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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아내가 예뻐졌다. -완결-
게시물ID : panic_361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04
조회수 : 11647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2/09/12 21:07:42




꿈을 꾸었다.

거실 소파위에 아내가 쪼그려 올라 앉은체 무릎 위로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내가 아내를 소리내어 "여보" 하고 부르자 거실천정에서 얇은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점점 그 수를 불리더니 이내 '솨'하는 소리와 함께 마루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구? 어느쪽을 부르는 거야?"

아내가 고개를 들며 울먹였다. 내리는 빗물에 섞인 아내의 눈물이 수십가닥으로 갈라진듯 하염없어 보였다.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아내의 모습, 오랜만에 아내의 얼굴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일었지만 한켠으론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옛모습이 정말 그 시절의 모습인지, 내가 조각한 상상속의 모습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당신은 한 사람이잖아."

"당신은 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았었잖아!!"

아내의 고함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말을 잃은 모습을 보며
아내는 놀란 듯 눈을 번쩍 드더니 다시 무릎사이로 고개를 떨궜다.

"자기는 날 버린거야."

아내의 작은 속삭임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이 주며 주위에 냉랭한 한기가 느껴젔다.
차라리 더 화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보는 아내의 차가운 눈빛에 불안함이
엄습하며 가슴이 막힌듯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나도 당신이 그리웠어. 오랜시간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렸었어."

아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거짓말, 그깟 머리카락 좀 짧게 자르면 내가 돌아올줄 알았어?"

"그러는 너는, 너도 말없이 사라졌잖아!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되려 화를 내는 기색을 보이자 아내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날 응시했다.

"날 잡았어야지. 가지말라고 빌었어야지! 변하지 말아달라고 매달렸어야지!!"

가슴속을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후벼파는 듯 괴로웠다. 나는 눈을 감은체 아내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위로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멈추는 듯 하더니 빗소리가 점점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꺼풀 위로 밝은 빛이 느껴지며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올랐다. 눈을 떠보니 회사 경리실 안이었다.
경리실 밖 복도에선 좀 전보다 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며 경리실 안으로 요란한 빗소리가 울렸다.

"영수증은요?"

"네?"

뒤를 돌아보니 지금의 아내가 퉁명한 표정으로 책상앞에 앉아있었다.

"전산팀 회식 영수증 합산해서 올려달라고 했잖아요."

나는 슬금슬금 앞,뒷 주머니를 뒤저보며 영수증 쪼가리들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속주머니에 손을 가져가 깊숙히 집어넣으니 가시에 찔린 듯 따끔한 느낌이 들어 얼른 손을 끄집어 냈다.

"왜, 평소처럼 친하게 안굴어요?"

아내의 굳은 표정, 한번도 꿈쩍하지 않는 눈가에 와락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절 버리는 줄 알았잖아요."

"뭐?"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서더니 내 손아귀에 있는 장미 한송이를 냅다 빼앗아 들었다.
바로 뒷켠 복도 내리던 빗물이 굵어지며 태풍이라도 몰아친 듯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이내 귀가 아파올만큼 큰 천둥소리가 들리며 번쩍하는 번개빛이 섬광을 뿜었다.

"내가 싫어요?"

아내가 애원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버릴꺼에요?"

"아니야! 무슨소리 하는거야!"

"그럼 왜 그렇게 말투가 차가워 진 거에요? 왜 이젠 내가 다가가기 전엔 키스도 한번 안해주는 거에요?"

아내가 품에 안고있던 장미 꽃송이가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바래가더니 이내 가루가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며 흩날렸다. 아내는 떨어진 장미 꽃송이의 가루들을 주위올리며 나를 응시했다.
아내의 눈에 모여있던 눈물들이 이내 툭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변한거야. 내가 싫어젔어. 재미없고 평범한 내가 싫어진거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밖에..."

복도에서부터 강한 바람이 들이치며 경리실의 서류들이 소용돌이처 오르며 공중에 흩뿌려젔다.
내가 뒤를 돌아 문을 닫으려고하자 아내가 급하게 달려들며 팔을 잡아 끌었다.

"어차피 알맹이는 같은 사람이잖아요! 어차피 같은 인격이라면 예쁜 내가 더 좋지 않아요?"

주변의 소음들이 마치 전원 나간 스피커에서 들리던 소리처럼 툭 하며 끊어젔다.
복도에서 느릿느릿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은 이내 내 뒤에서 멈춰선체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이이는 내 평범함을 사랑했어. 나의 수수함을 존중해줬어. 내가 평범했기 때문에 비로소 마음을 열어준거야."

빗물을 뒤집어쓴 아내가 또다른 아내를 향해 이야기했다.
옛 모습을 한 아내의 소리를 들은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연신 눈물을 흘리다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자기가 선택해줘. 자기가 싫다고하면 나 더이상 귀찮게 하지도, 나타나지도 안을께."

물에 젖은 손이 내 허리춤을 스르륵 감싸왔다.
내 등에 얼굴을 묻은 옛모습의 아내도 선택을 하라며 나를 부축였다.

"자기가 말하는데로 할게. 모두 당신 마음데로야."
"자기가 말하는데로 할게. 모두 당신 마음데로야."

아내가 한목소리로 나에게 애원했다.

나는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자기, 자기~ 자기야!"

아내가 날 흔들어 깨웠다. 슥쩍 벽시계를 바라보니 슬슬 열두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뭐야~ 언제까지자~, 오늘 같이 옷보러가기러 했잖~아~ 일어나 빨리~이!"

"아후, 시간 많이됐네."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아내가 내 엉덩이를 툭치며 재촉했다. 내가 일어나며 아내에게
쪽하며 가볍게 입을 마추자 아내가 배시시 웃으며 "한번 더!" 하고 앙탈을 부렸다.

대충 씻은 후 옷을 챙겨입자 아내가 물었다.

"밥 먹고갈래?"

"아니야. 맛있는거 사먹자."

아내가 기분이 좋은듯 엉덩이를 툭툭툭툭툭 하며 두드렸다.
"어디 나도" 하며 아내의 엉덩이를 두드리려하자 아내가 새침한척 몸을 옆으로 쑥빼며 손을 피했다.

"어딜! 백주대낮에!"

"내껀데?"

아내가 팔장을 걸어오며 입을 삐죽 내밀더니 이내 쌩긋하고 웃었다.


쇼핑몰을 층별로 한바퀴씩 전부돌자 아내는 드디어 옷을
살 마음이 들었는지 남/녀 정장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내는 내 몸에 이 옷, 저 옷을 대보며 고심을 하더니 마음에 드는 놈 한벌을 건냈다.

"자기 이거 입어보고 와. 나 이거로 갈아입고 나올게. 같이 서서 대보자."

옷을 입어보니 핏이나 소매길이가 적당한게 잘 맞는 것 처럼 느껴젔다.
매장 커다란 거울앞에서서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정리해보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어디 서봐, 보자~ 우리 서방이랑~ 나랑."

아내가 나란히선체 거울을 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위, 아래 입술을 번갈아 삐죽이며 고심을 하는듯 가만히 서있었다.

"두분 잘 어울리시네요."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점원이 웃음을 띄며 다가왔다.
아내는 점원에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체 한참 거울을 바라보다가 나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자기 역시 아까 그걸로 입어봐야겠다."

아내가 다시 옷을 갈아 입으려는 듯 몸을 돌렸다.

"여보, 잠깐만."

"음?"

내가 아내를 불러세우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옆으로 다가섰다.
나는 아내를 다시 옆구리 춤에 딱 붙이며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어울려요?" 하고 점원에게 묻자

"네 정말 잘어울리세요. 두분." 하며 점원이 깊은 미소를 짓는다.

거울 속 나란히 선 아내와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말끔히 차려입은 한쌍의 부부가 생전부터 정해저있던 인연이라는 듯 함께 선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이거로 사자."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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