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지만 늘 고프다. 몸이 쪄갈수록 마음은 야위어 간다.
할 일 없이 빈둥대는 삶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이걸 마냥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나는 고 3이다. 대학 걱정 없는 고 3이다. 한 때는 수능 공부에 미치도록 몰두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공부를 하기 전 나에게 목표란 없었다. 그저 PC방이나 쏘다니는 쏘가리였을 뿐, 거창한 꿈은 없었다.
음악, 영화, 미술, 문학... 나에겐 여러가지 흥미거리들이 있었지만 내 스스로 그 앞에 벽을 두었다.
저런건 어릴 때부터 해야하는 것들이라고. 혹은 재능이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라고.
안다. 틀렸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도 저렇게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어한다.
나는 나에게 재능만 있었다면 저 일들을 했을거라고 몇 번이고 불평했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난 그저 흥미가 없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극한 허무감을 느꼈다.
기타를 배우려 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선생님은 좋은 분 같았지만, 굳은살 하나 배기지 않는 내 손가락을 볼 때마다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 미안함 때문에.
나는, 그래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정도 가릴 수 있다.
하지만 그름을 안다 해서 그름을 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 어릴 적 엄마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알고 하는 게 더 나쁜거야'
난 아직도 알고도 한다. 알고도 할 때면, 저 말이 내 머릿 속을 멤돌지만 한다.
긴 터널을 걷고 있는 거라고, 저 끝에 보이는 것은 빛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에 메달렸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공부는 내가 바라던 공부가 아니었다.
난 공부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배움을 좋아했던 것이었다.
그저 점수 올리기에 흥미가 없어진 난 공부 뿐만 아닌 배움에 대한 흥미마저 잃고 말았다.
지금의 나에겐 호기심이란 없다. 젊음의 치기도, 열정도, 패기도 없다.
내가 먹는 밥은, 나에게 너무 아깝다. 내게 주어진 방은, 나에게 너무 아깝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나에게 너무 아깝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나에겐 너무나도 아깝다.
매사에 감사할 줄 몰랐다. 아니, 모른다.
불평과 욕구는 늘었다. 더불어 내 살도 함께 늘었다.
키라도 커서 다행이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아직은, 누군가가 '돼지'라 부를 정도로 살이 찌진 않았지만
난 이미 돼지다. 배부른 돼지.
이제와서 고프다 하더라도 여전히 돼지일 것 같다.
배고픈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