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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아내가 예뻐졌다. -2부-
게시물ID : panic_360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90
조회수 : 9814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2/09/11 23:29:00




결혼하고 반년이 조금 안됐을 무렵.

점심시간, 팀의 선후배들과 회사 앞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내가 김치찌개를 주문하자 옆에 앉은 선배가 어깨로 나를 뚝하며 밀쳤다.

"새끼, 요즘 살맛나지?"

그 소리를 듣자 입사동기 녀석이 거들듯 입을 열었다.

"와, 넌 진짜 좋겠다. 재수씨가 완전히~"

"경리과에 그분이죠? 그분?"

입사 신입인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약간 흥분조로 야단을 떨었다.
나는 사람들의 질문세례에 되려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어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뭐가?"

동기가 내 목덜미를 손날로 슬쩍치더니 말했다.

"임마, 회사에서 제일 이쁜여자를 낚아갔으면 죄송한 표정을 지어야지. 왜?! 뭐가?! 이지랄은! 이 새끼!!"

"저도 입사해서 사람들한테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저보다 어린줄 알았는데 결혼했다고해서."

선배가 한심한듯 신입을 처다보며 말했다.

"너는 마, 일이나 열심히 해, 마 자식아. 어딜! 쯧..."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아내의 칭찬을 뱉을 때마다 머리에 쇠망치를 얻어 맞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집사람이 정말, 그렇게 예뻐?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어?"

나의 사뭇 진지해진 표정에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 졌다가
무슨 헛소리냐며 사람 염장을 지른다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점심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길 경리팀과 같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를 멀찌감치에서 바라보았다.
어느새 머리칼이 저렇게 길어졌을까?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부딪히며 걸음을 옮길때마다 허리춤까지 오는
머릿결이 들썩였다.

선배가 내 옆구리를 쿡찌르면서 "왜? 그렇게 예뻐 죽겠냐?" 하고 묻는데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 정신이 몽롱해져 왔다.

멀찌감치에서도 우리쪽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경리팀원들이 아내에게 무엇인가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내 아내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결혼을 한지 반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 가슴속에 불안감이 점점 커져감을 느껴야만 했다.


'난 저 여인에게 지금까지처럼 스스럼없는 농담을 할 수 있을까?'


그 이후부터 아내가 나를 향한 어떤 행동들 이라면 어떤 것이든 거부감이 일었다.
출근길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껌을 손에 집어 내 입앞에 들이 밀었다.

"껌!"

나는 아내의 애교섞인 행동들이 신경질 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척 웃음을 지으며 껌을 넙죽 받아 질겅질겅 씹었다.

아내는 부쩍 웃음이 늘어, 별것 아닌 일에도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했다.

처음 아내는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 여성들의 이미지처럼 조용한 편이었고
웃음이 헤프단 느낌이 없었다. 조수석에 아낼 태우고 드라이브 할때면 내 옆에 앉은 여인이
내 평생의 짝이라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꼈것만, 지금 내 옆에서 괜히 기분이 들떠 있는 이 사람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어디 대학교의 새내기학생처럼, 달라보였고 이질감이 들어 미안하면서도 싫었다.

나는 아내의 존재 자체를 참으며 살아야했다.
가끔이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며 인생에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로 잘 못느꼈을지 모르나. 나는 아내에게 필요한 것 외의 대화를 걸지 않게되었다.


이후 결혼 일년이 조금 안됐을 무렵.

경리팀 팀장님과 잠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때였다. 경리팀장님은 30후반의 유부녀로
깐깐한 성격은 물론이고 원래부터 성질이 사나운편이라 후배사원들에게는 말한번 붙여보기 힘든 선배였다.

경리팀장님이 흡연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곤 얼른 꼬았던 다리를 고처 앉은체 스스로 최대한 자연스러운척
창 밖을 응시했다. 그런 내 행동이 가소로웠는지 귀여웠는지 경리부장님은 "하" 하고 헛웃음을 치시곤
내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은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 대단하더라?"

"네?"

경리팀장님이 한손에 든 커피를 홀짝하고 넘기더니 말을 이어갔다.

"대, 단, 하, 다, 고."

"뭐가요?"

팀장님의 입꼬리가 슬쩍 들리며 미소가 새겨지자, 기묘한 정적이 느껴젔다.

"경리팀의 얼음공주를 그래, 일년만에 저렇게 녹여놨어? 어떻게?"

"저희 집사람 말씀이세요?"

"그래~, 너네 마누라. 요즘 아주 흐물흐물해 그냥. 입사하고 내가 걔 한번 웃는걸 못봤는데, 요즘 보기좋아. 아주."

"아니에요. 원래 집사람 잘 웃어요."

팀장님이 코웃음을 치며 가소롭다는 듯 얼굴한껏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너한테만 그런거겠지."

"아, 아하, 하하."

"아니면 그 전부터 그렇게 남자들이 못살게 구는데, 너한테만 그렇게 들러 붙었을라구?"

난 얼굴을 굳히며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팀장님은 내 표정따위엔 개의치 않는듯 말을 이어갔다.

"홍보팀에 김대리, 개발부의 차차장, 영업팀 박팀장. 우리회사 날고 긴다는 애들
다 얼음공주한테 나가 떨어졌잖아. 하긴 그렇게 이쁘면 나같았어봐. 그냥 부자집에 시집가서..."

귓속에 싱~하는 백색소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후배가 어떤심경인지 헤아리지도 안고
실컨 떠드는 팀장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체 이를 악물고 인내심을 발휘해야했다.

"아무튼 너 진짜 대단해."

팀장은 기특하다는 듯, 칭찬이라는 듯 내 등을 툭툭 두르리며 흡연실을 빠져 나갔다.
얼마 안있어 다가올 결혼 일주년을 생각하면서 눈앞이 흐려젔다.

내가 사랑한 여인이 나 때문에 행복에 겹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내가 사랑하던 여인은 지금 영영 먼곳으로 떠난 것 같은 이별감을 느꼈다.

눈물이 확칵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누구하나 붙잡고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제 아내 좀 돌려놔 주세요. 결혼 전의 평범했던 제 아내 좀 찾아주세요."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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