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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논쟁과 동물보호론자들의 자세에 대한 작은 생각
게시물ID : animal_247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renov
추천 : 4/6
조회수 : 3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13 00:37:31


동물보호론자나, 

저같이 육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식물이 생명체가 아니라서 식물은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예요.

당연히 동물과 같은 식물도 생명체죠.

우리가 동물을 우리의 이익에 따라서 이용하는 것처럼 식물도 굉장히 많이 이용하고 있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생명체도 죽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우리는 우리가 숨을 쉬면서도 생명체를 죽이고 있다고 하잖아요.

아, 그러면 사람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다른 생명체들이 모두 다 평화롭게 살겠네요.

그래서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어요.

다른 모든 생명체를 위해서 모든 인간을 죽이자고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논리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게 가능할 거 같나요?

현재로는 불가능할거예요.

그럼 다른 가능성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구요.

생명체를 완전하게 하나도 죽이지 않고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났어요.

그렇다면, 어차피 생명체를 죽일 수밖에 없다면, 

이 지구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체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죠.

피해가 덜 가는 방법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많은 방법이 뭘까요?

육식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 방법이 그나마 실현 가능하고 모든 생명체에게 덜 피해가 간다고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같은 사람들이 그런 방법을 취하자고 주장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동물보호론자나 vegetarian들더러 식물도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 모자란 짓이예요.

왜냐며, 다시 말씀드리지만, 동물보호론자나 vegetarian들이 식물은 생명체가 아니니까 먹어도 된다고 주장한 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런 주장을 펴지도 않아요.

그들의 주장의 가장 핵심은 이 지구에 피해를 덜 주는 방법을 취하자는 거니까요.


어떤 논쟁에서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죠.

그게 가능한 것은 어떤 논리도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은 억지도 완전히 무용하지는 않아서 아주 조금의 긍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어요.

또 수긍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구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논쟁에 참여하지 않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드느냐인거 같아요.

어느 논쟁에서나 대립하는 양측이 있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죠.

대립하는 양측은 절대로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할 가능성이 적어요.

그래서 나와 대립하는 저 반대 끝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헛수고죠.

그보다는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해요.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항상 듣는 얘기잖아요.

중간층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드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중간층은 꼭 정치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예요.

어느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든, 중간층은 반드시 있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논쟁에서도 중간층이 존재하고, 비율로 따져도 적지 않을거예요.

우리는 그 사람들이 우리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설득해야해요.

우리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럼 우리의 의견이 선택되어 법제화까지 갈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러므로, 그 중간층에게 우리의 노력을 더 많이 쏟아야해요.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요, 논쟁이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으로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을 설득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더 많고, 개고기를 금지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아직 과거의 상황에서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그것이 사람들의 감정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먼저 민족감정이 있어요.

그래서 개고기는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찬성하는 쪽에서 주장을 하는거죠.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말만 들으면 광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는거죠.

예전의 그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와 김홍신, 손석희의 논쟁때도 민족감정에 기대서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니까 먹혀들어서 그 일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고, 이 논쟁에서 찬성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은 위 세 사람의 공이 크다고 생각해요.

개고기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이 선진국 프랑스 사람이 아니고, 또 여자가 아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은 민족감정이 투철한대다가 서양에 대한 열등감마저 투철하죠.(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 모두는 그래요.)

거기다가 가부장적인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들은 마초적인 경향이 강하죠.

이런 상황에서 서양 선진국에 사는 여자(그것도 천대받기도 하는 애로배우같은 여자배우)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인 개고기를 비판하는 걸 본 대한민국의 민족성 투철하고 열등감 투철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개고기는 전통음식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거죠.

거기다가 문화상대주의라는 것이 또 가세해서 찬성하는 사람들이 문화상대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기 시작했죠.

문화상대주의는 마치 북한애들이 주장하는 것같은 우리식 주체사상이나 박정희가 주장했던 우리식 민주주의같은 것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이용하듯이, 전통이든, 인습이든 무조건 이 땅에서 행해지는 것은 무조건 옳다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거 같아요.

문화상대주의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감정이나 행위같은 원래부터 없고, 무조건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나라 그 민족 내부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사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인류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세계 여러 민족들을 연구해본 결과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감정이나 행동양식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인육이나 기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것을 먹는 것들에 대해서 인류 전체가 부정적으로 보는 거라고 해요.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해서 문화상대주의에 따라서 그런 것을 뭐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것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과 행동양식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봐요.

하지만, 이 논쟁에서는 아직도 문화상대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죠.

민주주의는 서양이 하든 동양이 하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다 받아들이는 것인데, 

왜 지금은 이 나라에서 우리식 민주주의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거예요.

하지만, 민주주의를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도 개고기는 우리의 전통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이 뭐라고 하면 안된다고 거품을 무는 것이 현실이죠.

이런 것이 다 민족감정때문이라고 봐요.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인거 같은데,

솔선수범하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라고 봐요.

물론, 어느 나라 사람이나 이런 걸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주제나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그걸 적용한다는 거죠.

이 논쟁같은 경우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죠.

이와같은 감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다른 가축들도 먹으니까 개를 먹어도 상관없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즉, 동물보호론자들이 다른 고기는 맛있게 먹으면서 개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는 게 말도 안된다는거죠.

자신들도 동물들을 잡아먹으면서 왜 다른 사람더러 먹어라 말아라 하냐는 주장이죠.


저는 사람들이 감정에 기반해서 위와 같이 주장하는 것을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전혀 허무맹랑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동조를 하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이 논쟁이 더 힘든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개고기가 전통적인 음식이라는 의견에는,

개고기는 사람들이 늘상 먹었던 음식이 아니었으며,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지금과 같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개고기 도살과 음식문화는 전혀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부르기 힘들고 오히려 인습이나 악습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라는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물론, 이것은 주장하는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증거로 내세우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거 같아요.


또, 찬성론자들이 하는 말 중에 식용견과 반려견이 구분이 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죠. 

이것은 예전에 손석희와 프랑스 여배우의 논쟁에서도 손석희가 주장하던 것 중에 하나였죠.

참 어떻게보면 말이 안되는 주장인데도, 사람들은 손석희같은 사람이 주장을 하니까 그냥 믿어버리더군요.

요즘도 이 논쟁은 개고기 얘기만 나오면 들먹여지고 있고, 손석희는 애국자로 칭송받고 있죠.

그리고 손석희가 하는 말이 모두 다 맞다고 하고 있구요.

저는 이것도 민족감정이라는 것이 작동해서 그렇다고 봐요.

왜냐면, 손석희가 그 빌어먹을 외국 여자가 하는 헛소리(찬성론자들의 생각)에 반론을 하면서 들이댄 논리이기 때문이죠.

물론, 그 전부터 찬성론자들은 이 주장을 했었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개고기 논쟁에서 손석희와 프랑스 여배우의 논쟁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그 전까지 몰랐던 사람들도 손석희의 논쟁때문에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손석희가 상대한 토론의 상대자가 서양 선진국에 사는 여자였기 때문에 손석희는 마치 일본을 상대하는 축구대표팀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고, 손석희의 주장은 우리의 민족전통의 위상을 드높이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여기게 되었어요.

참 어이가 없죠. 개의 머리에 나는 반려견, 나는 식용견이라고 태어날때부터 써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구분한다는 것인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구분일뿐이고, 이얼령 비얼령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보통의 언론인도 아니고, 사람들로부터 많은 추앙을 받고 있는 언론인이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떠들고 있는 것이 

그 때의 대한민국의 현실이었고,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지요.

이래서 이 나라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우리의 동물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밑바닥이라고 하는지도 몰라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나도 이 나라사람이고, 당신이 매일 길에서, 대중교통에서, 신문에서, 텔레비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식들을 보세요. 그것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이예요.)

도대체, 누가 한 말이든 그것이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말한 사람이 누구기 때문에, 

외국 사람과 논쟁을 했기 때문에 다 맞다고 여기는 경향이 많으니까요.

어쨌든, 이런 주장은 개고기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아주 자의적으로 하는 것일뿐, 어떤 근거나 맥락도 없는 것이라는 걸 증거로 대응하면 될 거 같아요.

동사실이나 다른 동물보호단체에서 발표 조사한 자료가 그 명백한 증거가 되겠죠.


동물보호론자들도 똑같이 고기를 먹고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아픈 주장이예요.

제가 vegan이긴 하지만, 저 자신도 태어날때부터 그랬던 것도 아니고, 

제가 아는 동물보호론자들이나 반려동물, 특히,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 중에도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는 개고기를 먹는 사람도 없지 않다는 것때문에 더 아픈 주장인 거 같아요.

개는 다른 가축하고 아무리 다르다고 말해도 사실 아무 소용이 없죠.

죽이면 고기가 되는 건 똑같고, 어떻게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예요.

개고기 찬성론자들이 어떤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자신들의 논거를 만들듯이,

개고기 반대론자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로 개와 다른 가축은 다르다는 것을 드는데,

마치 이것도 찬성론자들의 자의적인 해석과 같게 보인다는 것이죠.

찬성론자들이나 일부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동물보호론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요?

이론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주장은 이론적이고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주장을 하기에 앞서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행동은 바로 육식을 거부하는 거예요.

육식을 하지 않는 개고기 반대론자에게 왜 소, 돼지는 먹으면서 개고기는 안되냐고 주장할 수는 없겠죠.

장난처럼 들리나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동물보호론자들이 바라는 세상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고 착취를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일 거라고 믿어요. 

비록 그것이 아주 이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같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런 꿈이나 바람이 있다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지구의 많은 문제의 원인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때문이예요.

인간의 욕망을 줄일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좋아질거라고 믿어요.

고기에 대한 욕망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개고기를 불법화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개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제어하려고 하는 거예요.

적어도 다른 사람의 욕망을 억제시키거나 줄이려고 한다면, 먼저 자신의 욕망부터 억제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개고기를 사람들이 먹지 않기를 바란다면, 일단 모든 고기를 다 먹지 말고, 그들에게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주장해야만 반대론자들은 아니더라도,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물보호론자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되도록이면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특히,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래야한다고 생각해요.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개고기를 반대하겠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반려견을 잃어버렸을때, 그 개를 누군가가 잡아다가 때려 잡아서 맛있게 냠냠 먹는다고 생각한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겠죠. 

잃어버렸어도 어딘가에 가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지 누군가 자신의 강아지를 때려 잡아서 끓여먹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을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잃어버린 강아지, 훔친 강아지들이 개고기가 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개고기를 금지하는 법이라도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겠죠.

반려견을 잃어버린 사람도 적어도 자신이 잃어버린 강아지가 누군가의 배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거죠.

개고기 찬성론자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사람에게 개고기를 먹어야한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건가요?

개는 다른 가축하고 다르다고 하실건가요? 그건 씨도 먹히지 않는 말인데도요.

자신이 고기를 뜯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는거예요.

그건 인지상정이죠.

그래서,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모든 고기를 거부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야말로 소, 돼지를 잡아먹으니까 개도 잡아먹어도 된다는 그들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예요.

이런 행동을 보여줬을 때, 중간층의 사람들이 우리의 의견에 동조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내가 뭔가를 버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머리로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병안에 든 콩을 많이 꺼내기 위해서 쥔 주먹을 펴지 않으면 손을 꺼낼 수 없듯이, 

내가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나의 강아지를 먹고자 하는 욕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예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기 전에 거울 속의 자신은 변했는지 보세요.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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