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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았던 박노자 교수님의 좋은 글.
게시물ID : sisa_3685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이221
추천 : 5
조회수 : 2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3/05 19:14:28

예전에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좋은 글 올립니다. 독문을 권합니다.

 

언론들의 상상된 세계?

 

저는 약 1주일 전에 국내에서 학회를 마치고 노르웨이로 돌아왔습니다. 국내에서 보고 느낀 부분들은 아주 많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도 택시에서 우연히 들은 라디오 "뉴스"이었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와 같은 관변성이 강한 매체에 대해 체질적인 반감이 강해 벌써 약 15년 동안 집에서 전혀 두지도 않고 잘 시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특히 택시를 탈 때에 가끔가다가 의도치 않게 이렇게 "관(官)의 말"을 듣게 되는데, 그 때마다 많이 놀라죠.
 
일단 가장 놀라운 것은 "뉴스"의 배치방법입니다. "땡전뉴스" 등식대로 물론 맨먼저는 "가카"가 나투십니다. "이명박대통령이....". 역시 조선시대의 한 무가의 가사대로 "나라 한가운데에 왕궁이 있고", 그 왕궁에 계시면서 천하를 다스리시는 주상 전하야말로 "뉴스"가 가장 앞에 배치해야 할 "주체 중의 주체"죠. 이북의 "수령님"과 "장군님"들을 이쪽에서 희화화하지만, 과연 이남 관(官)의 어떤 기본적 사고의 틀이 그렇게까지 다른가 싶습니다. "가카"가 출현되시고 국정의 현안을 현명케 처리하시고 천하를 평안히 하신 뒤에 천하의 역신 (逆臣), 패륜아의 차례가 시작됩니다. 아동 성범죄 등 새로 밝혀진 "패륜 범죄"에 대한 피를 들끓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 뒤에, "가카"와 그의 충신 (忠臣)들이 어떻게 해서 악인을 징치할 것인가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책", "법안", "방지", "처벌 강화"... 저는 너무 피곤해서 문장들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도 못하는데 핵심어들을 다 알아들어 기억합니다. 아아, 천하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패륜들을 주상이 일벌백계로 벌주시고 그 기반 위에 천하가 교화되고 요순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태평성세의 장엄한 그림은 벌써 피곤한 눈에 선합니다.
 
"패륜 범죄", 그리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여성들을 범하는 악한들을 정확하게, "쪽짚게" (?)로 징치하는 지선(至善)의 전능한 우리 국가... 이러한 "뉴스"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게 "현실"이라기보다는 어떤 상상된 세계, 미디어들이 조작해놓은 세계라는 생각만 강해집니다. "패륜"... 물론 아동에 대한 범죄도 여성에 대한 성범죄도 이의 제기할 여지없이 패륜의 극치입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죠. 한데 세상에 패륜이란 그것뿐입니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최악의 패륜 중의 하나는 사람을 굶기는 것입니다. 베르톨드 브레흐트 선생이 그의 유명한 <통일전선의 행진곡>에서는 이 - 아주 단순한 - 생각을 아주 쉽게 잘 표현하셨지요:
 
Und weil der Mensch ein Mensch ist, 사람이 사람이기에
drum braucht er was zum Essen, bitte sehr! 그에게 먹을 것부터 필요하다, 부디!
Es macht ihn ein Geschwätz nicht satt, 빈말을 가지고는
das schafft kein Essen her. 먹을 것을 만들 수 없단 말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6Tz5daRrGDw&feature=related)
 
개개인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회/공동체가 약자의 입장이 된 개개인을 배고픈 채 그냥 놓아두면 이건 최악의 패륜 중의 하나입니다.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즉 인구에 비해서 수획량이 보통 좀 적고 추가분을 사들일 외화가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리는 이북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면 마음이 아주 아픕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남아돌아도 그래도 영양실조에 걸리는 남한의 독거노인들을 보면, 마음이 백배로 더 아파야 하지 않습니까? 충분히 다 먹일 수 있어도 사회의 병리적인 구조로 인해서 못먹인다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가끔 가다가 남한의 언론 지상에도 영양실조로 사망한 남한 독거노인의 소식들이 오릅니다 (예컨대:
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2965755_5786.html ). 물론 그러한 소식이 들릴 때에 "가카"도 별 반응이 없고 그 누구도 "패륜 범죄!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소리를 높이지 않죠.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로 쪽방촌에서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죽음을 외로이 기다리는 어르신들은 적어도 수만 명에 달합니다. 고독과 배고픔에 지치실 대로 지치신 어르신들 중의 상당수는 그냥 더이상 이 지옥을 보고 싶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기에, 남한의 (75세 이상) 노인자살률은 10만 명당 160명, 즉 세계 최고입니다. 이 위대한 신기록에 대해서는 "가카"도 "땡전뉴스"를 내보내는 (오웰의 표현대로) "진리부" (Ministry of Truth)도 한 번이라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까? 아아, 겸양지덕이 너무 흘려넘치셔서 아마도 언급을 피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굶기는 것도 패륜이고, 사람을 다치게 하고 추락사, 질식사시키고 팔다리를 잃게 하는 것도 패륜입니다. 남한에서는 특히 단순노무직, 그 중에서도 공사장 노동자 같으면, 일터는 곧 늘 누군가가 사망하고 부상 당하는 전쟁터입니다. 작년의 한국 산재사망률은 근로자 만 명당 약 1명 (정확하게 0,96명), 즉 예컨대 일본보다 약 5배나 높았습니다. 그런데 공사장에서 "외국인 불법 체류" 노동자가 추락사를 당하면 많은 경우에는 통계에도 안잡히고 보상도 없기에 이는 실제보다 훨씬 낮은 통계일 것입니다. 태풍이 불기만 하면 공사장이나 조선소 같은 작업장에서 꼭 몇 명의 "인부", "잡부"가 사고사를 당하고, 언론사들이 이 소식을 단신으로 처리합니다 (최근의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386983&thread=09r02 ). 누가 이걸 "패륜"이라고 부르나요? 안전 수준만 높이면 십분 다 예방할 수 있는 인재들인데도, 돈을 "잡부"의 생명보다 훨씬 더 아끼는 자본의 태도는 분명 "패륜적"인데도, 이건 절대 언론들이 이야기하는 "패륜"은 아닙니다. "진리부"와 그 산하 세뇌기관들은, 국가가 가시적으로 징치할 수 있는 개개인들의 문제적 소행을 "패륜"이라고 불러 그러한 개인들을 "제압"할 수 있는 국가에 온갖 용비어천가들을 불러주어도, 체제의 범죄들 - 예컨대 약자들의 영양실조사나 세계에서 가장 많고 가장 무서운 산재사망사건들 - 에 대해서는 되도록 자세한 언급을 피합니다. 그게 이 체제에 충성을 느껴야 하는 "가카" 신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배려겠지요?
 
우리가 "뉴스"를 들을 때에 꼭 언론들이 상상해낸, 날조해낸 세계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악한 몇 명의 "패륜아"들을 착한 우리 나라와 그 위대한 지도자들이 잘 처리하는, 그런 세계. 그 세계에는 약자의 고립과 고독, 영양실조, 살인적 착취, 만연한 산재와 수없이 다치고 죽는 "인부"와 "잡부"들의 그림자도 안보입니다. 그런데 맨날 거리에서 가난과 착취를 목격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가 왜 "진리부"의 말들을 그렇게 진지하게 취급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방송국이라는 직업적 거짓말 제작소를 보이콧하는 의미에서 왜 텔레비전 시청을 집단 거부할 수 없을까요? 정말 브레흐트의 말이 계속 기억납니다:
 
Und weil der Mensch ein Mensch ist, 사람이 사람이기에
Drum braucht er auch Kleider und Schuh! 우리에게 옷과 신발부터 필요하다!
Es macht ihn ein Geschwatz nicht warm 빈 말과 장구치는 소리 가지고
Und auch kein Trommeln dazu! 몸이 따뜻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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