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가 제5대 대선(1963년 10월)과 7대 대선(71년 4월), 제7대 총선(67년 6월) 등에 개입했음이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를 통해 밝혀졌다.[8] 10월 유신으로 가는 마지막 대통령 직선제 선거였던 제7대 대선에서는 중정은 ‘풍년사업’이라는 공작명 아래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풍년사업’은 1972년 5월부터 준비한 유신공작 사업으로 알려졌지만 대선개입 등을 위해 그 이전부터 준비되었으며 중앙정보부는 풍년사업을 통해 김대중의 선거 유세에 인파가 몰린 것이 부각되지 않도록 보도통제를 실시하고 요원들이 직접 경상도에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흑색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9] 아울러 도쿄에 거주하는 조 모씨가 대선 일주일 전 중정 요원과 접촉해 ‘우리 가문에는 김대중을 지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약했다는 ‘풍년사업’보고서가 확인돼 정치공작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뤄졌음을 시사했다.[10]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해 열린 첫 대선인 지난 1987년 13대 대선에서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로 이름을 바꿨지만 선거 개입은 여전했다. 당시 안기부는 ‘상록사업’이라는 공작명으로 대선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는데, ▲특정 단체에서의 시국 강연과 노태우 후보 지원 요구 ▲안기부 직원 및 가족들의 대민접촉을 통한 선거운동 ▲사업장 근로자 득표율 제고 대책 등을 담은 문건들이 확인되었다. 총선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김영삼 등이 출마한 곳을 포함한 7개의 지역구를 ‘정책지구’로 선정하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에게 반드시 승리할 것을 지시했다는 정황이 여러 증언을 확인했다.[11] 또 1985년 실시된 제12대 총선에서도 선거 개시 5개월 전부터 투표일 직전까지 안기부가 선거 판세를 분석하고 취약지구 공작을 기획했다. 정보기관은 이와 함께 선기기간 야당 정치인의 사찰을 실시하는 한편 선거구도를 여당에게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야당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경쟁력 없는 야당 후보를 세우는 등의 방법으로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다. 예를 들어 제5대 대선에서 6명의 야당 후보가 출마했는데 중정은 이들의 후보 사퇴를 막기 위해 요원들을 동원해 후보 사퇴를 하지말라는 편지를 후보 당사자에게 보내기도 했다. 진실위는 공식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5ㆍ6대 대선 등에서 선거 결과를 뒤집는 방안도 중정이 모색했다는 의혹이 있다.[12]
국정원이 지 입으로 까버린건데 여기서 뭘 더 논할지....박정희가 잘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