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에 대한 변론 : 비연예인 연합이라는 허상
1) 연합(친목)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비연예인 연합’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실체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일단 시청자들이 말하는 연합(친목)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정의해봅시다. 이 단어는 어떤 단순한 게임 내의 일시적인 파트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충 공통적인 함의를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 게임 외적인 관계로 맺어진 관계
2. 해당 관계를 통해 게임 내에서 어떤 <공통된> 이득을 얻을 수 없음에도, 맹목적으로 맺는 팀 관계
최소한 ‘연예인 연합’을 사람들이 보는 시선, 그리고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시선은 이러한 함의들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연예인 연합’은 증오하면서, 똑같은 성질을 갖는 ‘비연예인 연합’에는 열광했는가 하면, 비연예인 연합은 위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거기에 더하여 3번째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단, 비 연예인 연합은 예외로 한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연예인 연합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하여 조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비연예인 연합은 없다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리고 홍진호가 탈락하는 순간까지, ‘연예인 연합’은 있었을지 몰라도 ‘비연예인 연합’은 영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두희만 봐도 그렇습니다. 아마 조유영과 은지원의 절도 행위 같은 것 없이 어떤 자연스러운 게임을 통해 이두희가 데스매치에 갔었다면 이두희는 틀림없이 홍진호를 찍었을 겁니다. 자기 입으로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죠. 6R에서 홍진호와 임요환은 이두희가 연합이라서 챙겨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안쓰러워서 챙겨준 겁니다. 나중에는 펑펑 울기까지 했으니.
이은결? 사실 이은결은 이러한 구도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할 때쯤에 탈락했죠. 그리고 이두희는 이은결의 탈락에 일조했으며, 임요환은 이은결에게 배신당했습니다. 홍진호는 이은결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이은결과 홍진호가 어떤 유대를 맺고 있었다기보다는 ‘게임 내에서 배신을 해서 우리에게 협력한 사람은 보호해야 한다’는 홍진호 자신의 룰,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회 통념적인 불문율에 근거한 것입니다.
홍진호? 홍진호는 자기 자신의 입으로 항상 1에서 언급한 성격의 ‘친목’이며, ‘동맹’의 폐해에 대해 부정해왔습니다. 홍진호가 7R 초반 은지원에게 손을 내민 것을 ‘지금이라도 연예인 연합에 끼워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바로 해당 라운드 내의 일시적인 파트너십, ‘연예인 연합’ 출현 이전에도 존재했던, 지니어스 게임 내의 ‘정상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죠. 홍진호가 임요환에 대해 언급한 인터뷰에서, ‘나와 요환이 형이 같은 팀은 아니지만’ 하는 구절만 봐도, 홍진호는 임요환조차 같은 ‘팀’(이것은 문맥 상 연합, 친목의 의미로 썼다고 봐야 할 겁니다)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문제의 임요환이죠. 임요환이 그동안 라운드 별로 맺은 파트너십, 딜을 제안한 상대들을 봅시다. 홍진호, 임윤선, 이은결, 조유영, 이두희, 이상민, 은지원. 거의 모든 멤버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끊고를 반복했습니다. 초반 라운드나 후반 라운드나 마찬가지입니다. 늘 독고다이로 돌면서 게임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3) 상상 속의 비연예인 연합
이렇게 그동안의 플레이 양상과 프로그램, 인터뷰의 발언만 살펴봐도 ‘비연예인 연합’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비연예인 연합’이라고 칭해지는 네 사람을 제외한, (아마 이상민도 제외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비연예인 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우선 연예인 연합은 임요환 – 홍진호 – 이두희의 커넥션을 의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이상민이 연예인 연합 멤버들의 불안감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겠습니다. 홍진호라는 강자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만일 거기에 더하여 임요환과 이두희라는 세력까지 더해진다면 홍진호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되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홍진호를 배척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즉, 연예인 연합이 정말로 ‘비연예인 연합은 실재한다’고 믿었다면, 그것은 홍진호를 떨어뜨리기 위한 이상민의 영리한 언플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다음이 많은 수의 시청자들을 봅시다. 흔히 임요환이 조유영에게 폭탄을 넘긴 플레이에 대해 ‘트롤링’, ‘팀킬’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잘하는 적군보다 못하는 아군이 위험하다’라는 표현도 꽤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이러한 표현들 자체가 이미 임요환 = 홍진호의 팀원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임요환과 홍진호가 서로를 팀으로 여기고 있었느냐?> 그것은 이미 위에서 살펴본 대로, No입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임요환과 홍진호가 한 팀이 되어 연예인 연합에 대항하길 바랐느냐?> 이건 아마도, Yes일 겁니다.
3-1) 임요환과 홍진호의 상부상조
둘이 서로를 생각한 관계를 그동안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정리해보자면 아마 이럴 겁니다. ‘친목이나 연합은 아니고, 그러니까 맹목적으로 도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상위라운드에서 임진록이 이뤄지면 좋기야 하지. 살살 챙겨주자.’ 정도.
실제로 게임에서도 이런 양상이 몇 번 나왔습니다.
홍진호는 왕 게임에서, 가넷을 더 쓰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여 임요환 – 임윤선 – 이다혜 – 조유영의 4인 데스매치를 이다혜 – 조유영의 2인 데스매치로 줄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명분은 ‘임요환을 구해야 한다’가 아니라 ‘가넷을 더 쓰게 되어 판이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죠.
물론 어느 정도는 홍진호에게 ‘요환이 형을 구해줄까’하는 의도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살살 챙겨주자’, 즉 부차적인 목표였을 겁니다. 아마도 ‘가넷 소모 방지’라는 명확한 명분이 없었다면, 그래서 ‘노골적인 친목’ 말고는 임요환을 빼낼 동기가 없었다면 홍진호는 그 때 임요환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했다면 후일 자신이 한 발언들에 대한 자기 부정이 되니까요.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니까 그리 중요치는 않고요. 여하튼 홍진호는 결국 어드바이스만 하고서 선택은 은지원의 몫으로 넘겼습니다. 저는 이게 홍진호와 임요환의 상부상조, ‘친목이나 연합은 아니지만 나중에 만날수록 좋지’라는 생각이 그은 경계선이라고 봅니다.
이 외에는 레이저 장기 당시 임요환의 옆에 있었다는 것 정도가 있겠죠.
한편 임요환도 홍진호와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저 유명한 ‘임없는 임플랜’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그건 그냥 임요환이 게임 이해를 못해서 그런 거지’라고 반론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에는 임요환의 게임 이해랑은 별개로 살펴볼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임요환이 게임 이해를 못한 부분은, <우승 팀에 끼지 못하면 자기도 데스매치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걸 이해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요환은 홍진호에게 ‘임없는 임플랜’을 제시했습니다. 임요환이 생각한 ‘임없는 임플랜’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홍진호가 5인의 중앙 위치, 최고 이득을 차지한다.
- 임요환은 승리자 5인에 포함되지 않는다.
- 즉 임요환은, 설령 자기가 승리팀에 끼지 못하더라도(임요환 자신의 판단으로는 데스매치만 면하는 정도에 그치더라도) 홍진호에게 우승을 안겨주려고 했다
우리는 여기에도 명확한 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홍진호를 우승시켜주는 대가’로, 임요환은 ‘나는 데스매치를 면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데스매치 가능성이 나옵니다만). 즉 임요환은 ‘나 역시 데스매치를 면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홍진호에게 우승 플랜을 공짜나 다름없이 넘겨준 겁니다. 왕 게임에서 홍진호가 임요환 구제에 나섰을 때와 비슷한 ‘선’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 혹은 공익을 위한 명분이 있다는 전제 하에만 상대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임요환과 홍진호의 관계가 연합 혹은 친목이 아닌 이유입니다. 어쨌든 홍진호는 이 플랜으로 우승을 했습니다.
이 외에는 6R에서 고립되어 있는 홍진호를 계속 챙겨주려고 한 모습 정도가 있겠습니다.
4) 연예인 연합인 죄, 비 연예인 연합이 아닌 죄
임요환과 홍진호의 상부상조 관계에서 봤듯이, 홍진호는 물론 임요환이 자기를 돕지 않은데에 대하여 ‘아쉽다’고 발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임요환이 홍진호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배신’이나, ‘통수’가 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진호 역시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아쉽다’는 정도로 표현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부 시청자들은 임요환의 행위를 ‘배신’이나, ‘통수’로 표현합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그것입니다. 임요환과 홍진호는 실제로는 ‘명분하에서만 서로를 지원하는 관계. 같이 높이 올라가면 좋기야 하다’ 정도였지만, 일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서는 ‘임요환 = 홍진호는 비연예인 연합’이었기 때문입니다. 역학 관계까지 따지면 ‘리더 홍진호, (트롤) 팀원 임요환’ 정도 였을겁니다.
처음에 홍진호가 ‘정의’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은 게임의 룰을 존중하지 않고 게임 외적 관계로만 횡포를 일삼는 ‘연예인 연합’에 대비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즉, 조유영 – 은지원 – 노홍철의 죄는 ‘연합에 따라 행동한 죄’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임요환은 연합 구도에 상관없이 게임을 했다는 이유로 실제 관계와는 상관없이 ‘배신자’, ‘통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즉, 비연예인 연합으로서 홍진호를 돕지 않은 죄, ‘연합에 따라 행동하지 않은 죄’입니다.
처음에는 연합에 따라 행동했다고 욕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연합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고 욕을 합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비 연예인 연합은 위에 말했듯, ‘연예인 연합에 저항하기 위하여’라고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비 연예인 연합의 창설은 정당하다’ = ‘비 연예인 연합을 창설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어, 시청자들에게 비연에인 연합의 당수로 취급되는 홍진호조차도 비연예인 연합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말했듯이, 홍진호가 시도하려고 한 모든 협력 관계는 연합-친목 관계가 아니라 게임 내의 일시적인 협력 관계였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임요환이 비 연예인 연합을 창설하지 않았다고 해서 연예인 연합에 소속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아, 그렇죠. 일부 시청자 분들은 그걸 ‘줄을 댄다’고 표현하시더군요. 팀 프레임에 상관없이 게임을 하면, 그러니까 누구와도 거래하면 그게 줄을 대는 기회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연예인 연합에 소속되면 그냥 악 그 자체고, 비연예인 연합에 소속되지 않으면 그건 회색분자이며 기회주의자가 됩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홍진호가 원했던 지니어스 게임, 친목과 연합이 없는 게임은 ‘회색분자와 기회주의자들만 넘쳐나는 게임’이 되겠네요.
5) 프로와 일반인이 만났을 때
연합 구도를 빼놓고, 7R 데스매치를 생각 해 봅시다.
눈앞에서 홍진호와 은지원이 게임을 합니다. 종목은 ‘인디언 홀덤’. 일반적인 홀덤과는 다릅니다만, 어느 정도 홀덤의 룰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진호는 홀덤 플레이어이자, 비슷한 게임인 ‘인디언 포커’를 데스매치에서 세 번이나 승리해본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디언 홀덤의 프로’입니다. 한편 그에 비해 은지원은 데스매치라곤 정치 게임인 ‘해달별’ 정도 해봤죠. ‘일반인’ 혹은 ‘초짜’입니다.
눈앞에서 프로와 생초짜가 대결을 하고, 자신은 대충 준프로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초짜에게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일까요?
물론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합 구도’를 가지고 생각을 한다면 말입니다.
1) ‘왜 같은 연합인 홍진호의 편에 안 서고 다른 연합인 은지원을 도와주느냐’ -> 두 사람은 애당초 연합을 이루었던 적이 없습니다.
2) ‘홍진호가 지금까지 임요환을 챙겨준 은혜를 잊고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이익이라는 명분이 있는 하에만 서로를 지원하는 관계였습니다. 만일 그것을 부정한다면, 어쨌든 홍진호와 임요환은 친목질을 한 것이 됩니다.
3) '임요환이 연예인 연합의 편에 서서 홍진호를 제거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냐' -> 연예인 연합의 수장이라고 할 만한 이상민과 임요환의 관계는 거의 최악이고, 당장 차회 예고만 봐도 이상민과 임요환은 각을 세우고 대립합니다. 그리고 임요환은 데스매치 시작 전에 홍진호에게 ‘잘하라’고 엉덩이를 치며 격려해주고, 홍진호가 탈락하는 순간에는 탄식을 하죠. 이게 다 임요환의 아카데미급 연기라고 생각하시면 뭐, 별로 할 말 없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호구, 트롤’ 임요환도 다 연기였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카이저 소제 뺨을 후려갈기네요.
이 외에는 임요환의 행동을 깔만한 논리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임요환의 행동을 ‘통수’, ‘배신’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비 연예인 연합’이라는 상상의 집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 상상은 일부 시청자들만이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당사자와 시청자들 간에 인식 차이가 나는 겁니다.
홍진호는 ‘아쉽다’지만,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배신, 통수’. 모르긴 몰라도 홍진호 본인도 이렇게까지 임요환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장문의 글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소위 '전지적 홍진호 시점'에 따른 선악 구분과 근거 없는 비난이 점차 정도를 넘어서는 듯 하여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일부 시청자들분들 께서는 지금하고 있는 무분별한 비난이 과연 홍진호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 생각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