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거짓말.
게시물ID : humorbest_3642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ntrntrnt3
추천 : 47
조회수 : 2803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6/19 13:15:18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6/19 00:42:59
자유북한군인연합 거짓말 1.

자유북한군인연합 주장 : 뒤에서 맞은 시신이 반 이상이다.

진실 : 뒤에서 맞아 사망한 사람은 11명뿐. 

김만두 21일 / M16 / 배부 및 경부 맹관 총상
김복만 21일 / M16 or 미상 / 좌흉배부 (2개소)
박금희 21일 14:00 / M16 / 등배부총상 (5*3)
나종기 21일 14:00 / M16  / 좌흉부,후요부
김완봉 21일 M16  / 후경부 좌전두부
윤재식 21일 21:00 M16 / 배흉부 맹관상
무연고 21일 M16 / 배흉부관통총창, 우하퇴부관통창
이명진 22일  / 좌후두부 맹관총창 
백대한 23일 M16 / 후두부 관통총상
염행열 27일 M16 / 복배부관통총창 
윤성호27일 CAR  / 후두부 파편 총창

자유북한군인연합 주장: 백주대낮에 여자들만 골라서 발가벗기고 도끼로 내려쳐 죽였다, 음부를 도려내서 죽인 여성이 있다, 깨끗하게 총으로만 쏴서 죽였으면 마음이 편하겠는데 여자들만 골라 무참히 죽였다.

진실:여자들만 골라서 죽였다는 것은 사실과 다름. 여자들이 사망한 장소, 사망한 날짜는 제각각. 전체 사망자 중 11명으로 대략 8%정도 됨. 음부를 도려내거나 도끼를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모두 M16 총격을 받고 사망.

최미애 21일 13:00 / 전남대앞  / M16 총상
박금희 21일 14:00 /금남로 수미다실 앞 M16 총상
이성자 21일 13:00 /금남로 동구청 M16 총상
박현숙 23일 /지원동 M16 총상 /지원동 미니버스 총격사건
고영자 23일 /지원동 M16 총상 /지원동 미니버스 총격사건
김춘례 23일 /지원동 M16 총상 /지원동 미니버스 총격사건
손옥례 23일 /지원동 M16 총상 /지원동 미니버스 총격사건
오정순 23일 15:30 /변전소 주변 자택 /M16 총상
박연옥 24일 13:20 /인성고 하수구 /M16 총상 
김명숙 27일 21:40 /전남대 정문앞 /M16 총상
이매실 22일 18:00 /쌍촌동 안방 /M16 총상


자유북한군인연합 거짓말 2.


인터뷰 때마다 내용이 모순되고 다름. 

A. 침투 인원  

한국논단  : 우리 대대에서만 7명이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총체적으로 약 1개 대대가 내려 왔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추산하면 한 4백50명 정도로 볼 수 있지요.

기자회견 : 나중에야 상관들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희생도 많았고 공로도 있었다고 들었다.

뉴스한국  :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600명 정도 됐을 것이다. (중략) 이 부대에서 1개 대대가 차출되어 서해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각 특전사부대들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차출한 300명 정도는 별개로 함경남도 신포 동해안으로 마양도라는 잠수함기지에서 내려왔다. 


B. 귀환 인원

한국논단  : 그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못 돌아갔는데 그 인원이 북쪽에서 추산하기로 그게 다 죽었겠느냐 부상당했거나 합류 못했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기자회견 : 3분의 1이 희생되고 나머지 2는 귀대했다.
뉴스한국 :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C. 침투, 퇴각 경로 모순점

한국논단 : 그때는 계엄령이 내려져서 육지는 전부 봉쇄되어있었고 그들은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광주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뉴스한국 : 60-70명 정도 강원도 중부전선을 타고 넘었다. (중략) 중부전선을 넘어간 특수부대원들은 1차로 배로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로 광주봉기가 끝난 뒤 육로로 빠져나간 것이 가능했다. 대략 살아 돌아간 인원은 절반 정도라고 본다. 

★ 2006년 한국논단의 인터뷰에서는 계엄령 중이라 육지가 봉쇄되어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나, 2008년에는 자신이 2년 전에 한 말을 까먹었는지, 봉쇄되어 침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육지로 60~70명이 귀환하였다고 주장했다. 

 


D.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했다는 황당한 주장

한국논단 : 당시 김정일 정권이 정예의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을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뉘어 침투시킨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기에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했다” 

★임천용 주장에 따르면 북한군 특수 부대가 시민군뿐만 아니라 계엄군, 시민군 양쪽으로 나뉘어 침투했다는 것 입니다. 공수부대는 2월 충정 훈련에서 얼굴을 익혔다고 하고요. 신분 확인 하는 도중에  계엄군으로 위장한 수백명의 북한군이 단 한 번도 안 걸린다는 것도 웃기죠. 


출처 

1. 한국논단 인터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8300

http://www.dayogi.org/?doc=bbs%2Fgnuboard.php&bo_table=hottalk&page=1460&wr_id=151422


2. 2006년 기자회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19&aid=000001755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0267072

3. 뉴스한국 인터뷰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k2007021120301185542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