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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송상현 (1551 ~ 1592)
게시물ID : history_57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inedream
추천 : 10
조회수 : 20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9/30 12:03:19

 

 

충렬공 송상현 (1551 ~ 1592)


자는 덕구, 호는 천곡, 본관은 여산. 2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임명되었다.  (문신)

1591년 집의로서 통정대부에 올라 동래부사가 되었는데 이때가 임진왜란 바로 전년이었다.


송상현은 동래로 부임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집무를 수행함에 있어 오직 성의와 신의로만 사람들을 다뤘고

관리와 백성들은 그를 마치 부모처럼 따랐다. 그리고 이듬해 왜란이 터지자 성을 수축하고 임전의 태세를 갖춘다.


송상현은 동래성을 두고 왜군 1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대치하게 되는데 이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싸울려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길을 비켜라(戦則戦矣不戦則仮我道)"는 내용의 편지를 송상현에게 보낸다.

이에 송승현은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키기는 어렵다(戦死易仮道難)" 라고 답문을 보낸후 동래성 전투가 벌어진다.

 

(동래성 전투의 조선군 병사는 2500~3000에 반해 일본군은 약3만 이였다.)

 

전투는 결국 조선군의 패배로 끝이나고, 송상현은 관복으로 갈아입고 초루에 올라 부채에 아버지에게 올리는 혈서를 쓴다.

외로운 성에는 달마저 흐렸는데 孤城月暈
옆 고을은 잠이 들어 있구나 列陣高枕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무겁고 君臣義重
부모와 자식의 온정은 가볍구나 父子恩輕


 

그 모습을 지켜 본 고니시 유키나가는 송상현에게 도망칠것을 권고 하였으나 송상현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충절에 감복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시신을 수습하여 동문밖에서 예를 다해 장사를 치뤄주었다.

 

송상현의 순직 소식을 들은 선조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충렬공'의 시호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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