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처음 느꼈던건 여섯살이었나 일곱살 무렵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혼자 뻘생각하기를 즐겼던 나는 무심코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결론이 날 턱이 있나. 여기서 좀 더 학문적인 의구심을 품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난 신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았고 저런 의문을 가질만한 나이도 아니었으니 자연스레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왔다. 사실 그 무렵에는 '죽는다' 라는 말 자체가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어찌나 무섭던지 죽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세상이 떠나가라 펑펑 서럽게 울어댔다. 아들내미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챈 엄마가 내 옆으로 와서 내가 해대는 꼴을 잠시 지켜보시더니 이렇게 다독여주
셨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언젠가 아빠도 죽고, 엄마도 죽고, 행님도 죽고, 니도 죽는기라.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라. 괘안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 참 현명했던 것 같기도 한데 굳이 죽기 싫다고 펑펑 우는 애한테 언젠가는 죽는다는 얘기를 해야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 말을 듣고 울음을 조금씩 그쳤던 기억이 난다.
개인이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게 될 때는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가 아닌가 싶다. 아버지께서 떠나신 뒤에 내가 얻은 죽음의 정의는 흔적이다. 타인에게 남는 흔적. 내세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나로서는, 망자 스스로에게는 죽음이 소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리라 생각하고 망자의 죽음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겨지는 흔적으로 한 사람의 죽음이 완성되고 의미를 가진다는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좋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따위의 얘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사람의 죽음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짊어지게 될 짐이고 풀어야 할 숙제같은 느낌이라는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다 떠넘겨버리고 휙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아버지께서 떠나신 뒤의 충격과 상실의 흔적은 이루 말로 다 못할 정도로 괴롭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 남겨진 또다른 죽음의 흔적은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였다. 어릴적 느꼈던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면, 이번에는 나의 죽음은 내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고 그저 내가 없어지는 것 뿐이란걸 깨닫게 된 후에 느낀 거부감이랄까. 물론 두려움은 기저에 깔려있겠지만.
그 후로 내가 살고 싶은 이유를 모으기 시작했다. 1번 2번 번호를 매겨가며 리스트를 만든건 아니지만, 치킨을 먹고싶다던지 무한도전을 보고싶다던지 같은 사소한 이유에서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라던지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같은 거창한 이유까지. 갖가지 이유들을 되짚어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고 이런 것들을 남겨두고 내게는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건 스스로에 대한 배신이라고 정리를 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사실 죽으면 나는 그만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거창한 이유라고 써놓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남겨질 짐이 어떠할지 라는 생각에 닿았을 때, 그걸 이미 겪어본 나로서는 정말 죽고 싶지 않다는걸, 적어도 자살은 하면 안되겠다는걸 깨달았다.
최근에 살아가는 이유 중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을 잃은 일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잃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 어차피 죽으면 그만이라는 스스로를 향한 배신의 마음이 요동치기도 한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을만큼 나약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큰 것을 잃었지만 전부를 잃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 새벽에 이렇게 장문의 뻘글도 횡설수설 늘어놓고 있다. 살다보면 그 커다란 이유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살아갈 이유는 이것 말고도 더 있으니까.
남들 봐서 좋을 것 없는 이런 내용을 써내려온건 나를 위한 위로의 말을 나에게 건네고 싶어서다. 날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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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을 겪고 나서 자살충동을 이겨낸 후에 썼던 뻘글입니다.
죽고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천천히 생각해보면 스스로 원하는게 정말 하나도 없지는 않을거예요.
정말 사소한 것 하나라도 부여잡고 살아가세요.
당신은 그저 죽으면 사라져 없어지지만,
당신 주위에 남은 사람들은 그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