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들은 행진 당시 사진들입니다.
간담회는 분위기가 무거울수 밖에 없어 사진은 못찍었습니다.
1시부터 간담회 진행후 2시부터
인천시청 - 역곡역까지(도착시간은 6시경) 행진 하는대 참여했습니다.
간담회는 인천시청앞 인천 전교조 사무실에서 오후1시부터 진행되었습니다.
간담회에는 단원고 학생 "생존자" 아버님 3분(~아버지입니다 라고 소개하셨는대 기억은 나지 않는군요 한번들어서는 잘 기억을 못하는 사람이다보니 제가 하하;;;) + 생존한 화물기사 두분(생존자 아버지분이 소개하시기를 후지tv에 나왔던 마지막까지 학생들 구출하다 빠져나오신분이라고 하시더군요 후지tv를 보진않았지만 생존자 아버지 분이 그렇게 소개하시니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간담회의 시작은 우선 생존자 아버지분들 께서 대리기사 폭행건이라는 불미스럽고 힘이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대 대하여 사과를 하시며
유가족 대책위 임원들 전부 사퇴하고 새로 구성하셨다고 하셨고 질답 형식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필기를 해놓고 적는게 아니기때문에 녹취록을 쓰듯 질문자의 질문 내용과 아버님의 답변을 그대로 전해드리지 못하는 점을 양해 드리며
요약정리해서 말씀드리 겠습니다.
참석한 시민분들의 질문을 종합하면
아버님들께는 생존학생들의 근황, 유가족이 수사권, 기소권을 포기했다는 말이 있던대 사실인지를 질문드렸고,
화물기사분들꼐는 일반인 생존자들은 대책위 구성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근황을 여쭈었습니다.
이에대한 아버님들의 답은
일단 현재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긴하지만 수업이 진행되지는 않으며 75명의 생존한 아이들을 11~14반으로 남자2반 여자2반으로 나뉘어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으며 1~10반을 그대로 두는 이유는 아직도 학생들이 희생된 학생들 책상에 '오늘은 너희를 위해 ~로 행진할꺼야' 라던가 '~야 보고싶다'
라던가 계속 글을 적고 있어 그대로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아이들은 지금은 어느정도 안정이 된편이지만 아이들중에는 탈출과정에서 친구의 손을 놏친아이, 자판기에 깔린 아이를 보고 어떻게 할수 없어 손도 못써보고 탈출한아이들이 있어 이런 아이들중에는 자살시도를 했던 아이도 있고,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트라우마 같은게 강해서 아직 병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생존한 아이들 부모님들도 아이들 병원에 대리고 다니고 대책위 일을 하다보니 생업에서는 손을 때신 상태고 점점점 학부모님들이 지쳐가고있어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하셨습니다. 또 한 희생된 아이들의 형제 자매들은 어쩔수 없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또한 수사권, 기소권은 포기한적이 없으며, 단지 반민특위때도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헌법질서를 운운하며 새누리당과 닭이 무조건 줄수 없다고 하기에 그러면 대안을 가져와봐라 한것을 기자들이(저널리즘은 아주 똥과함깨 싸서 변기에 내려버린것들...) 마치 유가족들이 포기한것처럼 기사를 썻다고 하시며 수사권과 기소권은 결단코 포기한적이 없음을 알아달라고 하셨습니다.
화물기사 분들의 답변은 당장 오늘 오신분들도 퇴원한지 얼마 안됬다고 하셨고 우선 일반인 생존자들은 전국적으로 흝어져있다는 것과
어떤분들은 당장 생존을위해 생업에 들어가신분들도 있다고 하셨고, 대다수의 분들은 정신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집박으로 나오는것조차 어려워 한다고 하셨습니다. 당장 오늘 오신분도 마지막에 탈출하면서 본 창문을 꺠기위해 창문을 내려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하시며 아직도 그 긴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지 못한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제주도 화물기사 24명분들은 대책위를 구성하는 단계라고도 하셨습니다. 퇴원을 하긴 하셨다곤 하셨지만 아직 4개의 과에 통원치료 중이라고 하셨는대 그 이유가 입원을 할려고해도 다인실에 들어갈수가 없기때문에 일인실로 가야하는대 그러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심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이부분은 어떤 질문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아버님이 답변하시기를
세월호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진술중에 오랜지맨, 블루맨 말고도 배가 넘어가는 상황속에서도 무전기로 무전을 주고 받던 사람이 학생들의 증언속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대 무전을 주고 받으면서도 왜 구조를 요청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라고 하셨고, 선원들중에는 진술 당시에 바로나가면 안될것 같으니 담배를 피면서 몇분 버티다가 나왔다 이런식으로 진술을 했다고 하시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 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질답이 오가다가 마무리할시간이 되었을때 아버님이 "우리는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왜 학부모님들, 생존한 학생들, 오늘 오신 화물기사분을 비롯한 생존한 일반인분들, 희생된 학생들, 해생된 일반인 가족분들이 이런 고통을 받게됬는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궁금할 뿐이라고 진실을 밝히는대 힘을 보태 달라"고 하시며 마무리 지으셨습니다.
간담회후의 행진은
딱히 후기라고 할게 없는것이
그냥 걸었습니다 네 ㅋㅋ 걸었어요.
중간에 창문을 내리고 응원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욕을 하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어 마음이 아프더군요
하지만 박수치면서 응원해주시던 할머니분, 학생들 덕분애 힘을내서 행진 할 수 있었습니다.
홍보라고 제목에 단이유는
내일도 행진이 있고 또 오후에는 집회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되시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p.s 글도 잘못쓰는 놈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하여 쓰시도했고 하여 읽기 힘들게 쓰인점은 죄송합니다 ㅜㅜ
최대한 그분들이 말씀하셨던것이 왜곡돼지않게 전하고 싶었는대 행진후 개인적인 일정때문에 지금 적게되니 후... 죄송할따름입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