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발머. 지난해 연수입 17억달러(1조6000억원)로 '헤지펀드 업계 고소득 빅3'에 오른 르네상스테크놀로지펀드 창립자 제임스 사이먼스. '메커니즘 디자인'에 관한 연구로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에릭 매스킨과 로저 마이어슨 교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수학자'라는 점이다.
하버드대에서 수학으로 기초를 닦은 발머 사장은 스탠퍼드 MBA를 마친 후 빌 게이츠와 함께 MS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MIT와 하버드대 수학 교수 출신인 사이먼스는 첨단 파생상품을 분석ㆍ설계하는 퀀트(Quant)의 귀재로 투자 고수들이 모인 월가를 주름잡고 있다. 매스킨과 마이어슨 교수처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수학자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잘나가는 수학자는 먼 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기초학문이 괄시받는 우리나라에서도 '수학'만큼은 예외다. 요즘 금융가에는 경영ㆍ경제학 전공자 대신 수학 전공자가 주목받는 자리를 꿰차고 있다. '금융상품의 꽃'이라는 파생상품 최고 전문가가 모인 산업은행 퀀트팀 7명 가운데 3명이 수학과 출신이다. 안재민 퀀트팀 과장은 "복잡한 확률 모델로 파생상품 가치를 산출하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많이 해봤던 일"이라며 자신감이 넘쳤다. 은행권에선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수학과 출신이다. 상품 설계가 복잡한 보험과 파생상품 비중이 급격히 커지는 증권 분야에서도 수학 전공자의 활약이 돋보인다. 정보통신과 생명과학 등 최신 학문에는 어김없이 수학과 통계가 활용된다. 이혜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지놈 프로젝트 등 생명공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수학이 필수라는 걸 일찍부터 깨닫고 수학 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며 "한동안 수학 전공자가 외면받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험 금융 생명공학 정보통신 분야에서 러브콜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수학으로 기초를 닦은 후 경영학 컴퓨터공학 금융공학 등 최신 학문으로 무장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수학과 출신들은 입을 모은다. 취업 걱정 없이 다양한 분야로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우수한 실력을 갖춘 학생이 수학과에 대거 몰리고 있다. 김정훈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졸업생 중 약 25%가 금융권으로 진출하고 정보기술(IT)업계 등에 두루 취업한다"며 "금융권에서는 증권 쪽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