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국내 상영관은 감독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필름 상영관이 없고 혹자는 LIEMAX라고 하는 방식의 IMAX 상영관 밖에 없지만 그래도 최선의 선택은 IMAX인듯 합니다. IMAX 를 떠나 또 필름 촬영과 상영에 대한 놀란 감독의 고집 덕분에 국내에서도 오랜만에 필름으로 상영되는 영화관이 생겨났는데요. CGV의 4DX 효과도 문제시 삼았다고 하는데 진상은 확실하지 않지만 감독이 관객에게 어떻게 영화가 전달되어야 하는지 영화 제작,배급 뿐 아니라 상영까지 컨트롤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범위도 대단히 넓고 또 현재 영화계에서 가진 영향력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워낙 매니아 층이 두터워 인터스텔라의 경우 개봉 3주 전에 CGV IMAX 상영관 1주일 분량이 오픈 되었었는데 6시간이 채 되기 전에 서울 기준 사이드를 제외한 좌석은 모두 매진될 정도로 굉장히 순식간에 예매가 완료되더군요. 다행히 그때 트위터에 예매오픈 소식이 뜬 것을 보고 부랴부랴 예매하여 IMAX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의 스케일이나 웅장함을 고려할 때 분명 IMAX가 최고의 환경이긴 하지만, 영화가 생각보다 IMAX 특성을 잘 살린 화면이 많지 않은 듯 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서 오래전 부터 많은 영화팬들이 언급하던 우주 SF영화의 명작이자 놀란 감독이 존경하고 또 오마주가 있다고 언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를 찾아 보게 되었는데요. 놀란감독이 의식한 부분도 있고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은 부분도 많겠지만 정말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인터스텔라” 뿐 아니라“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영향을 받지 않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거의 없다는 것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뷰 중간 계속적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놀란과 함께한 음악감독은 한스짐머인데요. 영화계의 최고 음악 감독이라고 불리우는 감독 중에서도 단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어서 무한 애정을 듬뿍 담아 찬사를 드릴 수 밖에 없는 분인데, 이번 영화를 통해 더욱 감탄을 하고 나왔습니다. 인터스텔라가 전반적 전개가 좋게 표현하면 자연스럽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뻔하게 흘러가는 편이어서 긴장감이 넘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긴장감이 느껴져야 하는 순간들에 별로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었는 데 음악 덕분에 긴 상영시간 동안 긴장감이 살아났고, 감정을 끌어 내 주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만 박사가 인듀어런스 호 도킹하려다 부숴먹고 주인공 일행이 다시 도킹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입니다. 음악만 들어도 저절로 그때의 긴박함이 떠오르시지 않으시나요?
웜홀과 블랙홀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이자 영화의 중심 소재입니다. 인터스텔라가 기존의 우주를 배경하는 영화와 우주를 보여주는 데 있어 가장 큰 차별점이라면 그 것은 ‘블랙홀’을 어떻게 제대로 보여줄지 도전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웜홀과 블랙홀에 대한 언급은 많았지 제대로 표현한 영화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인셉션에서 본 것처럼 이미 공간을 뒤틀고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생경한 환경을 묘사하는데 관심이 많은 감독이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소재에 흥미를 가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유명한 물리학자 킵손과 함께 블랙홀과 웜홀을 가장 그럴듯하게 표현하는데 도전하였고 그 결과가 실제 천체물리학 이론에 얼마나 기대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이론을 비쥬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그려진 것 같습니다.
본 영화에서 새로운 공간 이동을 표현한 방식은 지금까지 어떤 영화보다도 현실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영화 중에 ‘아바타’가 있는데 그 ‘아바타’마저도 정신이 이동하는 효과에서는 판에 박힌 느낌을 받았었는데 말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놀란은 영화 전반적인 스토리를 봐도 그렇고, 감독의 성향을 고려할 때 반드시 완벽한 현실 이론에 근거하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관객에게 얼마나 현실적으로 그럴듯하게 전달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물리학 이론을 영화의 좋은 소재와 장치로 활용하여 영화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드는데 활용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 물리이론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영화적으로 대부분 용인되고 있고 그러한 방법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얼마나 리얼리티를 중시하는가는 영화가 시대가 흘러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블레이드 런너’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같이 시간이 흘러도 명작 SF로 느껴지는데 이러한 요소도 크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스탠리 큐브릭이 집착했던 수준을 생각하면 ‘인터스텔라’는 보여주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현실적이었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된 물리이론은 소재로만 활용된 것 같아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가장 적합한 주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고독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사랑’도 좋은 주제가 될 수 있고 우주 너머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우주만큼 좋은 소재도 없으니 ‘인간’의 한계를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한계를 이겨내야 영화가 마무리 될테니, 그 한계를 이겨내는 과정이 중요한 스토리가 될 것 같은데요. 많은 영화에서 인간 보다 우월한 존재를 표현하는데 우주 자체를 이용하기 보다 우주에서 마주칠 미지의 존재, 외계인 을 상정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놀란 감독은 의도적으로 외계인 의 등장을 배제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기존 영화와 차별화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외계인’의 존재를 굳이 보다 더 뛰어난 ‘인간’으로 치환함으로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보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큰 영화적 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속 마이클 케인이 언급하는 딜런의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시 구절 처럼 죽음에 임박한 상황을 상정하고,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프론티어 정신이 영화 전체에 깔려 있죠.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난관은 첫번째 밀러 행성에서 처럼 거대한 자연일 수도 있고 두번째 만 박사의 행성처럼 사람 사이에서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결국 절대 극복하지 못할 정도의 존재인 블랙홀 처럼 다가오더라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다. 라는 것이 영화의 주제로 생각됩니다. 곧 희망 을 가지고 계속 부딪혀야 된다는 것.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주제는 당연하게도 보편 타당한 좋은 내용입니다. 어떻게 색다르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지루하지 않고 새롭게 전달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놀란 감독은 그동안 공간과 시간을 뒤틀리는 방식과 일반적인 관객이 예상가능한 영화의 기승전결 구조를 살짝 뒤틀어서 관객에게 기존 영화와 다른 느낌을 받도록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터스텔라’에서는 그러한 장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농장을 배경으로 한 자식과 아버지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주는 장면 정도가 놀란 감독의 장기를 잘 보여준 것 같지만 영화 전체에 걸쳐 큰 틀에서 볼때 너무 평이한 흐름을 가진 영화여서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많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영화 마지막에 현재 인간과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의 등장시킴으로서 영화의 스케일을 극대화 하는 형태의 스토리 라인은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 왔는데, 단지 그 존재가 알고보니 ‘외계인’ 이 아닌 ‘인간’ 이었다는 것만으로 차별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즘 나오는 영화와 미드 트루 디텍티브까지 갑자기 매력치가 최고로 올라가버린 배우 매튜 맥커너히가 ‘인터스텔라’에서도 여전히 그 쿨한 어투의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콘택트’에서 ‘조디포스터’에 밀려 존재감이 약했던 배우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렇게 대단한 배우가 된 것이 신기한데요. 아무튼 최근 나오는 영화마다 연신 푹 빠질만한 캐릭터로 나오고 있습니다. 약간은 그 매력이 다 비슷한 점이 염려 스럽지만 지금으로서는 정점에 올라선 배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도 매튜 맥커너히를 보는 재미로 시간이 갔던 것 같습니다.
앤 헤서웨이의 연기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등장할때마다 너무 이뻐서 “아,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저만 그랬으려나요? ㅎㅎ
따로 언급하려다 함께 묶어 언급해서 아쉬운 어린 머피 역의 맥킨지, 너무 사랑스러웠죠!
덱스터에서 가장 강렬한 악역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신 아버지 역할의 존 리스노우, 영화사에서 등장을 최대한 비밀로 붙였던 M님. 또 한번 등장한 신뢰를 주는 마이클 케인 등 모든 출연진의 연기가 영화에 잘 붙어 있었습니다. 좋은 감독에게는 항상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중력이 발휘 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결국 기대한 것 이상의 혁신은 없었습니다. 다른 감독의 영화였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겠지만, 감독의 야심을 보면 기존의 잘 만든 영화 이상의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이후 수많은 영화에 미친 영향력처럼, ‘다크나이트’가 히어로 영화의 공식을 새로 씀과 동시에 히어로 영화의 틀을 깨부순 것처럼 무언가 ‘인터스텔라’가 이룬 성과를 통해 이후 영화들을 더 발전 시킬 수 있는 요소가 발견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인터스텔라’ 는 분명 훌륭한 영화지만 어떤 혁신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시한번 강조드리면, 모든 영화에서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놀란 감독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한 것이고 그래서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