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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진화의 사례: 기생충의 공격을 피해 벙어리로 진화한 귀뚜라미
게시물ID : science_36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거운눈꺼풀
추천 : 11
조회수 : 979회
댓글수 : 74개
등록시간 : 2014/06/13 20:45:00
하와이 군도의 여러 지역에 서식하는 수컷 귀뚜라미들이 - 각각 독립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 울음 소리를 잃고 벙어리가 되어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같은 변화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달려드는 기생 파리를 피하기 위한 것인데, 불과 몇 년(20세대) 만에 이루어졌으며 인간의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수렴진화란 개별 집단이 자연선택에 반응하여 각각 독립적으로 유사하게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Teleogryllus oceanicus라는 이름의 귀뚜라미 수컷은 울음소리로 유명한데, 날개를 서로 비벼 소리를 낸다. 날개에 새겨진 물결 모양의 맥(veins)은 특별한 구조체를 형성하여, 날개에 진동을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만들어 준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원리는 `손톱으로 머리빗을 퉁기는 것`과 같다"고 이번 연구를 지휘한 영국 세인트 앤드루 대학교의 네이선 베일리 교수(진화생물학)는 말했다. 

귀뚜라미가 밤마다 부르는 세레나데는 암컷을 유혹하여 자손을 번식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와이의 수컷 귀뚜라미들이 부르는 노래는 암컷 귀뚜라미만 듣는 것이 아니다. 귀뚜라미가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치명적인 기생 파리(Ormia ochracea)들이 떼로 몰려든다. 파리의 유충은 귀뚜라미의 몸통에 구멍을 뚫고 침입하여 살을 파먹고 자라는데, 일주일 후에는 숙주를 죽이고 몸 밖으로 나온다. 

귀뚜라미와 기생파리는 20세기 말 거의 같은 시기에, 각각 오세아니아와 북아메리카로부터 하와이 군도에 상륙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카우아이 섬의 도처에 살고 있는 무수한 수컷 귀뚜라미들이 일제히 울음 소리를 뚝 그쳐 버린 것이다. 

(1) 두 곳에서 발생한 유사한 진화 

수컷 귀뚜라미들을 꿀먹은 벙어리로 만든 변화는, 날개의 모양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 탓인 것으로 보인다. 날개의 모양이 변하면, 서로 비벼 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돌연변이는 20세대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탄생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눈 깜짝할만에 발생한 진화의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더구나 귀뚜라미의 수명이 수 주(週)라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으로 환산해도 몇 년이 채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2003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의 말리 주크 교수는 "카우아이 섬에 서식하는 수컷 귀뚜라미의 95%가 울음을 그쳤다"고 보고한 바 있다(참고 1). 주크 교수에 의하면, 돌연변이가 날개의 구조를 평평하게 바꿔 울음소리를 그치게 했지만, 다행히 비행(飛行)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로부터 불과 2년이 지난 2005년, 카우아이 섬에서 101km 떨어진 오아후 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섬 전체에 사는 수컷 귀뚜라미들이 일제히 울음을 멈춰 버린 것이다. 베일리 교수에 의하면, 오늘날 오아후 섬에 사는 수컷 귀뚜라미의 약 50%가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베일리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하나 이상의 집단에서 문제의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평평한 날개를 가진 귀뚜라미가 카우아이 섬에서 오아후 섬으로 - 아마도 배나 비행기를 타고 - 이주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오아후 섬의 귀뚜라미들이 카우아이 섬의 귀뚜라미들과 평평한 날개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양자(兩者)의 날개 모양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두 귀뚜라미의 차이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할 정도였다. 이에 베일리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Current Biology 5월 29일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특수 기법을 이용하여 두 섬에 사는 귀뚜라미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참고 2). 이 논문에 의하면, 두 섬에 사는 귀뚜라미들의 유전자 구조는 매우 다르다고 한다. 이는 "게놈의 상이한 부분에서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사한 형태의 날개(평평한 날개)를 만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2) 진화는 현재진행형 

"이번 연구결과는 `두 개의 섬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가 비슷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좋은 사례"라고 코넬 대학교의 리처드 해리슨 교수(진화생물학)는 말했다. 

"수렴진화가 일어난다는 증거는 자연세계에서 두루 발견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진행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기생충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진화된 두 가지 형질이 외견상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게놈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영국 에섹터 대학교의 톰 트레겐자 교수(진화생태학)는 말했다. 

베일러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평평한 날개를 만든 유전자를 정확히 짚어내고, 그것이 다른 유전자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분석할 예정이다. "평평한 날개를 만들어낸 유전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벙어리가 수컷이 암컷에게 어떻게 어필하는지를 연구하는 것도 흥미로워 보인다. 나아가 이 같은 돌연변이가 귀뚜라미 전체의 진화에 미치는 결과를 연구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트레겐자 교수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Zuk, M., Rotenberry, J. T. & Tinghitella, R. M. Biol. Lett. 2, 521–524 (2006). 
2. Pascoal, S. et al. Curr. Biol. http://dx.doi.org/10.1016/j.cub.2014.04.053 (2014). 


[세 줄 요약]
- 하와이의 한 섬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기생파리가 달려드는 현상이 있었음
- 해당 귀뚜라미는 20세대 만에 조용한 귀뚜라미로 진화함
- 또한 서로 다른 장소의 귀뚜라미의, 서로 다른 유전자에서 발생한 돌연변이가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을 발견, 즉 수렴진화한 것.



[국문 출처]
수렴진화의 사례: 기생충의 공격을 피해 벙어리로 진화한 귀뚜라미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기술모니터링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record_no=246642&cont_cd=GT

[영문 출처]
Evolution sparks silence of the crickets / Nature News
http://www.nature.com/news/evolution-sparks-silence-of-the-crickets-1.15323

[관련 문서]
Quick evolution leads to quiet crickets / Understanding Evolution (UC Berkeley)
http://evolution.berkeley.edu/evolibrary/news/061201_quietcric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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