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밤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늦가을의 바람이 포니빌 변두리의 허름한 오두막의 나무 문을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간다. 오두막 곁 'Rotten Apple's Hut'이라는 글씨가 적힌 작은 간판만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그것은 인적없는 이 다 쓰러져가는 술집의 모습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끄윽.......이봐 빅 매킨토시, 애플 리큐르 한 병 더 줘."
조명이라곤 가물가물한 램프 하나뿐인 이 술집에서 어두워 형체만 겨우 보이는 저쪽 구석편에 앉아있던 유일한 손님이 카운터에 묵묵히 서있는 가게주인에게 주문을 했다.
"안돼"
가게주인은 짧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 '손님' 주변에는 빈 애플 리큐르 병이 벌써 너댓병이 궁상맞게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림자를 헤치고 그 '손님'은 비틀거리며 카운터로 다가왔다. 서서히 그 손님의 모습이 희미한 램프 빛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때 윤기가 흐르고 비행을 할 때면 곧잘 하늘에 무지개를 그리곤 하던 무지갯빛 갈기는 이미 오래전에 제 색깔을 잃은채 빛이 바랬고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던 날개의 한쪽은 보이질 않았다. 그것과 함께 그녀의 인생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언제나 술만 마셔댔다. 얼굴에는 예전의 자신감 가득한 모습이 아닌, 비굴함과 다른 이들의 조롱에 찌든 험상궃은 인상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의 앞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거......내가 오래 전에 '최우수 신인 비행사 우수상'을 받을 때, 공주 폐하께 하사받은 금으로 만든 날개 관이야. 이거면 지금까지 마신 술값과 애플 리큐르 한병 값 정도는 되지 않나?..딸꾹... 자 어서 한병 더 달라고, 오늘은 좀 더 마셔야겠어! 어서!"
"인자 그만좀 처무라! 대쉬 언니야!"
대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애플잭...아니, 애플잭은 이미 오래전에 먼 곳으로 떠났지...그녀의 동생이 여급의 복장에 빗자루를 들고 서있었다.
"애플블룸, 이제 꼬맹이 티를 벗었다고 나한테 설교질이냐?....딸꾹... 이 포니빌, 아니 전 이퀘스트리아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던 이 레인보우 대쉬에게?!"
대쉬는 비틀거리며 애플블룸에게 다가갔다. 이미 예전의 애플잭만큼 커버린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며 술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궁창같은 술집이 누구때문에 돌아가는데! 산사태로 사과농장이 쑥대밭이 되고 스미스 할머니도 뒈져버려서 망해버린 집안따위 누가 신경써줘?! .......애플잭도 그래서 도망이나 친거라고! 어디서 돈많은 농장주인 녀석한테 다리나 벌리고 있겠지!"
한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뒷편에서는 허름한 웨이터 복을 입은 빅 매킨토시가 억지로 흥분한 것을 참으려는 듯 내뿜는 콧김이 여기까지 들렸다. 술이 확 깨며, 순간 '아차' 싶은 마음이 스쳐간 대쉬였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어쩔 수 없다......그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번쩍거렸다.
애플블룸이었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대쉬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제, 맞다! 아무도 이제는 스위트 애플 에이커를 추억하거나 동정하지도 않제! 근데 언니야도 마찬가지아이가! 날 수도 없는 퇴물 주정뱅이 페가수스는 저 문 밖에 널부러져있는 친구나 데리고 썩 꺼져뿌라! 앞으로 내는 언니야 얼굴은 보고싶지도 않데이!"
대쉬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바람에 맞춰 삐걱거리는 나무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문득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아직도 그 곳에 서있는 애플블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자신을 증오와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한번 쉬며 대쉬는 문을 나섰다.
"미안, 애플블룸. 이런 말은 하는게 아닌데......"
애플블룸이 말한대로 'Rotten Apple's Hut' 나무 문 옆 기둥에는 누군가 꼴사납게 널부러져 있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서 뒹굴었는지 온 몸이 흙먼지로 칙칙하게 보였다. 아니, 이미 그녀의 몸 전체는 한때의 밝은 분홍빛이 아닌 칙칙한 검은 반점이 가득한 짙은 자줏빛을 띄고 있었다.
"이봐, 일어나 핑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참이야."
대쉬가 앞발로 툭툭 치자 핑키는 풀려버린 눈으로 대쉬를 바라보았다. 이미 핑키는 제 힘으로 서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대쉬는 시체같이 축 늘어진 옛 친구를 어렵사리 부축을 하고 한걸음 두걸음 쓸쓸하게 발을 옮겼다. 거칠게 숨을 쉬는 핑키의 입에서 고약한 악취가 진동했다. 아마도 자주 즐긴다는 그 '알 수 없는 약'이 이제는 핑키를 산 송장으로 만들어버린 듯 하다.
대쉬는 포니빌로 들어가는 길이 아닌, 에버프리 숲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고요한 밤길은 오로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핑키가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달싹이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쉬의 귓가에 속삭였다.
"으음, 대쉬...대쉬이?! 돈...돈 좀 있니? 우..우리 래리티 집으로 가자....래리티한테....부탁해서 걔한테 보석을 좀 얻으면....내 약이랑..네 술값을..."
그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대쉬는 길 옆 나무에 핑키를 내동댕이 치며 외쳤다.
"핑키! 래리티는 죽었어! 죽었다고 몇번을 말해! 젠장......귀족놈팽이에게 시집간다고 웃으면서 떠난 년이 일년도 못돼서 푸르죽죽한 시체가 돼서 돌아왔다고! 이 약에 찌든 산송장아! "
대쉬의 눈에는 분노와 후회, 그리고 슬픔의 눈물이 눈가에 가득 고였다. 그 모습을 보는둥 마는둥 핑키는 겨울바람에 잔가지가 흔들리듯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대....대쉬, 나 추워....추워.....담요...따뜻한 수프....먹고싶어..."
대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다시 굳은 얼굴로 핑키를 일으켜 부축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