학위논문에 있는 그래프가 같다는 이유로 비판을 하는 것은 연구와 논문의 시스템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밖에 안됩니다. 연구쪽 종사하시는 사람들이 보면 다들 코웃음칩니다. 제발 비판다운 비판을 합시다.
네 맞습니다. 추석입니다.
혹시나 이런 사실을 하나도 모르시는 부모형제분들이 있다면 널리널리 전했으면 합니다.
3줄요약
1. 표절/자기표절은 뿌리뽑아야할 나쁜 행동이다.
2. 학위 논문과 학술 저널 논문은 상호 무관하다.
3. 자기표절을 방지하는 정책이 좀더 보완이 필요하다.
+ 그러니까 문대성은 표절이고 안철수는 아니라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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