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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의 영웅" 살라딘(1)
게시물ID : humorbest_3707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볼버오셀롯
추천 : 34
조회수 : 4155회
댓글수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7/13 21:14:07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7/13 14:41:17
1.1135년의 근동지역의 상황. 살라딘이 태어난 해의 지도를 올리고 싶었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것들 중 가장 비슷한 시기의 것을 올렸습니다.

2. 장기왕조의 영토가 표시된 지도입니다. 장기와 누레딘이 없었다면 살라딘이 성지 탈환을 하는것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3.다마스커스에 있는 살라딘의 기마상입니다.

아이유브 왕조의 창건자 "살라흐 앗딘 이븐 유수프 아이유브"(1138~1192)는 현재 이라크에 위치한 티크리트

에서 태어났습니다.(이곳은 사담 후세인의 고향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런 연유로 후세인은 제 2의 살라딘을 

자처하기도 했지요.) 살라딘이 태어나기 전 이 쿠르드족 일가는 현재 아르메니아에 있었던 "사다디드"왕조

의 도읍 "드빈"에 살았습니다. 살라딘의 할아버지 "사히 이븐 마라완"은 사다디드 왕조가 점점 쇠퇴하기 시

작하자 아들인 나즘 앗딘(살라딘의 아버지)와 시르쿠를 데리고 바그다드를 거쳐 지인이 다스리는 티크리트

로 이주하였습니다. 이븐 마라완은 이곳에서 관리 생활을 하다가 늙어 죽었고 장남인 나즘 앗딘이 그 지위

를 계승하였습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극도로 혼란하여 새롭게 떠오르는 셀주크 계 군주 "이마드 앗

딘 장기"와 바그다드의 칼리프 "알 무스타시드"사이의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장기 군이 대패

하여 쫒기게 되었는데 도주하던 중 티그리스 강에 퇴로가 막혀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장기와 그의 군사들에게 배를 내어준 사람이 바로 나즘 앗딘이었습니다. 이때의 인연으로 시르쿠와 살라딘까

지 장기 왕조의 가신으로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어쨌든 당시 티크리트의 실권자 비흐루즈는 장기와 적

대적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 일로 나즘 앗딘은 그의 눈밖에 나게 되지요. 거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동생 

시르쿠가 성내에서 기독교도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빌미로 티크리트에서 추방당하고 맙니다. 바

로 아이유브 일족이 티크리트에서 추방당하기 하루 전날, 나즘 앗딘의 장남 유수프(살라딘)가 세상에 태어났

습니다. 졸지에 추방자 신세로 전락했지만 다행히도 갈 곳은 있었습니다. 나즘 앗딘 덕에 목숨를 건진 모술 

과 알레포의 지배자 장기가 북 이라크와 시리아를 아우르는 강력한 군주로 성장해 있었던 것입니다. 장기에

게 의탁한 뒤 나즘 앗딘은 현재 레바논에 위치한 "발벡"의 관리로 임명되었고 무인적 기질이 강한 시르쿠는 

장기의 차남 누르 앗딘(누레딘)이 이끄는 군대에 들어가 점점 그 두각을 드러내게 됩니다. 한동안 두 형제

의 앞길은 탄탄대로만이 존재할 듯했습니다. 그러나 1146년 장기가 노예의 손에 암살당하면서 아이유브 가

의 두 형제들의 운명 역시 꼬이고 맙니다. 장기의 죽음을 틈타 다마스커스의 "앗딘 우나르"가 나즘 앗딘이 

지키고 있던 발벡으로 쳐들어왔고, 나즘 앗딘은 자신과 처자식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앗딘 우나르에게 투항

하고 맙니다. 장기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가 된 셈이지요. 어쨌던 나즘 앗딘이 투항함으로서 어린 살

라딘도 목숨을 구할수 있었고, 아버지를 따라 다마스커스로 가서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나즘 앗

딘은 상당히 유능한 문관이었던 듯 투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마스커스의 궁정 내에서 상당한 신임을 받

게 되었고, 살라딘은 고위층 자제다운 교육, 즉 그리스 고전문학을 공부하거나 무예를 연마하는 등의 군사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편 시르쿠는 누레딘을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누레딘의 깊은 신임

을 받고 있었고, 사실상의 오른팔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형졔끼리 서로 다른 진영에 서서 칼을 겨

누고 있는 형국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형국은 1154년 다마스커스가 누레딘과 시르쿠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함락되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누레딘이 다마스커스를 쉽게 점령할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즘 앗딘의 배신 

덕분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요즘의 철새 정치인 같은 느낌도 들지만 나즘 앗딘은 정세를 읽는 눈이 정확했고.

비흐루즈, 장기, 앗딘 우나르, 누레딘의 순서로 주군을 바꾸면서도 계속 중용되었던 유능한 관리였습니다. 

꼭 삼국지의 가후를 연상시키는 사람이랄까요? 어쨌든 살라딘은 유능한 아버지와 숙부를 둔 탓에 난세에 태

어났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수 있었습니다. 이런 살라딘이 그 두각을 드러낼 시간

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누레딘이 이집트 정복의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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