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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와 이너스텔라
게시물ID : movie_36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닝샷
추천 : 1
조회수 : 66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11/22 22:52:39
둘 다 인간의 멸종의 대립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을 꿈꾼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설국열차가 소위 근대의 문제점과 군상들의 모습을 더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두 영화 모두 각각 길리엄, 브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격변기에서 근대적 인물들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길리엄은 윌포드와 적대적 공존을 하며 위선과 기만으로 꼬릿칸을 지배했던 근대적 지도자이다. 브랜드 박사 또한 거짓 선전을 통해 남아있는 지구인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 모두 그러한 근대적 지배가 현존하는 최고의 통치방식이라 믿는 사람들이다. 반면 또 다른 종류의 인간상이 있다. 송강호/남궁민수가 어떤 이념의 구애됨이 없이 크레놀을 차곡차곡 모으며 열차 밖으로 나가려 하듯이 쿠퍼 또한 가족의 생명을 위해서,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서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나선다. 그들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탈근대적 세계로의 가능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설국열차에서 요나가 흑인 아이와 손을 잡고 백색의 세계로 순수하게 진입하는 것과 달리, 인터스텔라에서는 다른 행성에 'colony'를 건설하려 한다. 언뜻 보면 비슷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설국열차에서는 이전 19,20세기의 잔재였던 제국주의와 냉전, 지배와 피지배, 자본의 향락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반면, 이너스텔라에서는 그러한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 한 사람의 모험 의식, 탐험가적 정신, 기술적 발견과 진보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인터스텔라가 나쁜 영화라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서부에서 카우보이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개척자들로 추앙받았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아직 서구인들의 뇌리 속 어딘가에 남아있다고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노파심일까. 정녕 중요한 것은 인류에게 적합한 행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구 시대-구 제도-구 의식에서 탈피해 진정 서로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사회,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영화관 문을 나오며 전광판에 떠 있는, 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밀린 '카트'의 염정아의 고개 숙인 얼굴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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