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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웃으세요
게시물ID : panic_362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9
조회수 : 263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9/17 02:20:28
 
 
 
“혜주씨는 왜 그렇게 울상이야?”
“네?”
“아니. 왜 맨날 우울~해 가지고 있느냔 말이야. 집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뇨. 그게...”
 
혜주는 동료들 중에 한명이라도 나서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하며 테이블을 둘러봤지만 다들 젓가락 숟가락을 들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를 듣는 것처럼.
옆집에 불난 걸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사무실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직원들이 제일 기피하는 과장 근처에 앉은 것부터가 운이나빴던 걸까. 과장은 식사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도 혜주의 신경을 건드렸다.
 
“내가 관상을 볼 줄 알아서 하는 말이야. 젊은 사람이 에너지 넘치게 행동해야지 꼭 내일 죽을 사람처럼 우중충해선...그러면 안 돼. 아참, 계산. 여기요.”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종업원의 손에 카드를 건넸다.
과장이 하루에 한명씩 작정하고 끼고 다니면서 무안하게 만든다는 건 이미 유명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된데다가 친한 사람이 없는 혜주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인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직원 중에 한명은 속으로, ‘저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될 텐데...어차피 과장은 퇴근할 때 되면 기억도 못할걸?’하고 생각했지만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 역시 뒤로 물러나 상황을 관전할 뿐이었다.
어차피 매일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혜주가 운나쁘게 표적이 된 것뿐이었다.
여기서 과장한테 안당해본 사람은 없었다. 모두 그를 지긋지긋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때 과장의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여간 컸던 모양이다. 예쁘게 차려입은 여사장이 밖으로 나오며 종업원을 대신해서 카드와 영수증을 내밀었다.
 
“웃는 얼굴이 참 보기 좋으시네요. 하긴...웃으면 복이 온다잖아요.”
 
이제는 정말 ‘울상’이 되어버린 혜주가 과장 뒤에 서서 신발을 친는 척 하면서 남몰래 눈을 흘겼다.
 
“들었지, 혜주씨?”
“.....네...”
 
과장은 기분이 들떠서는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그의 태도에서, 평소 성격이 엿보였다.
혜주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정작 과장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자타가 공인하는 웃음 전도사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하.
하하하.
 
귀를 틀어막아버리고 싶었다.
아니, 과장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남의 가슴에 비수나 꽂으면서,
남의 기분은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저렇게 기분 좋게 껄껄 웃어대다니...
 
그날 있었던 일을 밑거름 삼았는지 혜주는 회사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들 명단에 속했고 싹싹하게 성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덕분에 사장의 귀에도 들어갈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과장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엔 가족들이었다. 웃는 얼굴로 남편을 깨워 아침밥을 차려주던 다정하고 상냥했던 아내는 사라져버렸다. 아내는 아침에나 저녁에나 늘-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듯이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당신,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요즘 얼굴이 왜그래?”
“왜요? 어디가 이상해요? 아영아, 엄마 얼굴이 왜?”
 
옆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딸이 아내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 엄마 멀쩡한데요? 왜 그러세요?”
 
딸의 표정은 엄마 못지않게 일그러져 있었다. 깔깔대며 잘 웃는 성격의 딸이었는데, 저렇게 울상이라니... 난생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내와 딸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기 때문에 과장은 말끝을 흐리며
 
“내가 잘못봤나...”하고 넘겨버렸다.
 
그 다음날엔 이웃에 사는 부부가
그 다음다음날엔 모든 사람들이 우울한 표정으로 변했다.
 
전염병처럼 사람들의 얼굴이 우울하게 변해갔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울고 있는 얼굴들뿐이었다.
거리를 걸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거래처엘 가도....찡그린 얼굴 투성이였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관철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과장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거, 인상들 좀 펴라고.”
“네???”
 
그가 습관대로 참견을 할라치면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과장님. 저.... 방금까지 웃고 있었어요. 업무중인데 시끄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웃었다고??
계속 죽을상을 쓰고 있는 걸 봤는데??
다들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과장 편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장은 마치 노란색을 빨간색이라고 보고 믿는 사람처럼 서서히 뒤처져 갔고 이내 고립되기 시작했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이 막혀왔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단 한번도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과장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데에,
심지어는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에도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과장은 사장의 부름을 받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요즘 좀 부진하긴 했지. 한 소리 듣겠는걸..’
 
하지만 사장실에서 들은 말은 예상했던 대로 잔소리도, 그렇다고 격려의 말도 아닌 해고통보였다.
 
“자네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영 아니야.
시도 때도 없이 웃으라고 하질 않나...자네 태도 때문에 밑에서 불만이 수도 없어. 이해해주게.”
 
과장은 뻣뻣하게 굳은 두 다리를 겨우 움직여 밖으로 나왔다.
짐을 챙기기 위해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 우울한 표정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뭐야, 당신들. 울고 싶은 건 나라고!! 사실은 쌤통이지??응??”
“과장님, 진정하세요...”
 
과장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손을 세게 뿌리쳤다.
뒤늦게 후회가 됐지만 어차피...이렇게 된 이상....
그때였다.
후광이 비추는 것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 사람이 나타났다.
 
“과장님.”
 
그 유일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혜주였다. 혜주가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과장은 순간적으로 '거봐,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하고 생각했다.
 
눈썹을 치켜세우고, 미간을 찡그린 사람들 틈에서 혜주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우중충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왜 혜주만 저렇게 웃고 있을까.
그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평소에는 울상이었는데 말이다.
 
“우린 다 알고 있었어요. 벌써 소문이 쭉 퍼졌는걸요. 그리고요 과장님.
안 좋은 일이 있을수록 웃고 힘내셔야죠.”
 
불과 몇 달전에 혜주에게 해줬던 말인데
과장은 웃음이 나지 않았다. 억지미소조차 지어지지 않았다.
 
그런 과장 앞에서 혜주가 천천히 경쾌한 목소리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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