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9시50분쯤 전남 보성군 보성읍의 한 교회. 며칠째 보이지 않는 조카들을 찾아나선 이모(55)씨는 눈앞의 끔찍한 광경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교회 내부 16.5㎡ 남짓한 조카들 방에선 뭔가 썩는 냄새가 스며 나왔다. 전화를 해도 아이들 부모인 목사 박모(43)씨와 조모(34)씨가 "아프다"고 얼버무리자 이상하게 여겨 직접 교회에 찾아와 굳게 잠긴 창문을 뜯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그곳에선 배꼽까지 이불을 덮은 조카 3남매가 죽은 채 누워 있었다.
이 교회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씨 부부가 이곳에 온 건 2009년 3월. 36.3㎡ 규모의 예배실과 안방·주방 등이 있는 단층 건물을 월세 20만원에 계약했다. 이곳에서 박씨는 지역 주민 16명을 모아 놓고 목회 활동을 했다.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한 건 지난 1월이었다. 4남매 중 막내딸(1)이 먼저 감기몸살을 앓았다. 이후 세 명도 차례로 아팠다. 모두 열이 높았다.
박씨는 지난달 10일과 20일 나이가 어린 둘째 아들(5)과 막내딸을 화순군에 있는 소아과로 데려간 뒤 일주일분의 약을 지었다. 기관지염 처방이었다. 큰딸(10·초등 3년)과 큰아들(8·초등 1년)에겐 종합감기약을 먹였다.
이 무렵부터 부부는 금식기도를 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 1일 오후 10시 큰아들이 숨졌다. 지난달 23일부터 아이들에게 밥을 주지 않은 지 열흘 만이었다. 큰딸과 둘째 아들도 굶은 지 열하루 만인 2일 오전 5시와 7시 차례로 숨졌다. 큰딸은 구토하다 피를 토했다. 경찰은 "이들이 금식기도를 하면 숨진 자녀들을 살릴 수 있다고 믿어 번갈아 가며 단식을 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폭행과의 연관성을 캐고 있다. 검안의는 12일 부검 직후 "시신 곳곳에서 타박상 등 가혹행위 흔적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이 한 명당 허리띠와 파리채로 39대씩 모두 네 차례 때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박씨는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는 성경 구절에 따라 이렇게 때렸다"고 진술했다. 폭행은 1일 오전 집중적으로 있었다.
박씨는 당초 금식과 안수기도를 위해 가혹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2차 조사에선 "성경에서처럼 잡귀를 쫓아내려 했다"고 번복했다. 황석헌 전남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은 "안수기도 과정에서 이뤄진 가혹행위가 사망의 직접 원인인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경찰서는 이날 상해치사 혐의로 박씨 부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씨 부부에 대해선 알려진 게 많지 않다. 10여 명의 신도 외에는 주민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아이들이 4명이나 된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반 교회와는 분위기가 달라 접근 자체를 꺼렸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박씨는 1999년 자신의 고향인 전남 진도군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봤다. 형제교회 소속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정규 신학교는 물론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종교적 맹신에 빠진 부모의 잘못된 선택"이라며 "신이나 기적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신학대학을 나오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목사라고 할 수는 없으나 주변에서 목사 대우를 해줬다"고 말했다.
보성=유지호·최경호 기자 <hwaonejoongang.co.kr>
유지호.최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