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eaceground.org/zeroboard/view.php?id=ground&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 읽어보니 재미있는 딴지인 것 같아 퍼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감도 되고요. ======================================================= 배려가 있는 주장은 아름답습니다?? 햄 저는 요즘 방학을 맞아 부산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할 일은 많지만 워낙 TV광이라서 아무리 바빠도 TV를 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참고 볼 수 없는 광고가 하나 있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반복 학습 효과를 노리고 제작된 것이 틀림없는 케이블 방송 사이사이에 하는 모기장 판매 광고까지 꼼꼼히 인내심을 가지고 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광고를 봤을 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기분이 나빴습니다. 기분이 나빠지는 광고야 많이 있지요. 그 중 하나는 귀여운 아이들부터 할아버지까지 나와서 환하게 웃으며 ‘하나, 하나, 하나’를 외쳐대던 국정원 광고를 봤을 때였습니다. 초반 분위기가 너무 편안해서 무슨 광고일까 하고 보다가 뒤통수를 맞는 듯 한 반전(?) 때문에 속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졌었죠. 또 있군요. 한미 FTA에 대해 정부에서 제작한 광고였는데, ‘자기가 협상단 중에 한명이고, 농촌 출신이고, 부모님은 아직 농사를 짓고 계신다. 아버지, 어머니, 쌀만은 꼭 지키겠습니다.’ 뭐 이런 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짜증나는 광고가 꽤 있네요. 다시 오늘 이야기 할 광고로 돌아가서, 기존의 공익 광고들이 광고를 보는 도중이나 끝날 때쯤에는 좋다, 나쁘다 판단이 되었다면, 이 광고는 뭐라 말하기는 어려우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짜증은 나는데, 무엇 때문이라고 바로 딱 꼬집지를 못하니 다음에 이어지는 즐거운 TV시청을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어찌나 자주 나오는지 잊을 수가 없더군요. 문제의 이 광고는 공익광고협의회에서 하는 광고로, ‘배려가 있는 주장은 아름답습니다’라는 제목의 30초 광고입니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촛불집회 영상과 함께 ‘질서가 있는 주장’이라는 자막이, 다른 종교인들이 함께 웃으며 걸어가는 영상에서는 ‘존중이 있는 주장’이라는 자막이, 삼보일배를 하는 영상에서는 ‘절제가 있는 주장’이라는 자막이, 집회에 참가한 한 청년이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전경에게 물을 권하는 영상과 함께 ‘배려가 있는 주장’이라는 자막이 순서대로 뜹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려가 있는 주장은 아름답습니다.’라는 음성과 자막이 나오면서 끝이 납니다. 이 광고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질서가 있는 주장’까지는 별 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존중이 있는 주장부터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짜증이 확 솟구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질서, 존중, 절제, 배려’가 있는 주장이 잘못된 주장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광고를 봤을 때는 평화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워낙 전경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비틀린 심사 때문에 이 광고가 짜증나는 걸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뭐 약간은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면 배려가 있는 주장 앞 쪽 자막에서도 기분이 나쁜 이유로는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고, 기분은 찝찝하고, TV 틀 때마다 광고는 나오고……. 볼 때마다 짜증나고,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괴로워 하다가 제가 내린 결론은 이 광고가 교묘하게 시청자들에게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각각의 영상과 ‘질서, 존중, 절제, 배려’라는 단어는 얼추 맞아 떨어집니다. 그리고 ‘질서, 존중, 절제, 배려’가 있는 주장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 주장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보여주어야 하는 행동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질서가 있는 주장’에서 제가 별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이 말과 영상이 상식적으로 연결해서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질서는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이니 중구난방의 모습으로 주장하는 것보다는 ‘질서가 있는 주장’이 외부의 공감을 얻기 쉬울 테니까요. 그런데 ‘존중이 있는 주장’에서 영상과 자막 사이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스님과 수녀님 그리고 무채색 한복에 쪽을 지신 여자분(원불교도 일까요?)이 웃으면서 걸어가는 영상으로 좋게 해석해서 사이가 나쁠 수 있는 다른 종교인들끼리 서로 존중을 해주는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영상 속의 ‘존중’이 넘쳐나는 상황과 자막으로 보이는 ‘존중이 있는 주장’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중은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것이기에 각자의 주장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만 질서를 지키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쪽에서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성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광고 전체를 보면 정부에 뭔가 아쉬운 사람들이 주장을 할 때는 이래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를 팍팍 주고 있는데요, 그래서 내가 존중이 있는 주장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상대방이 나를 존중해 줄지는 광고를 통해 도무지 유추해 낼 길이 없습니다. ‘절제’(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삼보일배를 환경운동에서 주장의 한 수단으로 사용해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삼보일배가 절제 있는 주장을 하기위한 것보다는 무분별한 개발을 하고 있는 인간들이 파괴한 자연에 참회하고 스스로 반성해야한다는 의미를 담은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삼보일배가 스님들의 절제하는 삶과 교묘하게 연결된 것입니다. ‘모든 집회가 스스로의 행동을 절제하며 주장을 하고, 주장의 내용 속에도 절제를 담으면 그 주장을 상대방이 잘 들어줄 것이다’라는 보장도 없는데(2001년 대우차 투쟁 때 싸우거나 저항하지 않고 도로에 줄지어 누워 시위하던 노동자들을 마구 진압하던 전경들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요.), ‘삼보일배 -> 스님의 삶 -> 절제하는 삶 -> 주장도 절제 있게!!’라는 공식대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 추천할만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집니다. ‘배려가 있는 주장’에 가면 좀 어이가 없어집니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나 여름에) 무겁고 더운 복장으로 땀을 흘리고 있는 전경에게 생수를 건네는 것이 배려이기는 합니다만, 전경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배려’는 받을 수 있을지언정 ‘배려가 있는 주장’을 들어야 하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입니다. 배려는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무엇을 누가 많이 가졌는가는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무언가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더 가진 쪽은 대체 어느 쪽이겠습니까? 그런데도 ‘배려가 있는 주장’을 하라니요. 주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집회 참가자들을 가로막고 서게 된 전경에게 물을 건네는 배려야 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전경을 먼저 앞세운 사람들에게 행동과 내용 속에 배려를 듬뿍 담은 ‘배려가 있는 주장’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앞에서 저는 이 광고가 시청자들에게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질서가 있는 주장’이 아니라 ‘질서 있게 행동하며 하는 주장’으로, ‘존중이 있는 주장’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임하는 주장’으로 바꾸면 납득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절제와 배려는 말도 못 만들어 내겠군요. 광고를 만든 사람도 제가 느낀 어려움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해 대강 영상과 얼버무리는 말로 완성을 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카피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처음 제가 광고를 봤을 때 틀렸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 반응을 의도한 것이라면, 이건 말장난 수준을 넘어선 사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광고를 해서 얻으려고 하는 ‘공익’이 과연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이 광고가 한참 많이 나오고 있는 지금, 매 시간 뉴스에서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용역화에 반대하는 점거투쟁 등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과 관련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보도 역시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법과 원칙’을 말하면서, 불법 점거를 풀지 않는 한 대화는 없으며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의 토론이나 인터뷰들을 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귀차니즘을 발동해서 이 광고를 그냥 무심히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계속 눈에 밟혔던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힘과 돈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기업 쪽에서 전혀 존중과 절제와 배려가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1) 광고를 보시려면
http://www.adic.co.kr/ads/list/showNaverTvAd.do?ukey=167111 2) 이 글에 사용한 단어들 중 단어의 뜻을 설명한 부분들은 네이버 국어사전을 사용하였습니다. 3) 광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는
http://blog.naver.com/qutyduck?Redirect=Log&logNo=100039307606 에 있던 이미지를 제가 다시 편집한 것입니다. * 회원이신 햄님은 대학에서 마지막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